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자수첩] 다잉 메시지

한신대 학내갈등에 붙여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에서 루브르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 자크 소니에르는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그가 죽은 자리엔 이런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랭던을 찾아라."

랭던은 하버드대 기호학 교수로 소니에르가 죽던 그 시각 특강을 위해 파리에 와 있었다. 경찰당국은 혹시 랭던이 소니에르의 죽음을 푸는 실마리를 쥐고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에 그를 찾아간다. 소니에르의 손녀 소피 느뵈 역시 랭던에게 접근해 할아버지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려 한다.

소니에르는 생전에 랭던의 도움을 간절히 원했나보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 "랭던을 찾아라"는 메시지를 남겨놓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죽음으로서 전하고자 하는 목소리를 ‘다잉 메시지(Dying Message)'라 한다.

연규홍 총장 선임으로 촉발된 한신대학교 학내갈등이 신학전공 학생들의 집단 자퇴결의에 이어 급기야 세 학생들의 삭발, 무기한 단식농성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8일 오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앞에서 있었던 삭발식은 시종 무거운 분위기 아래서 진행됐다. 삭발에 나선 학생도, 이를 지켜보던 동료 학생도 눈물을 흘렸다.

이 학생들은 삭발에 앞서 이미 자퇴결의를 했다. 말하자면 학생으로서 더 이상 생명을 부지하지 않겠다는 ‘다잉 메시지'를 전한 셈이다.

그러나 기장 총회나 학교측 어느 누구도 상황을 다잡으려 나서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와중에 학교측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다. 한신대 측이 본지에 실린 학내갈등 관련 기사 12건에 대해 정정보도 청구를 포털 ‘다음'에 제기한 것이다. 청구취지의 핵심 뼈대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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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13일 한신대 신학생들이 자퇴서를 학교측에 제출했다. 학생들은 이에 앞서 채플을 드린 뒤 캠퍼스를 행진했다.

-. 인터넷 언론매체 <베리타스>는 "한신대 이사회 연규홍 교수 신임 총장 선임, 문제는 없나?"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 선임 첫 기사 제목에서부터 부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음.
- 또한 자질과 절차의 문제를 거론하며 "연 교수는 일찍부터 논문표절 의혹을 받아왔다. 곧 논란이 불거질 것", "한신대 이사회의 연 총장 선임은 ... 절차상 하자가 심각", "그의 자질을 두고 잡음이 일고 있어서 통과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 등의 확인되지 않은 이의 인용을 통해 추측성, 부정적인 내용을 기사화 했음.
- 그러나 이번 연규홍 총장 선임은 한신학원의 정관에 따라 선임됐고, 이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제102회 총회에서 정식으로 인준되어 현재 공식적으로 임기를 진행하고 있음.
- 따라서 위의 기사는 처음부터 부정적, 일방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학교 측(이사회)의 입장이 반영이 되지 않은 기사임.

처음엔 총회 측에 유감의 뜻만 전하고자 했다. 그러나 학교 측의 청구취지에서 이번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인식하는 것 같아 고민 끝에 지면을 빌어 반론을 펼치고자 한다.

한신대, 학생들의 반발에 안이한 건 아닌가

반론 중 핵심은 연 총장이 "제102회 총회에서 정식 인준됐다"는 주장인데, 이 주장은 어디까지나 한신대와 이사회의 일방적 주장이다. 총학생회가 반발하고 나섰고, 이 학교 학생들이 연 총장 선임에 반발해 집단 자퇴를 결의했다면 언론은 여기에도 주목해야 한다. 풀어 말하면 학생들이 총장 선임에 반발해 서른 명이 넘는 학생들이, 더구나 한신대의 중추인 신학 전공 학생이 집단 자퇴를 결의했다면 언론이 눈여겨 볼 수밖엔 없다는 말이다. 이미 본지 외에도 <한겨레>, <연합뉴스> 등 일반 언론까지 한신대 학내갈등을 보도했다.

