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따 사이비들 참 질기네 !"
24일 오후 방송된 OCN 드라마 <구해줘> 최종회에 나오는 대사다. 최종회에서 차준구(고준)는 석동철(우도환)과 함께 구선원에 들어가 그곳 신도들과 대결을 펼친다. 그런데 싸워도 싸워도 신도들이 끝없이 밀려오자 질린 표정을 하며 이 대사를 내뱉은 것이다.
준구의 말마따나 사이비 종교는 참 질기다. <구해줘>의 결말을 살펴보자. 사이비 종교집단 구선원의 영부 백정기(조성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강은실(박지영)은 기도 중에 자신에게 계시가 임했다고 굳게 믿고 구선원 재건에 앞장선다. 한편 구선원 신도들은 경찰서로 몰려가 집회를 연다. 이들은 취재진 앞에서 당당히 영부가 살아 있으며,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시리라고 고백한다.
일반 시청자들로선 이 같은 결말이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사이비 종교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다. 세월호를 운영했던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 유병언이 대표적인 예다. 비단 사이비 종교만이 아니다. 일반 개신교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겉으론 거룩하게만 보였던 담임목사가 교회 공금을 쌈지돈처럼 쓰는가 하면, 여성도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언론이나 교회 내 신도들의 양심고백으로 드러나도 딱 그때뿐이다. 이후의 사태는 대게 두 갈래로 흐른다. 교회가 목사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갈등이 지속되거나, 아니면 목사가 추종자들을 이끌고 교회를 새로 개척하거나.
욕망을 파고드는 사이비 종교와 정치
그런데 이 드라마는 비단 사이비 종교집단의 실태를 고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 이 드라마는 주인공 한상환(옥택연), 석동철, 임상미(서예지)의 성장통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생각한다.
세 주인공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큰 상처를 입었다. 상미는 학교폭력으로 쌍둥이 오빠 상진을 잃었다. 동철은 상미를 도우려다 그만 소년원 신세를 지고야 만다. 상환은 군수 선거에 출마한 아버지 한용민(손병호) 때문에 상미의 간절한 외침을 뿌리쳤다가 상미와 동철 모두에게 외면 당하고야 만다. 상환이 구선원에 잡혀 있는 상미를 구하려고 물불 가리지 않은 건 지난 날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주인공들의 성장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상환, 상미, 동철은 구선원과의 싸우는 과정에서 어른들의 세상을 목격한다. 동철은 흙수저였던 탓에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어 학교와 사회로부터 차례로 버림 받는다. 상미는 구선원이 지역 경찰까지 장악했다는 사실을 알아채곤, 오히려 구선원으로 돌아가 사이비 종교에 빠진 다른 이들을 구해내려 한다.
상환의 경우는 더욱 극적이다. 상환의 아버지인 한용민은 군수에 이어 도지사 자리까지 넘보고, 이를 위해 백정기와 결탁을 시도한다. 그래서 상환이 아버지의 도움을 구했음에도 오히려 상환이 보는 앞에서 백정기와 인사를 시킨다.
이 대목은 무척 시사적이다. 사이비 종교는 비단 종교의 울타리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들은 그간 신도들을 쥐어짜 축적한 재산으로 지역사회를 쥐락펴락 한다. 당장의 표가 아쉬운 지역 정치인들은 종교집단 교주의 영향력에 기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이에 보좌관 이지희(강경헌)는 한용민에게 백정기를 적당히 이용할 것을 주문한다. 이에 한용민과 백정기는 자연스럽게 만남을 갖고 유착관계를 구축한다.
이 장면을 비단 사이비 종교에 국한되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는 없다. 만약 사이비 종교만의 이야기로 치부한다면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놓치게 된다.
정치인들은 종단을 막론하고 관행적으로 지역구에 상당한 교세를 구축한 종교 지도자를 찾아간다. 특히 대형교회는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줄을 선다. 의례적인 방문일수도 있겠으나, 대개는 성직자의 영향력을 빌어 표 확보를 하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다. 정치인의 방문을 받은 종교 지도자는 정치인의 민원을 들어주고, 대신 슬그머니 반대급부를 들이 민다. 최근 논란이 이는 종교인과세·동성혼 법제화 반대 등이 대표적인 '청구서'다. 결국 종교나 정치나 욕망에 기생해 이득을 취하는 데에선 매 한 가지인 셈이다.
아래 한상환과 이지희 보좌관이 나누는 대화는 이 같은 ‘정종 유착'이 횡행하는 우리사회의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상환 : "아무 힘없는 사람 갖고 자신의 욕망 채우는 거, 사이비랑 똑같네. 당신도, 우리 아버지도 똑같은 사이비라고 !"
이지희 :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꺼야 이 세상은 가짜와 진짜가 사실은 다르지 않다는 거"
이지희 말때로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는 참으로 어렵다. 특히 무지는 사이비 종교와 저질 정치인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맥락에서 <구해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 ‘무지'군이라는 점은 무척 시사적이다.
약해서도, 무지해서도 안 된다
드라마 <구해줘>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속성과 주인공들의 성장통에다 출연 배우들의 강한 개성이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 손병호와 옥택연은 이미 KBS 2TV 드라마 <어셈블리>에서 부자로 합을 맞춰봐서 그런지 둘의 케미는 더욱 농익은 느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미 역을 맡은 서예지와 석동철로 분한 우도환의 연기는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특히 17일 방송된 14회차에서 서예지의 방언 연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기자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서 방언 기도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는데, 이제껏 서예지만큼 강렬한 방언 기도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방언 연기와 관련해 서예지 측 관계자는 OSEN에 "새하늘어 장면은 대본과 애드리브를 섞어서 연기했다"고 전했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종교든 실제 사회든 진짜와 가짜의 경계선은 참으로 희미하다. 가짜에 빠지지 않으려면 약해서도, 무지해서도 안 된다. <구해줘>에서도 엄마 김보은(윤유선)은 아들 상진이에게 다시는 약해지지 않겠노라고 약속한다.
신앙인이라면 늘 깨어 기도해야겠고, 일반 시민이라면 욕망을 파고드는 정치인들의 얄팍한 농간에 속지 않도록 시민의식 함양에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사악한 종교와 교활한 정치로부터 도움이 필요한 순간 간절히 외쳐라. 세상은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는다. ‘구해줘'라는 상미의 간절한 외침에 상환이 귀기울였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