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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시비와 납북

<만우 송창근 바로보기 18>

‘진정서 사건’ 이후에 있었던 일이 ‘송창근의 친일 시비’였다.

그가 일제 말기에 강연을 다녔던 일 때문에 ‘출옥 성도 모임’에서 그의 이름을 ‘친일파’ 명단에 넣었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다. 출옥 성도 모임이라 함은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되었다가 해방을 맞아서 출옥한 교인들을 말했다. 그들은 대단한 기세로 일제시대 기독교인들의 행태를 논죄하고 정죄하였고, ‘친일파 명단’이란 것을 작성하여 발표했다. 그런데, 송창근의 이름도 그 ‘친일파 명단’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일제 말엽에 송창근은 조선총독부 당국자의 강연 요구를 소화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강연을 하기는 하면서도 그 내용은 총독부 당국자들의 청중들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이야기 대신에 웃기는 만담 같은 이야기로 채웠었다. 그런데 그처럼 섬세하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행위에 의해서 해방된 내 나라에서 ‘친일’ 시비에 걸린 것이다.

송창근 목사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마음이 크게 상했다. 조그마한 거리낌이라도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는 맑은 성품 때문에, 그는 계속 마음이 상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속상함은 고혈압을 불러왔고, 그는 계속 머리가 아파서 ‘노싱’이란 두통약을 줄곧 복용하게 되었다.

강원용 목사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제시대에 정말로 친일 했던 목사들은 그 명단에 들어 있어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하더라는 거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친일을 하지도 않은 송 목사가 그 명단에 들었다 해서 하도 속상해 하기에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렇게 마음 상해 하십니까”라고 말리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계속 마음 상해 하더라는 거였다.

한번 의기가 꺾이자 두통이 날로 더욱 심해졌다. 더군다나 1948년에는 “’반민특위’라는 것이 조직되어서 친일 인사들을 체포하여 재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더니 1948년 10월 23일에 ‘반민족행위 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그렇게 하여 조직된 반민 특위는 1949년 1월 5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박흥식, 이광수, 최남선 등의 인사들이 속속 체포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송창근은 ‘출옥 성도 모임’에 의해서 “친일을 했다.”고 지적당한 뒤로는 자신감을 잃었다. 그래서 반민 특위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었지만 스스로 위촉되어 스스로 고통을 겪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침 밥 존스 대학에서 초청장을 보냈다. “1년 동안 머물면서 공부하라.”는 초청장이었다. 송창근은 미국에 가서 조선신학교를 위한 기금도 모을 겸 떠나기로 결심했다. 여권 수속이 끝나 그가 미국으로 떠난 것은 1949년 2월이었다.

1949년 2월 도미할 때 여의도 비행장에서. 왼쪽부터 김재준 목사, 최순복 집사, 송창근 목사, 유재기 목사, 장남 송윤규 의사. /사진제공=경건과신학연구소

밥 존스 대학은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의 그린빌에 있는 대학이었다. 대학 측은 신학교 교장의 대우로서 귀빈으로 모셨다. 거기서 때로 강의도 듣고 때로는 다른 곳에 산재해 있는 제자들도 찾아보면서 지냈다. 이때 대학 부속병원에서 진찰해 보니 심한 고혈압 증세였다.

당시 그의 미국생활 중에서 특기할 것은 피츠버그에 있는 웨스턴 신학교의 졸업식 행사에 참석한 일었다. 마침 그 해에는 웨스턴 신학교의 ‘1930년 클라스’가 전체 동창회의 초청 대사이었기에 그도 초청 받은 것이다.

웨스턴 신학교 졸업식과 졸업생 재상봉 행사에서 그는 특별 대우를 받았다. 신학교 교장이라 해서 헤드 테이블에 않게 하고 연설도 하게 했다. 그는 연설에서 한국과 조선신학교의 현황을 설명하고 도서관에 비치할 서적이 필요함도 말했다. 연설이 끝나자 모두들 기립박수를 했다고 한다. 미국 각지에서 큰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고 있는 동창들은 조선신학교를 위하여 특별헌금과 서적 모으기를 할 것을 결의했고, 송창근이 자신들의 교회를 순방해 주도록 서둘러 일정까지 짰다.

그처럼 일이 일사천리로 은혜롭게 진척되는 것에 크게 고무된 송창근은 기쁜 마음으로 일단 밥 죤스 대학으로 돌아가서 여행준비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순회여행을 떠날 준비를 다 마치고 차표까지 사놓았는데, 뜻밖에도 뇌일혈로 수족마비를 일으켜서 쓰러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입도 돌아가서 말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1949년 5월 31일의 일이었다.

그래서 모든 계획과 일정이 취소되어다. 그는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겨우 조금씩 움직일 수가 있고 어눌하게나마 말도 하게 되지 하와이로 옮겨가서 휴양했다. 하와이에 있는 김태묵 목사가 자택에 모시고 지내면서 지성껏 간호했다고 한다.

그는 어느 정도 움직이게 되자 귀국했다. 1년 1개월 만의 귀향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조선신학교를 위한 기증품들을 받아 모아서, 송 박사가 하와이를 떠날 때는 그간 신학교를 위하여 모아진 짐이 거의 조그만 화물선 한 배를 채웠다고 한다. 그는 그 짐을 실은 화물선에 올라서 하와이를 떠났다고 한다.

그가 서울에 도착한 때는 1950년 3월 14일이었다. 조선신학교에서는 귀국 환영회가 열렸다. 그는 지팡이를 짚고 학생들과 교수들 앞에 나와서 연설을 했다. 그 유명한 ‘소’와 ‘무덤’ 이야기가 나온 연설이었다.

여러분, 나는 빈 손으로 갔다가 빈 손으로 돌아왔소이다. 그러나 일 년 동안 미국에서 병을 얻어 누어있으면서도 열심히 기도하고 염려한 것이 우리 신학교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소가 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평생토록 열심히 일하고 죽어서도 고기요 가죽이요 뼈요 할 것 없이 하나도 버릴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소야말로 우리의 숭엄한 선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도 소와 같은 심정으로 이 신학교를 위하여 마지막 하나까지 바치는 정성을 가지렵니다. 내 생명을 건지시어 다시 고국에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도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러분께 부탁 드리고저 합니다. 이담에 내가 죽거든 신학교 정문 밑에 묻어 주십시오. 그래서 여러 신학생들이 내 몸을 밟고 드나들게 되면 나의 기쁨이 되겠습니다. ‘남산’ 위의 개가 아무리 달을 보고 짖은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고 따르는 길을 꾸준히 걸을 따름입니다.

학생들은 물을 끼얹은 듯한 숙연한 자세로 그의 귀국 후의 첫 소리를 들었다.

이때 그가 말한 “내가 죽거든 신학교 정문 밑에 묻어 달라.”는 말은 그의 비극적 죽음과 더불어 유명한 말이 되었다. 일찍이 스코틀란드의 종교개혁가 존 녹스도 같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이장식 교수는 그 말 뜻을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신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존재와 그 의의와 열정과 투지를 기억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그로부터 석 달 뒤에 6.25가 발발했고, 송창근 교장은 납북되어 생사를 모르게 되었다. 서울이 수복된 뒤에 돌아온 교수들과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는 송창근 교장과 그의 유언과도 같았던 그 말을 생각하고 몹시 슬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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