수년 전에 우리 부부의 절친한 기독교인 친구들이 자신들의 이혼 사유에 대해서 편지를 보내온 적이 있다: "우리의 영적인 자원이 소진됐다." 그것은 내가 이제껏 들어본 이혼 사유들 중에서 가장 이상했다. 특히, 하나님의 영적인 자원이 소진될 리 없다는 것을 잘 아는 박사들이자 기독교 교육가들인 그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니 더욱 이상했다. 분명히 그들은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인정하거나 "노력을 그만 뒀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아주 최근에는 또 다른 기독교인 친구, 그는 신약학 박사이고 공부도 적잖이 했으며 교육자로서 오래 봉직했었는데, 그가 다른 여자 때문에 아내를 떠났다. 그 여자는 신학교육을 받은 목사였다. 그는 아내에게 "지난 7년 동안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그의 말은 그가 처음에 아내에 대해서 가졌던 것과 같은 종류의 감정을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이 일차적으로 감정의 문제라기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헌신, 순종이라고 가르친다.
바로 금년 가을에 목사로서 오랜 동안 봉직한 나의 제자가 자신이 어떻게 "실수를 했고" 아내 몰래 부정한 짓을 했는지를 말했다. 사실 그는 대화중에 그런 표현을 여러 번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죄"라는 말을 하는 것을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나는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면서 "말 실수를 했다"고 말하고 운동선수들이 범죄를 저지르고는 "나쁜 선택을 했다"고 말하며 매춘부들이 "성 산업종사자"라고 불리는 세상에 살고 있어서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순진하기도 하고 심지어 감동적이기도 한 "나는 사랑에 빠졌어"라는 말은 어떤가? 달콤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표현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러듯이 당신의 사랑이 식어버렸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마저 행복 추구를 인간의 절대적인 권리인양 생각하는 나라(아니다, 미국헌법은 그것이 절대적 권리라고 선언하고 있지 않다)에서 자신이 배우자에게 더 이상 좋은 감정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이별을 선언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놀라운 일일까?
바울 사도는 그의 유명한 사랑 장(고린도전서13장)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13:4-7). '모든'(always)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사용했는가? 그리고 사랑의 속성을 설명하는 형용사와 동사가 절제와 관련되지 않는 한, 감정과는 그다지 크게 상관되지 않는다.
나는 내 친구들이 이혼 수속을 하면서 내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보며 "나도 알아. 내가 결혼서약을 어기고 있는 것을"이라고 인정하는 경우를 두 번 경험했다. 최소한 그들은 정직했다. 사실, 결혼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전부인 과정이다.
만일 누군가가 하나님과 배우자와 기독교인 회중 앞에서 그들의 전 생애가 걸린 가장 엄숙한 서약을 할 때 그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지 못한다면 내가 왜 다른 일에 대해서도 그들을 믿어야 하겠는가?
물론, 하나님은 경이로운 은혜, 놀라운 용서, 그리고 셀 수 없이 여러 번 새로운 출발을 허용하시는 분이시다. 내게도 첫 번 배우자와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가 경건하고 신성한 두 번째 결혼을 한 친구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했다. 그들은 죄를 죄라고 인정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게 고백했다. 그들은 용서를 간구했다. 그들은 경건한 충고를 받아들였고 자주 상담도 받았다. 그들의 삶은 진정으로 변했다. 이처럼 우리가 어떤 개념을 정의하기 위해 사용하는 말들은 실제로 중요하다.
세계사에서 중매제도를 실행하는 대부분의 국가와 문화권에서는 이혼율이 극도로 낮았다. 최소한 그런 부부들은 결혼하거나 이혼하는 이유가 감정이나 정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사랑을 일차적으로 감정이나 정서로 정의하는 경향이 낮다.
고린도전서13장은 유명한 구절로 끝을 맺는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만일 사랑이 영원하고 우리가 영원 속에서 공유할 속성들 중 가장 위대하다면, 우리는 이생에서 사랑의 진실된 영역에 더 많이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마존강 유역에서 브라질 사람들을 섬기고 있는 리차드 워커 목사가 적절히 표현하기를, "사랑은 당신이 갖고 있는 최선의 것을 대가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주는 것이다" - 비록 당신의 면전에서 거부되더라도.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우리와 함께 하신 일이지 않는가?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ible-study/topical-studies/falling-in-lov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