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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또 다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다

교단 입김에서 자유로운 독립 기구 만들어 전병욱 성범죄 재조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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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삼일교회가 2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예장합동 총회에 전병욱씨 성범죄 사건 재조사를 촉구했다.

서울고등법원이 전병욱씨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배상책임을 지우면서 전씨의 성범죄를 재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 삼일교회는 2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예장합동)와 평양노회에 사건 재조사를 촉구했다.

전씨는 법원 판단에 불복해 상고한 상태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사건에 대한 최종 판단이 내려지게 됐다. 교회 안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교회 법정에서 정의를 구하지 못하고 사회법에 호소해야 하는 현실은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사회법정으로 공방이 옮아간 근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재판권을 가진 평양노회가 재판을 공정하게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일교회 측도 사회법정에 호소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간 평양노회 재판국은 전병욱 목사를 평양노회에 가입시키고, 홍대새교회에 찾아가 ‘평양노회가 전병욱 목사를 지킬 것'이라고 말한 김진하 목사를 재판국원으로 세우는 등, 불합리한 행보를 보여왔다. 이에 삼일교회는 교회법상의 재판이 아닌, 사회법상의 재판에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 번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살펴보자. 재판부는 판결문에 다음과 같이 적시했다.

"전씨가 복수의 피해자들에게 성추행 및 성희롱을 가한 행위가 인정되고, 그중 전씨의 피해자들에 대한 추행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1항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또는 기습추행으로서 형법 제298조의 강제추행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보인다."

비록 민사 사건이어서 전씨에게 형사상 책임을 지울 수는 없지만, 전씨의 행위가 성추행·성희롱이었고 이 같은 행위가 실정법 위반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대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나 1심과 2심이 ‘사실'을 다툰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2심 재판부가 전씨의 성추행 사례를 구체적으로 적시했음은 주목할만하다.

응답하라 예장합동

대법원 판단과는 별개로 예장합동과 평양노회는 모르쇠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 교회 법정이 신뢰를 상실한 현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신뢰회복에 매진해야 한다. 평양노회가 전씨 재판을 진행하고 내린 최종판결문은 이들의 도덕성이 어느 수준까지 타락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씨는 이 사건(성추행 - 글쓴이)에 대하여 윤리적, 도덕적인 책임을 지고 17년 동안 청년목회를 통해 부흥시킨 2만여 명의 성도와 253억 원의 현금을 남겨놓은 채 2010년 12월경 삼일교회를 떠나 사임했습니다."

평양노회의 판단은 한 마디로 ‘성공한 목회자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크기를 키우는데 성공하면, 그 과정에서 저질러진 죄악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반면 판결문 어디에서도 전씨의 성추행으로 인해 피해 당한 이들의 아픔을 보듬는 대목은 없다. 삼일교회 기자회견에 패널로 참석했던 교회개혁실천연대(아래 교개연) 박득훈 공동대표는 이렇게 개탄했다.

"평양노회 판결문을 보면서 가슴 아팠던 대목이 바로 이 대목이다. 2만여 명의 성도? 현금 253억? 한국교회는 미쳤다. 정말 미쳤다. 대다수 한국교회는 예수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토록 신뢰하고 존경했던 목회자 한 사람으로부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당하는 이의 아픔에 눈물 흘리실 것이다."

사회법정은 목사의 성실의무 위반에 엄중하게 경종을 울렸다. 아래는 판결문 중 일부다.

"담임목사는 위임인인 교회에 대하여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서 신도들과의 신뢰 관계를 불법적인 언행 등으로 훼손시키지 아니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므로...."

신뢰회복은 쉽지 않다. 예장합동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태도로 전씨 사건 재조사에 임해야 한다. 그러나 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교회의 조직은 개별 교회가 모여 노회를 꾸리고, 각 노회가 모여 총회를 이룬다고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노회와 총회는 목회자들의 사실상 친목 모임인 게 지금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재판권을 가진 평양노회가 버젓이 전씨가 개척한 홍대새교회를 찾아 드러내놓고 ‘홍대새교회를 지키겠다'고 선언한 건 따지고 보면 당연한 귀결인 셈이다.

예장합동 교단의 현행 제도와 분위기로 봐서는 전씨 성범죄 재조사에 나서지도 않고, 재조사를 해봐야 무마로 결론내릴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이에 독립적인 기구를 설치해 재조사할 것을 주문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를 위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꾸려졌듯이 말이다. 박득훈 교개연 공동대표도 "교단 헌법에도 (특검법과) 유사한 법령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독립적인 기구 설치를 위한 여론을 모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약 관련 규정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 지금 예장합동은 규정을 핑계댈 처지가 아니다. 무너진 신뢰회복을 위해선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전씨의 성범죄는 한 개인의 윤리 타락에 그치지 않고 예장합동 교단은 물론 한국교회 전체의 신뢰를 묻는 사건으로 확대된 상태다. 현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할 때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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