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14일간 휴가 묵상

제임스 보이스(James Boice)

<첫날>

휴가묵상
(Photo : ⓒ biblestudytools.com)
▲여름휴가 중인가? 그렇더라도 규칙적으로 묵상의 시간을 가져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사랑스럽지 않은 존재이다.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들 중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울 수 있지만 그때는 인간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일 뿐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면, 우리가 근소하게라도 바람직해보이는 점은 조금도 없다. 그분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거룩하지 못하다. 그분은 정의로우신데 우리는 정의롭지 못하다. 그분은 사랑하시는 데 우리는 증오와 온갖 종류의 죄로 가득하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죄인이고 하나님께 의도적으로 반역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사실 이것은 대단히 경이로운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적을 이용해서 그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신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5:6-8)

<둘째 날>

우리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으로만 가득 채울 수 있는 공간과 함께 우리를 창조하셨다. 다른 말로 하면, 그분은 우리를 무의미한 존재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피조물보다 더 고상한 존재, 즉, 창조주와 교제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그래서 어거스틴이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의 마음은 그분 안에서 안식을 취할 때까지 쉴 수가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실제로 알 때까지 쉴 수 없다는 사실은 그분의 사랑의 증거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편63:1)

<셋째 날>

당신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소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만일 내가 여론조사를 실행한다면 최고로 많은 표를 얻게 될 대답이 행복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행복이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실제로 이 나라에서 행복을 추구할 특권은 우리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들 중의 하나로 선포되어 있기까지 한다. 그러나 행복 자체를 보장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은 지혜롭게도 그런 권리들을 "생명, 자유 및 행복의 추구"라고 규정했다. 자유는 보장할 수 있다. 생명도 어느 정도까지는 그렇다. 그러나 행복은 아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만 개인에게 보장되어 있을 뿐이다.

만일 당신이 행복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우리 대부분이 그러하지만), 그리고 만일 당신이 그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면, 당신은 2천 년 전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한복음13:16-17)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한복음13:16-17)

<넷째 날>

왜 우리는 성경을 소중히 여기는가? 왜 우리는 그 말씀을 암기하는가? 그것은 이 말씀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내게로 와서 그분의 품성을 전하며 영원히 거하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그 어떤 것들도 모두 사라진다. 어떤 것들은 우리 생애 중에 족히 사라진다. 당신의 자녀가 오늘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개념과 관점들은 그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바뀌어버릴 것이다.

만일 당신이 부모라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서 이 성경에서 발견되는 진리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어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주면 자식들에게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돈은 하룻밤만 지나면 사라진다. 게다가 자식들이 거부할 때도 있다. 다른 부모들은 자식에게 물려줄 것이 훌륭한 교육과 그들 자신의 세계관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변한다. 교육조차 예전처럼 그렇게 높이 평가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이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이사야40:6-8)

<다섯째 날>

우리들 중 어떤 사람들은 너무 많은 일들을 자기 인생에다 우겨넣으려고 한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위한 계획도 꽉 채우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게 우리를 가득 채워넣으려고 하고 우리의 성공이나 다른 친구들의 좋은 의견에도 깊게 관여한다. 그러다 우리 인생이 엉기거나 혼란스러울 때, 그리고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일 때, 우리는 괴로워한다. 당신도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것들을 내어보내는 것을 배울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당신의 마음에 정좌하게 하고 신실하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에서 주인이 되거나, 아니면 그 어떤 것에도 주인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당신의 주인이 되어야 하고 언젠가는 주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고린도전서15:25).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한결같으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 주의 종들의 자손은 항상 안전히 거주하고 그의 후손은 주 앞에 굳게 서리이다 하였도다"(시편102:25-28)

<여섯째 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 대답은 그분이 예수와 같다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랑이며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써 그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안다. 당신은 하나님이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이 지혜로 가득하며, 그분이 당신을 이해하고, 그 어떤 극한상황에서도 당신을 도우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싶은가? 당신은 예수 때문에 그것을 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깜깜한 상태에 있지 않다. 우리는 "오,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더라면! 그분을 알기라도 했다면 참으로 좋았을 것을!"이라고 말하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종류의 발언을 할 상태에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는 성경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때 그분께 시선을 돌리고 "여기에 우리 주님이 나타나셨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며 그 때문에 그분께 예배한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서1:15-20)

<일곱째 날>

기도한다고 해서 우리 자신의 문제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기도는 우리 자신의 필요나 욕구에만 하늘의 자원이 사용되도록 하늘 은행으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백지수표와 같은 것이 아니다. 기도에는 책임이 동반되며 그 책임 중 하나가 남을 위한 중보기도이다. 다른 사람들도 욕구가 있지 않은가?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한다. 기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하므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하게 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에베소서6:18)

<여덟째 날>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을 종종 사랑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실패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종종 다른 기독교인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 또한 부끄럽지만 사실이다. 그들은 형제애를 분명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그들 자신의 특수한 신앙공동체에만 적용한다. 가끔 이것은 사회적 분파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이 중상류층의 사람들과 교제하고 사랑하거나, 정반대로, 하층민과만 교제를 하는 경우이다. 그 분열이 교단 때문에 생긴 시대도 있다. 그리고 엄격한 신학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과만 결속하는 경우도 여전히 있다. 이것은 옳은 일인가? 기독교의 형제애와 그것에 동반하는 사랑이 그렇게 제한적일 수가 있는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데에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 이외에 다른 제한 조건이 없다. 따라서 형제자매들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사랑은 하나님의 참 자녀라는 증거를 보여주는 모든 사람에게로 확장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한1서4:21)

