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특히 보수 개신교계의 못된 버릇 중 하나는 값싼 용서의 복음을 설파한다는 것이다. 올해로 72주년을 맞는 광복절에도 보수 개신교계는 값싼 용서를 설파했다. 38개 교단 연합체로 주로 보수교단 쪽 입장을 대변해 온 한국교회언론회(아래 언론회, 유만석 대표)는 지난 10일 광복절 논평을 냈다. 언론회는 논평에서 ‘용서'를 언급했다. 그 일부를 아래 인용한다.
"역사의 순환(순환론적 역사)을 글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으나, 슬픈 역사를 잊어버리는 일은, 가해자들로 하여금 비극적 역사를 다시 재현해도 좋다는 나쁜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기에 두려운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일제의 만행을 용서할 때도 되었다. 용서는 보복보다 더 큰 ‘갚음'이다. 그것만이 식민지배의 역사가 얼마나 우리로 하여금 강하게 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라를 거저 바치는 일이 다시 있어서는 안된다."
가해자의 반성 없는 용서는 있을 수 없다
용서란 가해자의 철저한 사죄와 반성이 있을 때 비로소 성립한다. 일본은 1945년 종전 이후 지금까지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을 침략한 역사를 부인해 왔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및 강제징용 등 과거사에 대해서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입장은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드러났다. NHK 이케하타 슈헤이 기자는 문 대통령에게 한일관계에 관련된 질문을 던지면서 "강제징용 문제는 과거 노무현정부 때 이 문제는 한일기본조약에서 해결된 문제이고,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한국정부가 하는 것이다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고 했다.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문 대통령의 입장은 분명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한일회담 당시 말하자면 알지 못했던 문제"임을 명확히 했고, 징용과 관련해서는 "양국 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징용 당한 강제징용자 개인이 미쓰비시 등을 비롯한 상대 회사를 상대로 가지는 민사적인 권리들은 그대로 남아 있다라는 것이 한국의 헌법재판소나 한국 대법원의 판례"라고 못박았다. 일본 기자의 우문에 대통령은 현답으로 맞받아친 것이다. 대통령의 답변에 비춰 보면 언론회의 논평은 참으로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의 답변에 환호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일본은 물밑에서 역사왜곡을 착착 진행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함도(일본명 하시마)'와 아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에 있는 쇼카손주쿠(松下村塾) 유적이다. 아베 내각은 두 곳을 한데 묶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는 데 남다른 공을 들였다. 일본은 군함도를 일본 산업화의 상징, 쇼카손주쿠는 일본 근대정신문화의 성지라고 선전한다.
우리로서는 분통터지는 일이다. 군함도는 강제징용의 아픔이 서린 곳이다. 비단 군함도만 아니라 야하타 제철소, 미쓰비시 광업 하시마 탄광, 다카시마 탄광 등 총 7곳에 5만 8000명의 조선인들이 강제로 끌려와 고된 노동을 강요당했다. 군함도에서는 122명의 조선인이 숨졌다. 그러나 일본은 이 같은 역사를 철저히 감추고 있다. 더욱 놀라운 건 국제사회에서 말 바꾸기마저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의 과거사 감추기, 아베의 군국주의와 맞닿아
군함도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당시 사토 구니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조선인의) 의사에 반해(against their will) 강제로 노역하게 된(forced to work)'이라는 표현으로 조선인 강제징용을 에둘러 인정했다. 이어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포함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약속했다. 유네스코는 이 약속에 따라 군함도의 등재를 승인했다. 그러나 승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일본은 말을 바꿨다. 기시다 후미오 외상이 'forced to work'이란 영어 표현이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쇼카손주쿠의 경우는 더욱 경악스럽다. 쇼카손주쿠는 에도 막부 말기 사상가인 요시다 쇼인(吉田 松陰)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서당 유적이다. 요시다 쇼인은 부국강병과 ‘한반도를 정벌하라'는 정한론을 설파했다. 말하자면 요시다 쇼인은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기초를 놓은 셈이다. 실제 조선 침탈의 선봉장 이토 히로부미,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실질적 배후 이노우에 가오루, 가쓰라 - 테프트 밀약의 주역 가쓰라 타로, 초대 조선 총독 테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모두 요시다 쇼인의 영향을 받았다. 그의 영향은 현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에까지 이어진다. 아베 총리 스스로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특히 쇼카손주쿠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아베 총리는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 일본'을 꿈꾼다. 최근 지지율 급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가 권좌에 머무는 한 그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런 아베에게 군함도와 쇼카손주쿠는 오늘에 되살려야 할 자랑스러운 역사다.
요약하면 일본은 주변국을 침략한 과거사를 반성하기는 커녕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아베 내각 출범 이후엔 오히려 침략의 역사를 지우는 작업이 노골화되고 있다. 따라서 일제 강점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는 과거 일본의 만행을 기억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내는 일 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즉, 섣불리 용서를 입에 올릴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처음에 언급했지만 한국교회는 값싼 용서를 설파해 왔다. 값싼 용서는 교회 울타리 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지난 1980년 8월 한경직, 김준곤, 정진경 등 개신교 목회자 23인이 전두환씨를 불러놓고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회'를 열고 전씨를 축복했다. 당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점이었다. 결국 개신교 목회자들은 전두환씨와 신군부의 손에 가장을, 형제를, 친구를 잃었던 이들의 아픔은 외면한 채 새로 권력자로 부상한 전씨를 ‘용서'한 셈이다.
이런 이유로 일제의 만행을 용서하자는 언론회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누구나 주장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주장이 동등한 대접을 받아서는 안된다.
언론회는 한국 주류 38개 보수교단의 입을 자처해왔다. 따라서 언론회의 입장은 한국교회 전반의 입장으로 봐도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광복72주년을 맞는 뜻 깊은 날에 값싼 용서의 복음을 다시 들고 나온 데 참담함을 금할 길 없다.
한국교회, 특히 주류를 자처하는 보수 교계에 당부한다. 우리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싶은가? 정히 그러기를 원한다면 지금처럼 값싼 용서의 복음을 설파하고,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새정부의 개혁정책에 제동을 걸라.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지금의 기득권이나마 누리고 싶다면 얼른 발걸음을 돌이키라.
한국교회 안에 이 목소리를 들을만한 귀를 가진 깨어 있는 자가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