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는 종종 예기치않게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법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정치검찰의 끝판왕'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김수남 전 검찰총장의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개입 사건 수사를 맡았던 것처럼 말이다.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 역시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예장통합 총회에 속한 명성교회는 세습 논란으로 교계는 물론 사회로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 같은 논란은 지난 10월23일 명성교회가 속한 서울동남노회(아래 동남노회)에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동남노회는 제73회 정기노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꾸렸다. 이어 동남노회는 명성교회가 낸 김하나 목사 위임청빙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 노회 규칙에 따르면 새 회기를 맞아 새 지도부를 꾸릴 때 목사 부노회장이 새 회기의 노회장직을 맡도록 규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명성교회 측은 당시 부노회장이었던 김수원 목사가 김하나 목사 위임청빙안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승계를 막았다. 김 목사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김하나 목사 청빙안을 반려했었다. 이러자 명성교회측이 반발했고, 김 목사와 노회원 130여 명이 회의장을 나가는 일이 벌어졌다. 회의장에 남은 노회원들은 투표로 지도부를 뽑았고, 이렇게 뽑힌 지도부는 김하나 목사 청빙안을 가결시켰다.
투표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언급한 이유는 이렇다. 노회 표결 직후인 10월 28일 김수원 목사를 비롯한 노회원들은 '서울동남노회 정상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동남노회 비대위)를 꾸렸다. 이어 11월10일 총회 재판국에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다.
만약 총회 재판국이 선거무효 판단을 내리면, 동남노회가 결의한 김하나 목사 위임청빙안 역시 자동적으로 무효가 된다. 결국 예장통합 재판국의 판단에 따라 명성교회 세습 공방의 흐름이 요동치게 되는 셈이다. 명성교회 세습 논란에 기독교계는 물론 사회의 관심도 높다는 점을 감안해 볼때 총회 재판국의 판단은 역사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엔 없다.
우선 총회 재판국은 19일 오전 서울 종로5가 총회회관에서 1차 재판을 열었다. 이에 앞서 예장통합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은 줄기차게 명성교회 세습에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예장통합 교단의 목회자 양성기관인 장로회신학대학교 동문 70개 기수 2,712명은 지난 16일자 <국민일보>와 <기독공보>에 '교회는 부자의 것이 아닙니다'는 제하의 전면광고까지 실었다. 또 1차 재판 하루 전인 18일엔 '명성교회 세습철회와 총회 공정재판 촉구 연합기도회'를 열어 명성교회의 세습 철회 및 재판국의 신속하고 공정한 판단을 촉구했다.
불신 자초한 교단 내 사법기구
명성교회가 속한 장로교단은 물론 개신교계 각 교단은 그 안에 검찰과 사법부의 기능을 가진 기구가 꾸려져 있다. 꼭 들어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굳이 표현한다면, 시찰회가 검찰이라면 재판국은 법원의 기능을 한다. 이 기구들은 교단에 속한 교회에서 분쟁이나 갈등이 불거졌을 때, 권위적인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기구들이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내 불신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예장합동 평양노회의 전병욱씨 재판 결과다.
예장합동 평양노회 재판국은 2016년 1월 성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키고도 홍대새교회를 개척해 목회활동을 한 전씨에 대해 공직정지 2년, 설교 2개월 정지 처분을 내렸다. 전씨가 삼일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시절 다수의 여성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일었지만, 평양노회 재판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고등법원이 "전씨가 복수의 피해자들에게 성추행 및 성희롱을 가한 행위가 인정되고, 그중 피해자들에 대한 전씨의 추행 행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 1항의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또는 기습추행으로서 형법 제298조의 강제추행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보인다"는 판단을 내렸다.
전씨는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을 유지했다. 결국 사회법정은 평양노회 재판국이 전씨에 대해 감싸기 재판을 했음을 우회적으로 꼬집은 셈이다. 사실 당시 평양노회장이었던 김진하 목사가 전씨가 개척한 홍대새교회를 찾아 드러내놓고 "한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홍대새교회를 공격하고 전병욱 목사님을 공격하지만, 우리 평양노회는 보호할 것이다"고 선언했었다. 이런 지경이니 평양노회 재판국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던 셈이었다.
일전에 알고 지내던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해 들은 이야기다. 이 변호사 말이 법조인들 사이에선 교회 분쟁이 소위 '블루 오션'이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면 교회 내부에서 불거진 크고 작은 갈등이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능력 있는 법조인에 대한 수요(?)가 항상 있다는 뜻이었다.
개신교단 마다 사법기구가 있음에도 분쟁이 교회 안에서 해결되지 않고 사회법정으로 넘어 가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예장합동 평양노회 재판국 처럼 다분히 정치적인 판단을 내려 불신을 자초하기 때문이다. 명성교회 세습 논란의 방향을 좌우할 재판국 심리를 앞두고 재판국의 '정의로운' 판단을 촉구하는 기도회가 열린 이유도 역시 불신 탓이다.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이 어떤 판단을 내리던 파장은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동남노회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수원 목사는 지난 7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명성교회 세습 논란으로) 온 교회가 염려하고 속상해 하는데, 총회 재판국이 정치적 입김에 따라 무책임한 판단을 내리면 정반대의 현상이 일 것이다. 책임을 엄중히 느끼기 바란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었다.
만에 하나 예장통합 총회 재판국이 책임감을 인식하기 보다 명성교회 눈치를 보고 정치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후폭풍은 걷잡을 수 없을 공산이 크다. 재판국이 어떤 판단을 내리든 역사적이다. 이 점을 잊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