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교세를 지닌 예장합동이 난데 없이 이단심사를 하겠다고 나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예장합동 총회 이단대책위(아래 이대위, 진용식 위원장)는 지난 15일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 앞으로 ‘이단사상 조사연구에 대한 자료요청의 건'이란 제하의 공문을 보냈다. 이대위는 공문에서 "제101회 총회의 헌의를 수임 받아 귀 단체(섬돌향린교회)및 귀하(임보라 목사)의 이단성 여부를 조사하는 중"이라며 아래 세 가지를 요청했다.
1) 귀 단체(개인)에서 이단사상으로 문제제기 되었던 내용일체
2) 상기 내용 중 수정되었던 부분이 있다면 관련 내용 일체
3) 지금까지 발행된 책이나 내용일체(설교문, 신문, 음성 및 비디오 녹화 등 일체)
한국교회 8개교단 이단대책위원장 연석회의(기감, 기성, 기침, 대신, 통합, 합동, 합신, 고신)마저 27일 예장합동의 임 목사 이단성 심사에 협력하기로 했다.
문제의 발단은 임 목사가 <퀴어 성서 주석>(Queer Bible Commentary·QBC) 번역본 발간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캐나다 연합교회 소속 한인 목회자 16명은 25일 예장합동 교단의 임 목사 이단심사와 관련해 "타 교단인 예장합동 측 이단대책위가 이단성 시비를 조사하겠다고 나서는 마녀사냥식의 오만한 행동을 접하면서, 출신교단과 신학적 견해차이를 넘어서 큰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장합동 이대위 진용식 목사는 "퀴어성서 주석 번역본 발간 뿐 아니라 임보라 목사가 그동안 동성애 옹호 활동을 해온 것 자체가 개신교 목사로서 이단문제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8개 교단 이대위도 "목사가 교리적으로 동성애 문제를 진행해 나가는 상황이기에 퀴어성서 주석 번역본 발간은 이단문제에 해당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예장합동과 다른 8개 교단이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장 권오륜) 소속 임 목사의 이단성을 심사하겠다니, 먼저 이단이란 말뜻부터 짚어보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단은 사전적으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퀴어성경주석 번역 참여나 동성애 옹호활동을 하는 임 목사 보다 오히려 보수 기독교단이 여과 없이 쏟아내는 동성애 혐오 감정이 이단에 더 가깝다.
해마다 퀴어문화축제가 열릴 즈음이면 보수 기독교계는 현장에 몰려와 온갖 선전구호를 외친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동성애 조장, 에이즈 확산'이란 구호다. 이는 명백한 허위사실이다. 에이즈, 즉 후천성면역결핍증은 안전하지 않은 성관계, 그리고 낙후된 보건의료 체계로 인해 생긴 질병이라는 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열가지 계명 가운데 아홉 번째가 ‘네 이웃에 대해서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이다. 현대적 의미로 바꾸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겨냥해 가짜 뉴스를 만들어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보수 기독교단의 성소수자 혐오는 이런 맥락에서 계명 위반이고 결국 이단이다.
소속 교단 목사의 성범죄는 문제없다?
예장합동 교단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타 교단 목회자의 ‘동성애 활동'을 문제 삼아 이단성을 다룰 자격이 있는지 말이다.
예장합동 교단이 동성애 확산에 따른 성도덕 타락을 먼저 생각했다면 전병욱씨의 성범죄 역시 엄정하게 다뤘어야 했다. 그러나 예장합동 평양노회는 전씨에게 설교권 정지 2개월, 공직정지 2년이란 징계로 그의 범죄를 덮었다. 전씨가 복수의 여성도에게 심각한 성추행을 가했다는 정황이 공식 제기됐음에도 평양노회는 모두 배척했다. 오히려 사회법정이 전씨의 성범죄를 공식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은 "전병욱 목사가 담임목사의 지위를 이용해 장기간 다수의 여성 신도들인 피해자들을 상대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해온 것으로 인정된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전씨 재판과정에서 보인 평양노회의 행태 어디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은 찾기 힘들다. 그런 예장합동 교단이 타 교단 목사의 성소수자 인권증진 활동을 문제삼겠다니, 해충이 살충제 효능을 검증하겠다고 나선 꼴이다.
예장합동의 뜬금없는 이단성 심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예장합동은 2015년 9월 제100회 총회 당시 "총회 임원회와 정치부 임원회가 로마 가톨릭 이단성 공포 안건을 맡기로 했다"고 결의한 바 있었다. 총회장에서는 ‘가톨릭은 이단도 아닌 이교'라는 원색적 주장이 불거지기도 했다.
예장합동 교단에게 당부한다. 돈키호테식 이단심사 전에 당신들 발밑부터 바라보라고 말이다. 최근 3년 사이 예장합동 교단은 현저한 교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해 9월 열린 제101회 총회 보고에 따르면 2015년 교인수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만 여 명이 줄어든 270만 977명이었다. 앞선 2년 간은 두 해 연속으로 13만 명이 교회를 떠났다. 교세 감소 현상은 다른 교단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교세가 감소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타락해 있어서다. 모든 문제는 문제해결의 문제다. 교세 감소 문제의 해결은 사실 명확하다. 우선 교회의 타락을 부끄러워하고 통회자복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바로세우는데 앞장서야 한다. 그러나 예장합동 교단을 위시한 보수 교단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내부개혁보다는 성소수자나 타종단, 특히 이슬람 등 외부 요인을 끌어들여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말이다.
성소수자는 불가촉 천민이 아니다. 단지 성적 지향이 ‘다를' 뿐이다. 특정 교리를 앞세워 '다름'을 정죄하는 태도야 말로 지적받을 일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예장합동은 자신들의 발밑부터 살피기 바란다. 내부개혁엔 눈 감고 네 이웃을 거짓증거하면 자신만의 게토에 갇히게 될 것이다. 예장합동을 거들고 나선 8개 교단도 마찬가지다. 공멸의 길로 접어든 그 발걸음을 속히 되돌리기 바란다. 물론 공멸을 고집하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