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이름 없는 산타

장윤재 목사(이화대학교회)

- 이사야 9:2-6, 디모데후서 1:9-11, 요한복음 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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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Jesu Juva. 거짓말을 잘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도 한 가지 소원이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예수님한테 선물을 받고 싶은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예수님에게 선물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 '음, 거짓말 안하고 착한 어린이가 되면 된단다.' 아이는 곧바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예수님께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예수님, 저는 거짓말도 안하고 착한 일만 하는...' 여기까지 쓴 아이는 갑자기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착한 일을 한 기억이 도무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쓰던 편지를 지우고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착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앞으로는...' 여기까지 쓰던 아이는 또다시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앞으로 착한 일만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는 갑자기 동네의 가까운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성당 뜰에 있는 아주 작은 성모상을 몰래 훔쳐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예수, 네 엄마는 내가 인질로 잡고 있다. 엄마를 살리고 싶으면 선물을 보내라.' 어디선가 읽은 글이지만, 오늘날 성탄절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말해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과 무관한 연말의 축제가 되어가는 느낌입니다. 언젠가 영국의 한 시의회는 이런 세태를 반영해서 크리스마스라는 이름도 '윈터벌'로 바꾸자고 제안한 적도 있었습니다. 겨울을 뜻하는 '윈터'(winter)와 축제를 뜻하는 '페스티벌'(festival)을 합쳐 '윈터벌'(winterval)이라는 것이지요. '돌 잔칫날 아이가 굶어 병이 난다'고 했던가요. 이제 크리스마스에서 가장 힘들고 소외된 이는 아기 예수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크리스마스의 상업화는 엊그제의 일이 아닙니다.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산타클로스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잘 아시지만, 본래는 세인트 니콜라스가 있었습니다. 그는 터키의 주교였고, 중세시대에 교인들로부터 가장 큰 인기를 누렸던 성인입니다. 성 니콜라스 축일인 12월 6일이면, 착한 아이들은 이 자상한 성인에게 선물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네덜란드에서는 그를 '신터 클라우스'라고 불렀는데, 네덜란드인들이 미국에 이주해오면서 이 신터 클라우스가 오늘날의 산타클로스로 변모하기 시작합니다. 산타클로스가 처음부터 굴뚝을 통해 집에 들어왔던 것은 아닙니다. 산타클로스가 크리스마스이브에 굴뚝을 통해 집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822년 클레멘트 무어라는 한 목사님의 동화책에서부터입니다. 산타클로스가 처음부터 빨간 옷에 빨간 모자를 쓴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1931년 한 회사의 광고에서부터입니다. 추운 겨울에 콜라 판매량이 격감하자 코카콜라 회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이 해 산타클로스에게 따뜻한 색의 붉은 옷을 입히고 콜라를 마시게 했던 것입니다. 빨간 코의 루돌프 사슴도 1939년 이전에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동물입니다. 매우 반짝이는 코를 가져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했다는, 이 친근한 루돌프 사슴의 이야기는 1939년에 시카고의 어떤 백화점에 근무하던 한 카피라이터가 물건을 많이 팔기 위해 고안해낸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에서 만들어진 현대판 산타클로스는 전 세계로 전파되었는데 비기독교 국가로 들어가서는 또 한 번의 화려한 변신을 하게 됩니다. 어느 해 겨울 일본의 수도 동경 한복판의 대형 백화점에 아주 커다란 산타클로스가 걸렸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를 놀라게 했던 것은 그 산타가 썰매를 탄 산타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린 산타'였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렸던 것은 예수님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일본사람들의 이 대단한 '신학적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게 되지만, 크리스마스 특수를 잡으려던 그 동경시내 백화점으로서는 산타클로스가가 십자가에 달리든 아니면 썰매를 타든 아무 문제가 안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이 지경이 되다보니, 보다 못한 제임스 가너라는 사람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홀리데이 스토리』(Politically Correct Holiday Story)라는 책을 펴낸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산타클로스와 루돌프 사슴의 이야기를 뒤집어 패러디한 동화책입니다. 이 책에서 산타클로스는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의 전도사가 아니라 굴뚝을 통해 남의 집에 들어가는 '불법 주거 침입자'입니다. 또한 추운 겨울날 사슴들을 채찍질하여 썰매를 끄는 '동물 노동 착취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소비 지향적이고 파괴적인 장난감을 보급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더 있습니다. 산타클로스와 잘 지내는 줄 알았던 우리의 귀염둥이 루돌프 사슴은 글쎄 산타클로스와 근로조건을 놓고 다투는 노동운동가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동화작가가 이렇게 뒤집어진 산타 이야기에서 정말로 뒤집어보려 했던 것은 동화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과 점점 거리가 멀어져가는 크리스마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2017번째 예수님 탄생의 날입니다. 성서는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 분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고 말합니다(요한 1:4). 