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2016년 가을과 겨울, 그리고 2017년 봄, 온 나라에 피어 오른 촛불의 밝고 희망 찬 빛을 온 세상에 비추면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광명한 정의와 사랑이 넘치고 평화와 생명이 살아나는 새 세상,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희망 찬 새해입니다.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지난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로 탄생하신 메시야를 환영하면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누가 2:13)를 노래한 천군 천사들의 나팔소리와 환호를 "아멘"으로 화답하였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고 오신, 참 하나님, 참 인간 예수의 뒤를 따라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고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기도로 우리는 약속했습니다. 새해, 새 나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약속이었습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교회는 새해에 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지난 해 우리는 루터의 종교개혁 운동을 기점으로 한 500주년을 기억하며 기념했습니다. 루터를 비롯한 16세기 그리고 그 이전부터 로마교회의 부패와 비리와 종교적, 윤리적 타락을 고발하면서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던 역사적인 사역을 되새겼습니다. 그 사역은 순교자적 사역이었습니다. 개혁을 부르짖었던 믿음의 조상들은 파면을 당하고 옥에 갇히고 교수형을 당하면서도 그들의 신념과 양심 그리고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것으로, 그 많은 학술대회와 강연회와 세미나를 열었고 학자들이 강연하고 목회자들이 설교한 것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마냥 지나갈 수 없습니다. 이제는 개혁을 우리 교회에서 실천해야 할 새해가 왔습니다. 개혁은 500년 전에 한번 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누누이 말했고 외쳤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기 이전부터 한국사회는 한국교회를 비판과 개혁의 대상으로 지적해 왔습니다. 한국 교회는 그 옛날 변혁과 개혁의 대상이었던 로마 교회에 버금가는 비리와 종교적, 윤리적 타락과 부패로 변질됐다는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우리 한국 개신교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교회개혁을 기념할 뿐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온 한국교회가 수행할 지상(至上)명령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기독교 신문이나 일간 신문이나 거의 모든 언론매체를 통해서 대형교회의 부자 세습에 대한 비판의 소리를 들어 왔습니다. 본지 <베리타스>에서도 여러 번 명성교회의 불법적인 부자 세습을 보도했고, 비판의 소리들을 전달하였습니다. 명성교회 밖에서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비판과 반대의 성명서가 속출했습니다. 새해에는 아들 목사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신학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위해서 공부하면서 배운 대로 결단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어머니와 가족들이 찾아 왔을 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이 다 내 형제요 자매이며 어머니이다'(마태12:46-50; 마가 3:31-35; 누가 8:19-21)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육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믿음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교회를 떠나겠습니다"라고 결단하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한국 개신교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국 개신교 신학대학의 지도력의 문제가 불거진 해가 2017년이었다고 한국교회사가들은 기록할 것 같습니다. 한신을 비롯한 감신 등 한국 개신교의 이른바 명문 신학대학들의 이사회와 총장들이 신학논쟁이 아니라, 옛날처럼 반독재 저항운동 때문도 아니고, 천박한 권력투쟁으로 몇 년씩이나 허송하면서 신학연구와 목회자 양성의 본분을 포기한 채로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선생이고 어른이라는 교회 지도자들이 학생들의 정의로운 외침을 묵살하고 오히려 그들을 사법당국에 고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예수님의 경고 "어린 것들을 실족케 하는 선생들은 목에 돌덩어리를 메고 물속에 뛰어 들어 가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개신교 강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가나안 교인"이라고 자신을 비웃으면서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는 진실된 사람들이 많아지겠습니까? 큰 교회에서는 더 커져야 한다고 헌금을 강요하고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커져야 한다고 현금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배고프고 병들고 힘들고 소외당하고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찾아 가서 함께 아파하고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분노하면서, 무시당하고 천대 받고 갑질 당하는 사람들을 돌보고 치유하고 고치는 예수님의 사역을 멀리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오늘, 아니 다음 주일, 예수님이 그 모습으로 우리 대형교회 앞마당에 나타나면, 우리 목사님들이 예수님을 알아 모시고 엎드려 절하며 영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교회 안내 집사님들이 당장 돈 몇 푼 집어 드리고 교회 뜰에서 내쫓거나, 말을 안 들으면 경찰을 불러 잡아가라고 할지 모를 지경이 되었습니다.
설교자들과 부흥강사들은 죽어 천당 간다는 메시지를 소리 높여 설교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해달라는 주기도문을 암송하면서도, 예수님이 전하신 하나님 나라의 참뜻은 멀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고 주일마다 되뇌면서도 이 땅에 이루지게 해달라는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어떤 나라인지, 그 문화와 경제와 사회와 정치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정치문제"라고, 우리 영혼의 구원과는 상관없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목회를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교회 안에 가두고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이게 나라냐?"고 울부짖는 광장의 소리를 묵살하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가 "반공"의 이름으로 불의한 정권을 옹호하며 십자군 전쟁을 선동해 왔습니다.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민족의 고난의 여정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 믿음이 식을 때 우리는 전쟁 마귀들이 만든 무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피와 살을 나눈 형제자매가 서로 총을 겨누고 쏘며, 칼과 창을 들어 서로의 몸을 찔러 피 흘리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핵무기를 포함한 살상 무기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70 몇 년 동안이나 갈라졌던 우리 형제자매들은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허리를 잘라 놓고 숨통을 막고 있는 휴전선을 열어 놓고 서로 왕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피가 통하듯이 철길이 통하고 하늘 길과 바닷길이 통하게 해야 합니다. "휴전협정"에 매달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민족 전멸의 핵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2018년 7월 27일은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날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서 이 평화운동과 남북 분단극복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베리타스> 편집진 모두는 교회나 사회를 막론하고 언론이 제4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인식과 신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말씀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기독교의 세 가지 하나님의 말씀을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그 첫째는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둘째는 말씀으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며, 셋째는 주일마다 교회 강단에서 전해지는 설교자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네 번째로 언론, 신문과 각종 매체를 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 우리가 전하는 소식, 우리가 전하는 수필이나 칼럼, 그리고 몇 몇 목사님들의 강단을 소개하고, 세계 교회 동향을 전하는 이 모든 활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대변하고 해석하는 일이라고 믿고 감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책임과 사명을 엄숙하게 받아들이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집필과 편집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며 그 나라를 위하여 행동합니다.
아멘, 주 예수님, 우리 가운데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