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현지시간으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다고 선언했다. 참으로 놀라운 선언이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미국은 이스라엘 일변도의 정책으로 일관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역대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967년 경계선을 기준으로 별도 국가를 유지하며 공존하는 ‘2국가 해법'을 고수해왔다.
민주당 출신인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중재에 적극 나선 바도 있었다. 특히 빌 클린턴 대통령의 중재로 오슬로 선언이 도출되기도 했다. 비록 오슬로 선언의 주역인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암살돼 오슬로 선언은 곧장 사문화되기는 했지만, 임기 막바지 에후드 바락 전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평화협상을 중재했다.
이후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대중동정책의 추는 급격히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 처럼 드러내놓고 이스라엘을 편들지는 않았다.
강경파인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로서는 트럼프의 이번 선언이 고마울 수 밖에 없다.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의 선언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우리 수도(예루살렘 - 글쓴이)의 역사에 영원히 새겼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면 팔레스타인은 격렬히 반발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7일(현지시간)자에서 "트럼프의 결정은 레바논에서 튀니지에 산재해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격렬한 저항을 불러 일으켰다"고 전했다.
중동은 가뜩이나 반미 정서가 강한 지역이다. 트럼프는 여기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트럼프가 중동 각국의 반발에도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한 배경엔 유대인과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미 <뉴욕타임스>는 6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열흘 전 카지노계의 대부이자 공화당 후원자인 쉘던 아델슨과 모튼 클라인을 만나 이스라엘 행정수도 텔 아비브에 있는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는 언질을 줬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트럼프가 아델슨 같이 복음주의적이고 친이스라엘계 인사를 실망시키느냐, 아니면 평화협상을 망치고서라도 아랍 각국을 자극하느냐란 문제에서 자신의 핵심 지지자를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국면전환 노렸나?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이른바 ‘러시아 게이트'에 시달렸다. 올해 5월엔 러시아 게이트를 수사하던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해임하면서 트럼프의 탄핵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더구나 러시아 게이트의 핵심 용의자인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달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트럼프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저간의 상황을 종합해 보면 정치적 위기에 처한 트럼프가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예루살렘 문제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아직 추론에 불과하지만 트럼프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국면전환이 필요한 형국임은 분명하다.
이 같은 추론과 무관하게 트럼프는 지역 분쟁 가능성을 한껏 높이며 세계를 불안에 빠뜨렸다. 지난 4월 한반도 해역에 항공모함을 보내더니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향해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 등의 말폭탄을 쏟아내며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그러더니 이제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선언하면서 화약고나 다름 없는 중동에 불을 댕기고 있다. 특히나 예루살렘으로 이전할 미 대사관은 향후 이슬람국가(IS), 헤즈볼라 등 테러 조직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루살렘에 대사관을 짓기 까지 수 년의 시간이 걸릴테지만, 세계 각국에 산재한 미국 관련 시설의 안전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선언한 트럼프에게서 박근혜의 그림자를 본다. 박근혜는 피해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일본과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적시한 12.28 한일위안부 합의를 관철시켰었다.
박근혜의 뒤끝(?)은 좋지 않았다. 아무래도 트럼프도 박근혜와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 같아 보인다. 그 발걸음을 돌이키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