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몰트만 박사의 방한 강연에 참석한 신학생들이 환호하고 있다 ⓒ베리타스 |
하나님은 억압받는 자의 편일까? 아니면 억압하는 자의 편일까?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신학’과 한국의 ‘민중신학’은 단연코 하나님은 억압받는 자들의 편에 서계신다고 두말 없이 답할 것이다. 하지만 튀빙엔대학의 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이런 선택적 질문에 ‘억압받는 자를 해방하는 하나님 이야기’를 꺼냈다.
12일 오후 7시 한신대 신학대학원, 연세대 신학대학원, 서울신학대학교 등의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몰트만 박사의 공개 강연이 열렸다.
‘그 이름은 정의: 악의 희생자와 가해자를 향한 하나님의 정의’란 제목으로 강연을 한 몰트만 박사는 “유럽과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가(제1세계 신학자로도 불리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신학’을 정말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우리도 억압하는 자의 해방 신학을 전개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해방이 억압받는 쪽이나 억압하는 쪽 모두의 인간됨을 위한 해방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인류가 억압과 학대와 착취라는 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1970, 80년대 한국교회가 민주화란 시대적 과제를 놓고, 폭력적 정권에 저항할 때 그 신앙적 행동의 근거가 됐던 ‘민중신학’에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등의 저서로 큰 영향을 미쳤던 몰트만 박사. 그는 이 책을 통해 약자들과 함께 하는 고난의 그리스도를 강조,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의 종 그리스도와 끈끈한 연대 의식을 갖도록 도왔다. 그런 그가 이날 강연에선 억압하는 자를 해방하시는 하나님에 초점을 둔 것이다.
사실 몰트만 박사가 억압하는 자를 해방하시는 하나님을 연구 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6주 동안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트리니다드를 여행하며 해방신학자들과 만났던 1977년. 한국교회에선 민주화 투쟁이 최고조에 달할 때였다.
몰트만 박사는 당시 해방신학자 회의에 참여하게 됐는데 그는 이 회의에서 ‘제1세계 신학자’로 취급 받는 것 때문에 신학자로서 큰 상처를 입게 된다. 몰트만 박사는 그러나 “하지만 그 모임은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고 저를 어떤 신학적인 인식으로 인도했다”고 말했다. 그런 신학적 인식이 ‘억압하는 자를 해방하신 하나님’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날 강연을 통해 창조적인 정의, 치유하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정의를 천착하고자 한다고 말한 몰트만 박사는 “하나님의 정의는 구원하는 정의이며 악의 희생자들을 치유하고 일으켜 세우는 정의”라며 “그 정의는 언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함께 고려하지 피해자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정의의 목표는 영혼 구원 혹은 개인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정의가 거하는 새로운 땅”이라고 말했다.
▲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 12일 공개강연 후 참석한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리타스 |
몰트만 박사는 특히 가해자가 저지르는 죄의 동기에 대해 “가해자들이 희생자를 약탈하거나 억압하거나 심지어 살해했을 때, 그들은 악의 충실한 하수인이었다”며 “누가 그들에게 시켜서 그런 일을 했거나 그걸로 이익을 보기 때문에 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하지만 그들도 악의 희생자였다”며 “물론 그 악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는 희생자들과는 다르지만 가해자들도 악의 종이 되었다. 그들은 죄책을 떠안게 되었고, 점점 더 깊은 악순환에 연루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해자 역시 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를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정의를 시도한 몰트만 박사는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가해자를 죄의 권세와 죄책의 짐으로부터 해방하신다”며 “하지만 그분은 가해자를 반드시 희생자의 면전에서 해방하신다”고 말했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희생자 편에 계시기 때문에 희생자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신적인 권위를 얻게 되는 것”이라며 “하지만 죄의 희생자와 가해자가 죄의 권세로부터 해방되면 그들은 함께 이 죽음의 세력을 만들어 낸 죽음의 혼돈을 없애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심원 안병무 박사 기념사업회(회장 황성규 한신대 명예교수), 죽재 서남동 교수 기념사업회 (이사장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그리고 한국민중신학회 (회장 노정선 교수)가 공동으로 주최로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열린 몰트만 박사의 공개 강연엔 많은 신학생들이 참여, 몰트만 박사의 방한 강연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몰트만 박사는 강연 후 민중신학회 등이 준비한 계량 한복, 꽃다발 등을 건네 받았다. 그밖에도 도서출판 동연에서 강연 직전 출간한 몰트만 박사의 저서 '세계 속에 있는 하나님' 증정식 그리고 저자 사인회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