<아홉째 날>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따르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모범을 좇아 사는 것까지 의미한다. 그것이 그분을 따르는 것이며 그분의 제자가 되는 길이다. 이런 제자도는 개별적이며, 활동이 필요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제자가 되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넘길 수 없는 것이어서 개별적이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그를 개별적으로 부르셨을 때 그것을 회피할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활동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하나님 스스로도 일하시기 때문이다. 활동하지 않는 것은 뒤로 처진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그 길은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이 십자가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길은 영광으로 인도하지만 그 전에 십자가를 거치게 된다. 그런 길은 자신을 부인하고 그분을 따르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적 결단에 따라 짊어지는 자들만이 걸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에베소서5:1-2)

<열째 날>

예수 안에서 사랑은 "가능한 한" 새로워졌다. 여기서 당신은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는 십자가에서만 목격되고 다른 곳에서는 같은 정도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느 정도인가? 하나님이신 아들에게 인간의 몸을 입혀서 십자가에서 죽이면서 거기서 타락한 종족의 죄를 짊어지고 그 죄에 대한 처벌을 감내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 아들이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잠시 단절되었기에 깊은 고통 속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가복음15:34)라고 부르짖는 정도까지 그분의 사랑은 베풀어졌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정도이다. 이로써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이 되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에베소서3:17-19)

<열한째 날>

사람들이 종교 문제에 관해서 의심을 표명하는 것을 매우 가치 있는 일인 양 생각하는 이유를 나는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 확신에 차 있는 것이 헛되거나 불손하다고 생각하며, 정반대로 "나는 정말로 잘 몰라... 그러길 바래... 그렇게 믿고 싶기는 한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등으로 말하는 것이 겸손하고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리로부터 멀어지는 태도이다. 정말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의 계시 앞에 고개를 숙이고 하나님의 존재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의심할 만큼 무언가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이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의 말씀이 신뢰할 만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요한1서5:10 참고).

예수께서는 살아계신다! 이 사실 위에 굳건히 서라. 이것을 믿어라. 이것을 선포하라. 이 사실을 좇아 행동하라. 욥과 함께 외치라: "나의 구세주가 살아계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시편19:7-9)

<열두째 날>

예수께서 우리가 그분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처럼 되셨다는 것은 전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기적들 중의 하나이다. 어떻게 그분이 우리와 같아졌는가? 그분은 히브리서의 기자가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4:15)"라고 말한 대로 우리와 같이 유혹을 받으셨다. 당신은 유혹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현재 유혹을 받고 있는가? 그분은 그러셨다. 하지만 그분은 그 유혹을 이기셨다. 이제 그분은 하늘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시며 당신이 위기 속에서 자비와 은혜를 구하며 그분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또한 우리처럼 실망하셨다. 한 친구가 그분을 배반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분을 좌절시켰다. 어느 누구도 그분을 정말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도우려고 했던 동포들이 그분을 죽였다. 분명히 예수께서는 실망이 무엇인지 아셨지만, 이런 일들이 그분을 패배시키지는 않았다. 그 일들이 그분께서 원한을 품도록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은 그것들을 이겨내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브리서4:14-16)

<열셋째 날>

영원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자신도 하나님이셨던 분이 인간이 되어 우리의 죄를 덮어쓰고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 영적인 죽음의 지경까지 경험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으니 나는 그렇게 믿는다. 더 나아가 놀라워하기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되면 우리에 대한 그분의 큰 사랑에 감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기서 그분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본다. 그 길이와 너비를 본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그렇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십자가는 그분의 사랑의 증거이다. 죄를 알지도 못하시는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해 죄를 짊어지셨으니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은 지대하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53:4-6)

<열넷째 날>

당신은 그리스도의 기적에 참여할 것인가? 당신은 아마 "무슨 소리요? 예수님 이외는 누구도 죽은 자를 살릴 수 없지 않소"라고 말할 것이다. 맞다, 사실이다. 하지만 예수님만이 죽은 자를 소생시킬 수 있다하더라도 그분은 구경꾼들을 그 기적에 참여시키는 것을 기뻐하셨다. 첫째, 그들에게 무덤의 돌을 옮기라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 기적이 일어난 후, 그들은 나사로를 감싼 세마포를 풀라는 명령을 실행했다. 우리가 죽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하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할 수는 있는 것이다. 우리는 준비작업을 할 수도 있고 일이 끝난 뒤 뒤처리를 할 수도 있다. 우리는 돌, 즉, 무지와 실수와 편견과 절망의 돌을 함께 제거할 수 있다. 기적이 일어난 후 우리는 새롭게 기독교인이 된 사람으로부터 의심, 두려움, 주저함, 낙심의 수의를 풀어줄 수 있다.

기적은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 기적을 이루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하고자 하는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린도전서3:6-9)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ible-study/topical-studies/vacation-meditations-11634511.html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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