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의 소식지에 "때를 아는 지혜"라는 제목의 권두언을 실었다. 이 교수는 위정자들과 종교인들이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갖추어야 할 것을 권고했다. 연구소의 허가를 얻어 이 교수의 권두언을 전재한다.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눅12:56-57)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다지만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개혁과는 동떨어진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조용기 목사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소개되더니 이번에는 새 정부의 국정기회자문위원회의 위원장 김진표 의원이 종교인 과세 문제와 관련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김 의원은 2018년 1월 시행하기로 한 종교인 과세를 2년 더 유예, 2020년으로 늦추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교회의 장로로서 기독교에 호의적인 제스처를 쓰기 위해 준비하는 것 같지만 이제 종교인도 납세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마당이다. 그걸 종교계를 위한답시고 다시 유예하자고 내 놓았으니 이는 상식에도 맞지 않고 새 정부 기조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도 성명을 발표한 바 있듯이, 대다수 국민과 개신교인들은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2013년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5.9%가 종교인 과세에 찬성한다고 대답했고, 개신교인들도 같은 조사에서 71.8%가 종교인 과세에 찬성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종교인 과세를 끄집어내는 것은 그리스도인도 때를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상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누가복음의 말씀은 마태복음(16:2-4)에서는 "시대의 표적을 읽는" 지혜로 동일시되고 있다. 한 그리스도인 정치인이 취하고 있는 자세가 기상을 분별하지 못하듯이 시대의 표적까지 읽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시대의 표적을 읽지 못하는 것이 어찌 종교인 과세 문제에 그치겠는가. '박근혜 탄핵' 사건과 관련해서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는 이스라엘기를 흔들며 거리의 물결을 이루었던 저들의 다수가 교회에 다니는 무리들이라는 것이 알려졌다. 설교 강단을 이용하여 그 무리들을 거리로 내몬 이들도 양의 탈을 쓴 종교권력자들이다. 덩달아 십자가를 끌고 나와 마치 박근혜가 십자가의 희생제물인 것처럼 기독교를 가장한 퍼포먼스를 행했던 주역들도 뻔한 사람들이다. 이름만 들어도 잘 아는 모모 목사들이 그 뒤를 조종한다는 소문까지 있었다. 그들이 한 때는 진보개혁 진영에서 활동했고 또 어떤 이는 복음주의권에서 명성을 얻었던 목회자였다.
핵이다, 미사일이다 하면서 한반도 상황은 불안한 정도가 아니다. 여차하면 전쟁이라도 터질 형국을 맞았던 적도 있다. 전쟁이 터지면 최소 2백만의 희생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페리보고서'에서 언급된 바가 있다. 그런 형국임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 중에는, 마치 아합 왕 때의 시드기야처럼, 전쟁을 부추기면서, 민족 공동체에 용서와 화해, 희생과 평화를 선포하기를 외면한다. 화해와 평화를 설득해야 할 시기에 대결과 전쟁을 외치는 것이 어찌 때를 아는 자의 소위라고 할 수 있으며, 목회자의 길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의 그리스도인들, 특히 목회자들은 때를 아는 지혜와 평화를 외칠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사드 가고 평화 오라"는 성주 농민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라도 하라.
역사를 공부하는 학도들일수록 예언자적 지성을 가지고 시대의식에 투철해야 한다. 크리스천 역사학도들에게는 시대를 꿰뚫는 냉철한 지성으로 이 시대 사이비 언론과 대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진리와 정의 대신 물신숭배를 강조하는 종교인들을 향해 역사의 길은 그것이 아님을 외쳐야 한다. 자살로 몰아가는 구조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으면서 생명 외경에 대한 개인적 책임만 강조하는 언론을 향해 그 사이비성을 예리하게 해부해야 한다. 아울러 거짓 종교인들과 권력자에게 환호하며 지지를 보내는 민중들을 향해서도 그 기만적 행태를 폭로해야 할 것이다(렘 5:31). 그것이 시대와 역사를 알고 행동하는 지성인이다.
기사출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식> 118호 권두언 (2017.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