그래서 그가 탄생하신 밤은 잘못된 찬송가 번역처럼 '어둠에 묻힌 밤'이 아니라 영어 찬송가의 원문대로 "all is bright" 즉 '모든 것이 환하게 밝았던' 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찬송을 부를 때 '어둠에 묻힌 밤'이 아니라 '어둠이 묻힌 밤'으로 부르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오늘, 우리의 세계는 너무 어둡고 삭막하기만 합니다. 지금도 이 지구상에서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어린이가 하루에 19,000명입니다. 5초당 한 명입니다. 일 년이면 6백만 명입니다. 우리는 6백만의 유태인을 학살했다는 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와 같은 큰 사건을 매년 치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인과 유럽인들은 일 년에 1백70억 달러를 애완동물을 먹이는데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돈의 1/4만 덜어내면 인류의 식량과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유럽인들은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연간 1백10억 달러를 씁니다. 이 돈의 1/5만 덜어내면 전 인류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인들은 연간 80억 달러를 화장품을 사는데 지출합니다. 이 돈의 1/4만 덜어서 나누면 이 지구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기초교육을 실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지구상 모든 국가가 총과 군함과 미사일을 만드는 군비의 5%만 덜어내면(50%가 아니라) 인류의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생명으로, 빛으로 오신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 계절에 우리의 마음이 이처럼 답답하고 우울한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내어주실 정도로 이 세상을 진실로 사랑하셨건만(요 3:16) 우리는 이 세상의 위기 앞에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주저앉아만 있다는 무기력감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두 개의 성탄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고 장영희 선생님의 글과 미국의 한 '이름 없는 산타' 이야기로부터 2017번째 성탄절을 맞이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위대한 순간'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두 개의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독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많은 글들을 남기고 장영희 교수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8년이나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학생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야학에서 가르쳤던 학생인데, 자동차 정비공으로 취직이 돼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성당에 다니던 그 학생의 원래 꿈은 가톨릭 신부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수능고사 점수가 기대에 못 미쳤고, 담당 신부님도 조심스럽게 사제의 길을 포기할 것을 권고했다고 합니다. 떠나는 제자에게 장영희 선생은 책 한권을 선물로 주며 거기에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거라'라고 써주었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본 그 학생이 긴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합니다. '에이, 선생님. 제가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줘요. 저는 신부님이 돼 위대한 일을 많이 하고,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려고 했는데...' 말을 끝맺지는 못했지만 그의 말에는 자동차 정비공 따위가 어떻게 이 세상에 기쁨과 행복을 주겠느냐는 의미가 생략돼 있었습니다. 그 때 장영희 선생은 유학시절 자신이 살던 기숙사의 경비 아저씨였던 토니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나이가 예순쯤 된 토니는 전직 콜택시 기사였습니다. 그가 택시운전기사 시절 크리스마스이브 새벽에 겪은 일화입니다. 그날 밤 당번이었던 그는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어벨을 누르니 한참 후에 문이 열리고 마치 1940년대 영화에서 막 걸어 나온듯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나이 많은 할머니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 등 뒤로 보이는 방안의 가구들은 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택시에 오른 할머니는 주소를 건네주면서 시내를 가로질러 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할머니, 그러면 돌아서 가는 건데요' '괜찮아요, 난 시간이 아주 많아,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고 있는 중이거든, 식구는 없고, 의사선생님 말씀이 이젠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대요.' 어둠 속에서 할머니 눈에 이슬이 반짝였습니다. 토니는 요금 미터기를 꺼버렸습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함께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거리를 드라이브 했습니다. 그녀가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걸로 일했던 빌딩, 처음으로 댄스파티를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어슴푸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라고 말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토니는 몸을 굽혀 할머니를 포옹하며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자네는 이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 아주 행복했다우.'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토니는 훗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난 그날 밤 한참동안을 할머니를 생각하며 돌아다녔지. 그 때 내가 할머니 집 앞에서, 할머니가 빨리 안 나와 짜증나서 경적만 몇 번 울리고 휙 떠나버렸다면? 그래서 크리스마스 날 당번이 걸려 심술 난 다른 기사가 가서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돌이켜보건대 난 내 일생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 본적이 없어. 내가 대통령이었다 해도 아마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하지 못했을지 몰라.'

