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만을 품은 한 블로거가 이렇게 말했다: "자기 책을 파는 목사들은 돈을 목적으로 그렇게 한다. 왜 그들은 항상 자기들의 '새' 저서를 언급해야만 하는가?"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것이 영업회사이든, 책 판매를 독려하는 교묘한 전략을 꾸짖는 블로그이든, 자주 들리는 질문이 있다: "목사들이 자기 책을 홍보하고 판매해야 하는가?"
한 대형출판사에서 나의 최근 저서 『하나님을 더 많이 갈급해 하라』의 완결을 재촉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냈다. 그들의 관심은 원고를 종결하도록 나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나는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출판의 과정이 진행되면서 그들은 그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이메일이 왔다: "근본적인 문제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이 출판을 이번 위원회에 회부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갈급하다"는 것을 모종의 관점으로서는 동의했지만, 그 책이 상품성이 있는지, 혹은 독자의 필요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갈급하다"는 단어가 주목을 끌지만, 슬프게도 "하나님을 더 많이"는 많은 사람들이 갈급해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냐구요? 간혹 우리가 사람을 돕는 일보다 판매전략에 더 부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이야기한 것이다. 작가로서 나는 독자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필요가 있는 것을 주고자 한다. 만일 우리의 관심이 사람 대신에 판매전략에 쏠린다면 그것은 저울을 잘못된 방향으로 기울게 할 것이다.
어떤 책이 두각을 드러내는지, 혹은 상품성이 있는지의 여부를 묻기 전에 나는 "그 책이 독자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하도록 실제로 도울 수 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얼마가 구입가능한 가격인지와 얼마가 너무 비싼 가격인지도 묻는다.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서 동시에 책들과 자료들을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여기에 처음부터 초심을 유지하게 하는데 필요한 점검목록을 소개한다.
1. "예스맨"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책임있는 충고를 적절히 들을 수 있는가? 당신의 걸음에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성숙한 신앙인들로부터 정기적으로 경건한 조언을 구하라. 우리가 행하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진실성과 진지함만을 전해야 한다(디도서2:7 참고).
2. 이것은 예수께서 지지할 만한 것인가? 어떤 책이 시장성이 있는가, 혹은 적절한가를 묻기 전에 "이것이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품성과 일치하는가? 이것은 적절한 메시지를 전할 것인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시험 들게 하거나 복음을 하시하게 하지는 않는가?
3. 당신의 목표는 당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가?
4. 우리는 소외계층들, 혹은 그 책들을 구입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축복할 수 있는가? 나는 내가 판매하려고 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수를 나눠주거나 적정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왔다. 『하나님을 더 많이 갈급해 하라』가 전자책 판매 시장에 등록됐을 때 선의의 사람들이 가격이 너무 낮다고들 많이 말해주었지만, 그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나는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되 돈을 더 적게 버는 방침을 세웠다. 우리 인간이 이런 면에서 아무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저 육신의 소욕과 싸울 뿐이다.
5. 하나님께서 당신을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한 올의 의심도 없이 확신하라. 많은 책들이 명성과 재정적 이득 때문에 집필되지만 그렇지 않은 책들도 많다. 지혜를 발휘하고 동기를 점검한 뒤에 "하나님께서 정말로 나를 인도하시는가? 나의 행위는 성경과 일치하는가?"를 물어라.
6. 나아갈 방향과 지혜와 분별력을 얻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라. 만일 우리가 세상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답을 구하고자 하면, 원래 의도, 시장성, 섬김의 자세 등에 관한 많은 질문들에 답이 주어질 것이다.
7. 의심이 들면, 각주를 달아라. 일반적으로 우리 문화는 분명한 출처를 중요시한다. 타협하며 살면 메시지도 타협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A.W. 토저는 "기독교가 당대에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빛 속에서 살지 않으면서 자기가 순종하지도 않는 진리를 공표함으로써 스스로를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통찰력 있는 관점이다.
우리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돈 때문에 저술을 한다고 성급하게 추정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우리가 정죄보다 은혜에 기울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만일 어떤 작가가 독자에게 도움을 줄만한 탁월한 작품을 쓴다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리고 싶어 하실 것이다. 기독교 작가들은 책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다. 대부분이 사람들을 돕고자 책을 쓰며 어떤 사람은 책의 출판, 인쇄, 배송 비용까지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
마태복음 21장 12절에 보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이 환전상들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이용해 조종했다. 물론, 이 구절이 책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에 반대하는 표준적 지침인 것은 아니다. 만일 어떤 작가가 저렴한 가격으로 양서를 제공하면 그것을 구매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소비자에게 달렸다. 이것은 마태복음 21장 12절과는 배경이 사뭇 다르다.
성경은 우리의 안내자이므로 다른 책들보다 더 많이 애독되어야 한다. 하지만 청교도들, A.W. 토저, 앤드루 머레이, D. 로이드-존스, E.M. 바운즈 등과 같은 사람들이 탁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 그들의 저술들이 무수한 사람들을 도왔다. 우리는 직접 들려주는 경건한 조언을 무시하지 않는데, 책의 형태로 되어 있다고 왜 무시하겠는가? 사람들을 이용하거나 사지 말아야 할 책을 쓴 "기독교인" 작가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목욕물과 함께 아기까지 버리지는 말자.
목회자들은 최고경영자들이나 사업가들이 아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완전히 굴복하도록 이끄는 일에 부름을 받았다. 예수께서는 흥하여야 하고 우리는 쇠하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놓치고 있어서 가끔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책을 쓴다고 해서 작가가 "돈을 위해서 그 일에 전념"한다고 즉시 추정해버리는 정죄적 정신은 제거하자.
기독교인들도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인생, 품성, 사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그 기반 위에서 평가해야 한다. 여러 해를 지내는 동안 몇 번의 잘못된 선택을 한 것으로 그 사람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의 인생과 품성을 종합적으로 볼 때 그가 맡은 사역의 진실성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똑 같이 베풀어야 한다.
기사출처: http://www.christianpost.com/news/should-pastors-sell-and-promote-their-books-193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