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가난에 대해 예수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셨나?

존 배리(John D. Barry)

경제 불평등 심화
(Photo : © Albin Hillert / WCC)
▲빈곤의 문제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믿음을 검증하는 통로이다. 사진은 이집트 카이로의 부활교회 옆 우물에 매달려 있는 호리병이며 가난과 외로움을 응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으로 사셨고 그렇게 죽으셨다. 그분은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다. 그분은 빈곤한 자들을 그렇게 깊이 사랑하셨다.

우리가 믿는 바대로 살기

우리가 믿음으로써 무엇을 하는가의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믿는가의 문제만큼이나 예수께 중요하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완전히 헌신하셨다. 그분은 믿음에 따른 행동을 좋아하신다. 그분은 어떤 부자 청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19:21). 그 청년은 슬픈 기색으로 떠났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유명한 말씀을 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태복음19:23-24)

그때 예수의 제자들이 질문한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을 둘러보고 말씀하신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태복음19:26). 예수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거나 구원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것이 오로지 하나님께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인간이 그분께서 들어오시도록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들 중 많은 이들이 그 부자 청년과 꼭 닮았다. 우리 입술의 한 쪽으로는 예수께 대한 충성을 말하지만 다른 한 쪽으로는 화려하게 장식된 부에 충성을 다짐한다. 나는 이것을 안다. 왜냐하면 그 청년이 내가 물었음직한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자들에 대해 평가하시도록 만든 사건을 살펴보자.

"어떤 사람[부자 청년]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태복음19:16-20)

예수께서는 분명히 실망하셨고 아마도 기분이 상하셨을 수도 있다: "왜 너는 내게 무엇이 선한 것인지를 묻느냐?" 그 청년은 잘못된 질문을 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예수를 따를 수 있는지, 혹은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혹은 선한 하나님을 대신하여 세상에 어떤 선한 일을 할 수 있는지 등을 묻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물었다: "내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만일 우리가 자신에게 솔직하다면 그 질문은 오늘날 우리 중 다수가 하나님께 묻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예수께서는 그 질문에 기분이 얹짢으셨다.

영생(구원)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이지만 행동을 촉발하려는 선물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목적을 주려는 것이다.

내가 그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전개된 현장을 직면했을 때 나는 그가 던진 또 다른 질문을 다시 제기했다: "어떤 계명인가요?" 예수께서는 모든 관련된 십계명을 일러주셨다. 그렇게 하실 때 사실상 "그 계명 전부"를 지킬 것을 암시하셨다. 그 사람은 그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문제의 핵심을 건드린 것은 바로 이 질문이다. 예수께서는 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이 부족하다고 일러주셨다. 그는 자신이 고통스럽게 느낄 정도로 남에게 베푸는 일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베푸는 능력이 부족했다. 재산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예를 들어, 창세기12장1-3절 참고). 매우 단순한 사실이다. 재산은 쌓아놓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감동을 주시는데 재산을 베풀지 않으면 그 재산 때문에 당신은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히 받아누리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염려하거나 걱정하지 마라. 대신에 기도하라. 그리고 이 말씀을 기억하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태복음19:26).

예수께서 오늘의 우리에게 하고자 하신 말씀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예수의 말씀을 오늘에 적용할 때 그 말씀들은 예수를 따르는 것과 우리 사이에 개재해 있는 인간관계, 직업, 사건 등등으로부터 물러서라는 것처럼 들린다. 우리는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지키라고 일러준 계명을 여전히 지키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19:18-19).

예수께서는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하도록 초청하셨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갖고 그 초청에 응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 대가가 가끔 견디기 힘들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관점에서 볼 때 그 일은 매우 사소해 보인다.

예수의 화폐와 가난의 문제 "인정하기"

예수의 왕국에서 통용되는 화폐는 우리의 것과는 다르다. 예수의 경제는 자기희생과 그분의 화폐인 사랑에 기초한다. 예수께 믿음과 행위는 동일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한쪽만을 취할 수가 없다.

가난의 문제(그리고 예수께서 가난에 대해서 말씀하신 바)에 대해 성찰할수록 우리는 빈곤한 자들의 문제를 그들이 하는 만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행동하지 않았던 것 때문에 빈곤의 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우리 모두는 현재 세계의 상태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세계의 상태를 변화시키는 일에 예수와 함께할 수 있다.

만일 예수께서 믿음이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우리라고 왜 믿지 못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는데 왜 우리는 진정한 제자도를 추구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지 않는가? 믿음이 진실한 소망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믿음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을 증명하기를 요청하셨다. 우리는 그분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분은 당신에게 무엇을 포기하라고 요청하고 계신가? 이것이 예수님의 경제관념이다. 그분은 세상의 가능태를 전망하시고 그 전망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도록 초청하신다. 그것은 세상의 화폐를 사랑의 화폐로 교환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기사출처: http://www.biblestudytools.com/blogs/jesus-economy/what-jesus-really-said-about-poverty.html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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