장영희 선생은 이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보통 우리의 삶이 아주 위대한 순간들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순간, 내가 나의 모든 재능을 발휘해 위대한 일을 성취할 날을 기다립니다. 내게는 왜 그런 기회가 오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합니다. 그렇지만 그 위대한 순간은 우리가 모르는 새 왔다 가는지도 모릅니다. 남들이,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생각하는 순간들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심히 건넨 한 마디 말, 별 생각 없이 내민 손, 스치듯 지은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은 대통령에게도, 신부님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자동차 정비공에게도 모두 골고루 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이 계절에 우리들의 삶도 이런 위대한 순간들로 가득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는 성탄절을 전후해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현찰 100달러를 건네고 도망가는 '이름 없는 산타'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유학생들은 이 분을 길거리에서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도 합니다. 이 '이름 없는 산타'는 30년이 넘도록 자신의 고향 캔자스시티에서 이런 선행을 실행에 옮겼는데, 홀연히 맨해튼에 나타나 노숙자 보호소에 3,000달러 돈뭉치를 건네고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 '이름 없는 산타'는 한 신문기자에게 꼬리가 잡혀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 그 계기를 조심스레 밝혔습니다.

가난한 조부모 밑에서 자란 그는 배고픔의 비참함을 뼈저리게 경험했다고 합니다. 20세 초반, 직장을 잃고 한 끼의 식사도 해결할 돈이 없어 10일 동안 차에게 지내야 했던 때도 있었습니다. 며칠을 굶다 견디지 못한 그는 한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와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일단 먼저 다 먹고 난 후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정신없이 배를 채운 후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 몇몇 손님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들이 나가면 웨이터에게 말을 걸려고 눈치를 보고 있는데,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옆에서 뭔가를 줍는 듯하더니 20달러짜리를 내보이며 '이걸 떨어뜨리셨군요'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는 하나님이 주신 행운이라고만 생각하고 황급히 식사 값을 지불하고 나왔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의 거지같이 초라한 몰골을 보고 한눈에 처지를 파악한 식당주인이 '부끄러움을 주지 않는 방법으로 도움을 준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어찌어찌해서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번 그 사람은 다시 그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미 노인이 된 식당주인의 손을 잡고 '당신이 준 20달러는 1만 달러 이상의 선물이었습니다'라며 1만 달러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자신을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밝힌 이 '이름 없는 산타'는 매년 이웃에게 베푸는 금액은 몇 배, 몇 십 배의 축복으로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다며, 다른 사람들도 주위 사람들에게 단 1달러라도 쥐어줄 수 있는 기쁨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삶이 바로 이러한 위대한 순간들로 가득차길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생명의 등불을 비추는 아름다운 기회들은 먼 훗날 단 한 번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어떤 위대한 인물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남들이 그리고 바로 우리 스스로가 하찮게 여기는 평범한 일상들 속에, 그 위대한 기회들은 이미 다가와 있습니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의 들판에서 평소 늘 하던 대로 양 떼를 돌보던 목자들은 홀연히 나타난 주의 천사를 통해 바로 자신들의 동네에 구세주가 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으며, 강보에 싸인 채 구유에 뉘여 있는 아기 예수님을 보는 첫 목격자가 되었고, 그 아기의 부모에게 천사가 일러준 말을 전하는 영광스런 첫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오늘 우리 삶 한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가 무심코 건네는 말 한마디 속에서, 내가 별 생각 없이 내미는 손 안에서, 그리고 내가 스치듯 짓는 작은 미소 안에서 그 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17번째 성탄절에 오늘도 예수님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한 가운데 오십니다. 눈물과 아픔과 어둠이 가득한 우리 삶의 한 복판에서 다시 태어나십니다. 올해 성탄절에는 그 분을 호텔이나 백화점에서가 아니라,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인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베들레헴 들판 한 가운데 있는 낮고 초라한 '마굿간'에서 다시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그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냐고 물으신다면, 오늘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동방박사들을 그곳으로 인도한 그 별이 오늘 우리들의 발걸음도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 복된 곳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Soli Deo Gloria! (2017.12.24.)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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