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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멋진 계획

2017년 7월 23일 청파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엡1:3-10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 엔 에페소, 엔 크리스토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오늘 우리는 에베소서의 한 대목을 읽었습니다. 이 짤막한 본문 가운데서 반복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아들 안에서'가 그것입니다. 헬라어로 '엔 크리스토'인데, 이 말 속에 바울 사상의 핵심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 서신의 수신자는 '에베소에 사는' 성도들입니다. 헬라어로는 '엔 에페소'입니다. '엔 에페소'와 '엔 크리스토'라는 두 구절이 믿는 이들의 실존적 조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엔 에페소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나타낸다면, 엔 크리스토는 그것을 넘어서는 가치를 가리킵니다. 일단 충실한 삶이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아름답게 그리고 소중하게 살아내는 동시에 자기가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를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일일 겁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 세상보다 네가 떠날 때의 세상이 더 나은 곳이 되게 살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것을 요약한 말이 '티쿤 올람'(tikkun olam)인데, '세상을 고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시공간의 제약 혹은 자기 삶의 조건을 뛰어넘는 비전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 비전은 '엔 크리스토'라는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 표현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일의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거칠게나마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은총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둘째, 믿는 이들의 생각과 삶과 실천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마음에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자기의 한계를 뛰어넘어 누군가에게 자신을 선물로 내주며 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작가인 아모스 오즈는 "인간은 누구나 섬이 아니다"라고 노래한 존 던(John Donne)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그 어떤 남자라도, 그 어떤 여자라도 섬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반도(半島)이다"(아모스 오즈, <광신자 치유>, 노만수 옮김, 세종서적, 2017년 6월 30일, p.83). 인간의 삶이란 대륙에 뿌리를 내리되,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형국이라는 말일 겁니다. 민족, 종교, 문화, 가족이 대륙이라면, 신앙은 바다를 향해 열린 전망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은 '살고 있는 땅', '난 곳',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가라 명하시는 곳으로 갔습니다. 주어진 삶에도 충실해야 하지만,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꿈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비전이 없는 현실주의적 삶은 욕망의 노예살이가 되기 쉽고, 현실에 뿌리 내리지 않은 비전은 자칫하면 몽상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본문에 의지해 말하자면 잘산다는 것은 '엔 에페소'와 '엔 크리스토'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따라 사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기적이나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길은 어리석게 보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결국 자기를 선물로 내주는 일이니 말입니다.

* 신령한 복

믿음으로 살면 현실 속에서는 늘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그런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주님께서 "세상의 자녀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슬기롭다"(눅16:8b)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세상이 불의할수록 선과 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은 미움의 표적이 되곤 합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세상의 어둠과 불의를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모함을 받거나 왕따 당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게 좋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어려운 일을 겪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고 억울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사는 이들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손해를 보고 사는 것처럼 보여도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과 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이들이 누리는 영적인 복과 자유를 세상의 무엇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 복을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3b-4)

'신령한 복'이란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택하심', '사랑하심',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심'이 그것입니다. 값없이 주어지는 주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나님이 자기를 택하셨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받을 만한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았다는 사실 앞에 전율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히브리의 한 시인의 노래가 떠오릅니다. "하나님,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기 없는 땅,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목이 마르고, 이 몸도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시63:1) 이런 그리움을 품고 사십니까? 절박한 처지에 몰렸을 때는 이런 그리움이 우리 속에 떠오릅니다. 하지만 안온한 일상이 지속될 때는 이런 그리움이 희미해집니다. 오래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채희동 목사는 이런 가슴 절절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그리워하는 건

하나님이 나를 그리워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하루 종일 그리워하면

하나님은 영원토록 나를 그리워하십니다"

믿음이란 나를 그리워하시는 하나님의 그리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세 돌도 안 된 손녀가 전화로 "할아버지 보고 싶어요" 하고 말할 때 가슴이 뭉클해지더군요. 우리가 하나님을 그리워하듯이 하나님도 우리를 그리워하십니다. 그렇기에 되는 대로,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삶, 흠 없는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거룩한 삶이란 자기 상처와 아픔에만 매달려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삶입니다. 그 마음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육신에 속한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습니다. 탐욕, 교만, 분노, 인색, 나태함, 시기심이 우리를 지배했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되는 순간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는 기쁨이 우리 속에 유입됩니다.

기쁨은 성령의 은총 안에 머무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색입니다. 죄의 사슬에서 풀려난 자의 기쁨, 길을 찾은 자의 기쁨, 이웃에게 자신을 선물로 내주는 기쁨이 참으로 큽니다. 그 기쁨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이기에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가끔 곤경을 만나도 그는 우울증이나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베푸셔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응답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주십니다.

사람들은 대개 인생의 성공을 외적인 성취와 관련시켜 생각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지위에 오르고, 원하는 바를 다 누리며 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갖춘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가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가 여전히 자기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이라면, 그래서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는 인간 실격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성공이란 하나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 장엄한 세계

우리가 누리는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장대한 우주 섭리를 짧지만 아름다운 말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10)

세상은 어지럽기 이를 데 없습니다. 테러와 전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장구한 세월 동안 축적해 온 문화유산들이 자기 확장의 욕망에 사로잡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속절없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난민이 되어 세상을 떠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건너다가 차가운 바다에 빠져 죽어가는 이들이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방세계 주민들 가운데는 난민들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여겨 난폭하게 그들을 쫓아내려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약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도를 넘고 있습니다. 질서는 무너지고 혼돈이 힘을 얻고 있는 형국입니다. 평화로운 세상의 꿈이 가뭇없이 스러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끈질기게 하나님의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절망의 땅에 희망의 나무를 심는 사람들, 적대감이 넘치는 세상에 환대의 공간을 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살 권리를 확보해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참과 거짓', '빛과 어둠'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결단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헤겔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저녁이 되어야 날아오른다고 말했습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성찰적 지혜를 이르는 말입니다. 토마스 베리 신부는 "황혼은 어떤 다른 세계가 그 자신을 알리는 순간,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거룩함이 현존하는 순간"(토마스 베리, <황혼의 사색>, 박만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2015년 4월 20일, p.158)이라고 말합니다. 이건 물론 빛과 어둠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간의 오묘함을 가리키지만, 이것을 문명의 황혼에 적응해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인간중심주의, 소비중심주의, 물질 중심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문명이 황혼을 맞이하고 있는 때입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조금씩 퍼져가고 있습니다. 무한한 욕망과 경쟁을 부추기는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 시대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 해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의미를 다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제 눈의 안경'이라는 말처럼 각자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볼 뿐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절망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매우 분명한 지향점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통일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목표요 지향점인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바울 사도는 온 세상이 지향해야 할 목표가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온 세상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모든 차별의 장벽들을 온몸으로 허무셨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남자와 여자,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갈라놓던 모든 장벽들이 그분 안에서 다 녹아내렸습니다. 예수의 삶은 약한 이들에 대한 연민, 불의에 대한 분노,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힘에 대한 저항, 다른 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기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런 예수 정신을 통해 온 세상을 통합하는 것,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멋진 역사 계획입니다.

이 아름다운 꿈에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요?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사람들이 영광의 찬송을 주님께 바칠 때,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세상을 대할 때, 역사의 어둠은 물러갈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세상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제 정신을 차리고 살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멋진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한 부분이라는 자부심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될 꿈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 거친 세파를 뚫고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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