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교회와사회위원회와 1923관동조선인학살진상규명대책소위원회는 8월25일(금) 오후2시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관동조선인학살 제94주기 추도행사를 거행했다. 추도행사는 제1부 제94주기 관동대학살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와 제2부 관동대학살 제94주년 기념강연회 및 관동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탁본 전시회로 진행됐다.
본 추도행사가 진행되기 직전에는 오충공 감독의 다큐멘터리 "1923제노사이드, 93년간의 침묵"의 예고편이 상영됐다. 오 감독은 관동대학살이 자행된지 94년이 된 지금도 한국 정부에서는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행사나 위령비를 마련하고 있지도 않고 관련 특별법조차 국회에 상정되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8월30일(수) 부산에서 결성되는 유족회에 관심을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강연회에서 다나카 마사타카 센슈대학 교수는 "일본 내 관동대지진 때의 학살사건 진실규명운동의 현황"을 발표하면서, 현재까지 재일조선인들과 선의의 일본인들이 진상규명 노력을 해왔지만 민간 차원의 조사로는 희생자의 이름이나 숫자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고 일본정부도 학살에 대한 주체적이거나 간접적인 관여를 인정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보고하고 한국정부가 주도적으로 자료조사를 실시할 것과 일본정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할 것을 요청했다.
김강산 연구자(성균관대학교 박사과정)는 "관동대학살에 대한 기독교인의 대응"을 발표하면서, 학살이 발생한 뒤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를 통해 학살이 재난으로 알려졌지만 차차 진상이 전해지면서 민족문제로 인식변화가 일기 시작했음을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기독교 교역자들은 조선총독부의 "포괄적 구호"에 호응하여 인류애적 차원의 반응을 보인 반면, 일본 내 유학생들은 "조선인의 구호"와 생사조사를 주장하며 동포애적 접근을 시도했다. 당시 참상을 목격한 함석헌 유학생은 "내가 겪은 관동대진재"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그 사건의 의미를 지적했다: "관동대진재의 원흉은 누구냐? 지닌 화재가 문제 아닙니다. 그 핵심은 조선인 학살에 있습니다. 수로야 얼마 아니 되지만 그 죽음은 지진 화재에 죽은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실지로는 4, 5천이지만 그 뜻을 말하면 조센징이기 때문에 죽이는 것이니깐, 결국 전체 조선이 학살된 것입니다." 김강산 연구자는 이러한 반응들이 역사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상이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규정했다.
추도행사의 말미에 참석자들은 "관동대학살 사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촉구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낭독했다. 성명서는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체적인 진상규명을 조속히 실시할 것, 일본정부의 사과 및 국가적 책임을 요구할 것, 희생자 유골 봉환 및 추모시설 건립을 실행할 것, 관련 사건에 대한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을 교정하고 상시적 교육을 위한 '1923역사교육관' 건립을 추진할 것 등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