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비신화화를 거쳐 케리그마를 향했던 허혁 교수의 20주기 추모식

15일 이화여대 제자들 동료교수들이 캠퍼스에서 추모예배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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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이민애 기자)
▲허혁 교수 20주기 추모예배가 15일 이화여자대학교 중강당에서 열린 가운데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주간)가 2부 순서를 진행하고 있다.

불트만의 주요 저서와 논문들을 번역했던 허혁 교수의 20주기 추모모임이 15일 스승의 날에 이화여대 중강당에서 열렸다. 모임을 기획한 허혁 교수의 이화여대 재직시절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은 추모식에 학계 인사들과 학생들 및 가족들을 초청하여 규모있게 진행했다.

감리교신학교와 독일 뮌스터대학(Dr.Theol.) 졸업 후 이화여대에서 15년간 교편을 잡은 허혁 교수는 1997년 작고했다. 그는 루돌프 불트만을 비롯해 디트리히 본회퍼, 칼 호이시, 게르하르트 폰 라드,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 게르하르트 에벨링, 요아킴 예레미야스 등의 저서들을 번역하여 한국 신학계에 큰 공헌을 했다. 허혁은 이 가운데 특히 불트만의 주요 저서들 및 논문들을 집중적으로 번역해 불트만의 번역본만 총 9권을 내놓았고, 이를 통해 불트만의 비신화화 이론이 한국 신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추모 모임은 1부 추모예배와 2부 회상 순서로 진행되었다. 1부에서 설교를 전한 문명섭 목사, 추도사를 낭독한 송현달 선생, 고인의 신학과 삶을 회고한 도올 김용옥 교수는 모두 허 교수의 제자들로 그의 살아생전 업적들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고등학생 때 허혁을 만나 청년시절까지 깊은 학문적 영향을 받았다는 도올 김용옥은 아직도 불트만의 비신화화 이론을 수용하지 못하는 일부 신학계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자신은 "비신화화에 근거한 성서해석은 2천년전의 신화적 표현이 오늘날 우리에게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게 하는 가장 적절한 성서해석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허혁의 조언으로 동양학을 전공하게 되었다는 도올은 논어나 맹자를 번역할 때도 불트만의 양식사를 참고하여 희랍어 텍스트와 한문 텍스트를 같이 놓고 연구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아울러 자신이 "사회정치에 참여하면서도 늘 학자로 회귀할 수 있는 까닭은 1960년대 허 교수의 학자적 모습이 가슴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학문적 깊이가 그로부터 왔다고 회고했다.

2부 회상 순서는 허혁의 동료 교수였던 서광선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본지 논설주간)의 진행으로, 고인의 제자들과 동료 교수들이 허 교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추억했다. 서 박사는 이대에서 강사로 일하던 허 교수가 전임교수로 임용되는 데에 큰 도움을 준 바 있다. 현직 신학대 교수이거나 은퇴 교수가 된 허혁의 제자들은 대부분 고인을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분"으로 추억했다. 제자들은 그가 정규 강의시간 외에도 여러 스터디그룹을 조직해 학생들의 학문적 성장을 도왔고, 연구실의 불이 24시간 꺼지지 않아야 한다며 늘 학생들과 번역 및 연구작업에 착수했고, 학생 개개인들의 사적 상담에도 적극적으로 임하며 자신의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고 추억했다.

동료 교수들은 그의 학문적 열정과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70-80년대 격정의 시대에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다 교수들이 해직되기도 했던 시절 허 교수는 그의 연구실의 불을 끄지 않고 번역과 연구 작업에만 집중적으로 몰두 했다. 서광선 박사는 "이런 분이 상아탑의 대학에 꼭 필요한 분"이라고 했고, 칼바르트를 사랑하는 신학자로 알려진 박순경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도 "허 교수는 하나님과 인간 앞에 허세를 버리고 새사람 되기를 바랬던 분"이라고 기렸다. 박순경 박사는 개인적 사정으로 동영상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 행사는 한국신약성서연구모임과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동창회가 공동주최했다. 한국신약성서연구모임은 허 교수가 생전 조직하여 운영했던 모임으로 현재 후배들과 제자들이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 고인의 제자 황현숙 교수(협성대)는 허혁의 생전 강의 녹음테이프를 풀어 책으로 2권 출간해 이날 참석자들에게 배포했다. 이 책은 허혁이 불트만의 주요 논문들을 번역하여 엮은 책들 『학문과 실존』(Ⅰ-Ⅳ)의 제목을 따 각각 『학문과 실존 Ⅴ』, 『학문과 실존 Ⅵ』 으로 이름붙여졌다.

번역서에 좀처럼 자신의 말을 쓰지 않던 허혁 교수는 불트만 역서 『요한복음서연구』 역자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신은 전적인 타자로서 인간에게 다가온다. 신학은 이 타자가 타자로서 어떻게 인간에게 다가오는가를 밝히려고 한다. 신학의 존립은 이 일을 얼마나 철저히 수행하는가에 달려있다. 왜냐하면 그 일이 철저하지 못할 때 신과 인간의 혼란을 초래하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인간의 신격화를 면하기 어려우며, 결국 우상숭배에 도달하고 말기 때문이다."

이민애 theworld@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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