그리고 연 총장의 자질 논란에 대해 학내 구성원들의 의혹 제기와 함께 연 총장이 다른 교계 매체 <에큐메니안>과의 인터뷰에서 낸 해명을 동등하게 반영했다. 또 하나, 언론은 사실과 이에 근거한 추론에 충실해야 한다. 더구나 ‘절차상 하자가 심각'해서 지금 학내갈등이 벌어지고 있고 이를 지면에 옮겼을 뿐인데 이를 추측성 운운 하는 건 언론 행위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낸다고 밖엔 볼 수 없다.

한신대의 청구가 더욱 어처구니 없는 건, 정정보도가 아니라 검색 제외만 요청했다는 데 있다. 만약 보도 내용이 사실에 어긋나거나, 한신대 측 주장대로 일방적이라면 구제절차를 밟으면 된다. 본지에 반론 입장을 전달하거나,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해 사실관계를 다투거나 하면 된다는 말이다. 더구나 기자는 늘 연 총장 거취 관련해서 논란이 일 때마다 연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매번 연 총장은 아무 답변이 없었고, 이에 이 점을 기사에 반영했다. 그런데 일방적이라니, 할 말을 잃는다.

결국 한신대는 학교 소식이 부정적 내용 일색으로 집중 보도되는 게 싫고, 또 수만이 접속하는 포털 사이트에 역시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기사가 ‘뜨는 게' 싫어서 이런 청구를 한 것 아닌가?

기자가 한신대 학내갈등에 관심 갖는 이유는 비단 학생들의 집단 자퇴가 뉴스 가치가 있어서만이 아니다. 한신대는 규모는 작지만 1970, 80년대 독재정권 하에서 옹골찬 기질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한국 민주주의 운동사의 귀중한 유산이다. 게다가 대학시절 한신대 출판부에서 낸 책들을 읽으며 민중신학에 눈뜨기도 했다. 말하자면 한신대에 빚진 자의 마음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한신대에서 총장 선임 문제로 학생들과 이사진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고, 독재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공권력이 들어가고, 잠잠하다 싶더니 신학 전공 학생들이 자퇴를 결의하고, 이제는 머리를 깎고 풍찬노숙을 하니 이게 왠 말인가? 이대로 학내갈등이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면, 학교의 위상실추로 끝나지 않고 한국 민주주의 운동사의 소중한 유산 하나가 그냥 없어져 버린다. 그런데 지금 한신대의 반응을 보니 이미 민주주의의 유산으로서 가치는 많이 없어진 것 같다. 참으로 참담하다.

마침 전 총회장단이 11일 성명을 내고 학내갈등을 추스려 달라고 호소했다. 여기서 밝혀두고 싶은 게, 흔히 전 총회장을 증경 총회장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조선시대에서 유래된, 그러나 그 시대에서조차 잘 쓰지 않았던 표현이기도 하고 권위주의적이기도 해서 쓰지 않는다. 그냥 쉽게 전 총회장단이라고 쓰고자 하고, 이렇게 쓰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교회나 신학교에서는 증경이라는 표현을 너무 쉽게 쓴다. 심지어 어느 신학교 동문회에서는 전직 동문회장을 증경 동문회장이라고 하기도 한다. 뿌리를 알 수 없는 권위주의 냄새가 풍기는 낱말 사용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지고 있는 건 무척 우스꽝스럽다.

각설하고, 전 총회장단은 후배들을 향해 "총회가 무겁게 선택한 결의를 존중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총회 지도부를 향해선 "우리는 이번 야기된 사안을 계기로, 한신대의 현안해결과 학교의 온전한 미래를 열기위한 대화마당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다.

뒤늦게나마 사태를 추스리고자 전 총회장단이 나선 점은 환영할만 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기장 총회와 한신대가 이번 학내갈등에 취한 태도를 보면 여느 보수 장로교단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장공 김재준 목사가 이 지경이 된 총회와 한신대를 어떻게 보고 계실까? 부끄러움은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몫이여야만 할까?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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