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준비 없이 내년부터 시행한다면 큰 갈등이 올 수 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이 10일 <한국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종교인과세와 관련해 밝힌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종교인과세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도 "종교인 과세 유예는 종교계와의 약속이며 대선 공약"이라면서 세무 간섭 방지나 과세 혜택 부여를 위해서라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사실 종교인과세의 유예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종교인 과세에 대해 아래와 같은 입장을 피력한 바 있다.
"과세당국이 각 종교, 종단 등과 긴밀히 협의해 종교인 소득에 포함되는 다양한 소득원천과 지급방법에 대해 상세한 과세기준을 마련할 수 있도록 시행 유예 등을 비롯한 다각적인 정책 방향을 검토해 추진하겠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의 입장도 과세 유예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따라서 어느 후보가 집권했든 종교인과세는 손질을 피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새 정부의 정권인수위원회 역할을 하고 있기에 김 의장의 입장은 새정부의 의중이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문제를 두고 정부 안에선 미묘하게 입장이 갈리는 모양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후보자였던 지난 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앞서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들이 던진 관련 질의에 대해 "정부는 이 제도(종교인과세 - 글쓴이)의 시행에 차질이 없도록 국세청과 함께 종교 단체를 대상으로 설명회와 간담회를 개최하는 등 준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답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자 김 위원장은 ‘똑같은 의견'이라고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다 재차 종교인과세 유예를 고집하고 나선 것이다.
종교인과세, 사회적 합의는 충분하다
김 위원장은 거듭 "과세 대상 소득을 파악하기 쉽지 않고 홍보 및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종교계에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대로 종교 단체의 과세 대상 소득을 파악하기 쉽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가톨릭의 경우 1994년부터 교구별로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해 왔다. 개신교 교파인 대한성공회 역시 마찬가지다.
개신교계의 경우 교회개혁실천연대, 기독경영연구원,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바른교회아카데미, 재단법인 한빛누리 등 5대 개신교계 시민단체가 꾸린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삼화회계법인의 도움을 받아 2014년부터 목회자 소득세 신고 지원 활동에 나선 바 있다. 소득세 신고를 하려 해도 인력이나 정보가 부족한 교회나, 스스로 세무 당국에 소득을 신고하려는 목회자가 있다면 이 단체를 통하면 쉽다.
이에 종교인 과세 유예 소식이 전해지자 교회재정건강성운동은 즉각 반박에 나섰다. 이 단체는 지난 달 29일 논평을 내고 "이제 와서 단순히 준비가 안 되었다고 유예를 주장하는 것은 공평 과세로 국민화합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국세청과 종단이 함께 과세기준을 상세하게 만들면 된다"고 강조했다.
홍보와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종교인 과세가 처음 공론의 장에 오른 시점은 1968년이다. 당시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은 "성직자에게도 갑종근로소득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후 47년 동안 종교인과세는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러다 박근혜 전 정부 시절인 지난 2015년 11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법안 소위원회가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는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개정안을 처리하면서 마침내 법제화되기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당시 여야는 종교인 과세 시행 시기를 2018년 1월로 유예해 논란이 일었다. 당시 정치권은 2016년 총선거, 그리고 2017년 대통령 선거 등을 치러야 하는 처지였다. 따라서 시행시기를 2018년으로 정한 건 종교인과세 법제화에 따르는 정치적 부담을 차기 의회 및 정부에 넘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종교인과세를 둘러싼 갑론을박의 와중에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충분히 형성됐다. 기획재정부가 종교인 과세를 포함한 '2013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던 당시 개신교계 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국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때 전체 응답자의 85.9%, 그리고 개신교를 종교로 둔 응답자의 71.8%가 종교인 과세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보수 기독교계 이해 대변하는 김 위원장
종교인 과세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를 때마다 개신교계, 특히 보수 대형교회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이번에도 보수 기독교계 연합체인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정서영)은 지난 달 31일 논평을 내고 "종교인 과세는 지난 정부에서 2년 유예 기간을 둔 후 내년 1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발표했으나 2년이라는 기간 동안 정부는 시행에 따른 여러 문제점들에 대해 개선안을 내놓거나, 종교계와의 의견을 좁히는 등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지난 정부가 발표한 대로 당장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경우 그 혼란과 마찰은 불 보듯 뻔한 일"이라는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기독교는 이미 많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있거나 납부 대상이 아닌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이 80% 이상이다. 그런데도 마치 모든 목회자들이 납세의 의무를 거부하고 호의호식하고 있는 것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일부에서 종교인 과세 예외를 우리 사회의 오랜 적폐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한교연은 7일 이낙연 총리의 예방을 받는 자리에서도 "교계 전체가 우려하고 있다"며 종교인과세 반대 입장을 거듭 내비쳤다.
공교롭게도 김 위원장은 수원침례교회 장로다. 이미 우리 사회는 고 성완종 경남기업 전 회장, 정옥근 전 해군참모 총장,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 등 장로 직분자들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음을 목격했다. 김 위원장이 종교인과세 유예를 앞장서는 걸 두고서도 보수 대형교회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비판여론이 높다.
새정부에 바란다. 이미 국회에서 법제화했으니 법대로 시행하면 된다. 김 위원장은 보수 대형교회의 이해를 대변하기 보다 장로 직분자로서 사회적 책임이 더 막중하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