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동성애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하여 동성애를 인권과 결부시킨다. 이들은 자신들이 성소수자로서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박해와 차별을 받아왔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를 점령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유엔의 보편인권 선언과 결부시킴으로써 자신들의 주장을 인권 차원에서 정당화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성찰해보면 동성애는 성적 중독이며 인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들은 동성애가 성중독(性中毒)이라고 진실을 말하는 자들에 대하여 무차별적인 비판을 가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하여 법적인 처벌을 받도록 하는 역차별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 사랑, 관용, 정의, 평등, 차별 등 인권과 연계된 개념들이 젠더주의적으로 왜곡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 자유 개념의 사유화(私有化): 자유방임적 무책임적 자유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전통적인 자유 개념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왜곡한다. 전통적 의미에서 자유란 외부적 강제 없이 양심에 따라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예전 군부 독재 시절에 정치적으로 유신헌법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한 것은 다수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시를 대변하는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보가 중국 사회에서 정치적 자유를 요구했던 것은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받아 8년 감옥에 있었던 그에게 노벨 평화상이 수여되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정치적 자유의 요구는 사회적 다수가 가져야할 공동체의 자유와 진리에 대한 양심의 소리와 책임감을 나타낸다. 그리고 사회적 다수들이 인정하는 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공동선(共同善)에 기여하는 자유다.
이에 반하여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이러한 공동체에 기여하는 선과 책임에서 벗어난 주관적인 기분(subjective whim)을 주장한다. 이들은 자유에 따르는 책임은 말하지 않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즉 자유방임(laissez-faire)만 주장한다. 개인적인 기분으로 환원된 자유 개념은 자신의 결정과 행동에 대한 책임의 결과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러한 자유는 진리에 정향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주관적인 욕망에 의하여 지배된다. 이들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인간이 남자와 여자로 태어남'이라는 선험적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다.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모든 인간들에게 주어진 이러한 보편적인 성적 질서와 관련하여 명백한 진리(생물학적 남자와 여자로 태어남)를 거부하는 것이다.
독일의 반동성애 여성 운동가 가브리엘 쿠비(Gabriele Kuby)가 지적하는 것처럼, 가족이란 마음속 갈급함을 채워주는 공간이며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에 따른 신실한 사랑은 생명을 가져 온다. 동성애자들은 성욕을 충족하겠다며 이를 모두 무시하고 있다. 쿠비가 분석하는 것처럼, "그 결과 한 생명을 잉태하는 책임감, 결혼 서약은 무시한 채 성행위 파트너가 남자든 여자든 동물이든 상관 않고 성욕을 해소하려 한다," "성적 자유를 앞세운 젠더 이데올로기가 법률적 강압을 통해 기독교 가치관을 공격하고 있는데 그 최종 목표는 가정의 해체다."(백상현, "쿠비, '동성애 쓰나미' 맞서 전통가정 소중함 외쳤다, <국민일보>, 2017.6.5.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759553&code=23111111&cp=nv) . 쿠비가 우려하는 것처럼 이 같은 자유는 오히려 우리를 성적 쾌락의 노예로 만들며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성적 문란함은 인간 정체성의 파괴를 초래하고 사회의 성적 타락은 새로운 동성애 전체주의를 잉태한다.
이러한 자유와 진리와 선과 책임으로부터 벗어난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의 주장은 타자에 대한 희생을 요구함으로써 자신과 공동체가 누리는 자유의 축소를 초래한다. 한 개인의 동성애 행동은 그 가정이나 집단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유발함으로써 그가 속한 공동체의 정서와 질서가 훼손된다. 17세기 영국 정치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의 말처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야기된다. 이러한 사회는 정상적인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다.
2. 사랑 개념의 성적 탐닉화: 이성적 관계가 동성적 관계로 변형
하나님은 인간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성으로 만드셨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은 놀랍게도 뇌와 신체 구조 등에서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그래서 둘은 성(性)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고 훗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었을 때 좋은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에서 이성애는 결혼과 가정을 이루고 후손을 생산하고 인류의 존속을 가능하게 된다. 이성애는 남편과 아내로 하여금 서로 인격적으로 보완하도록 하여 참 인간 존재에 이르도록 성숙하게 한다. 이것이 남자와 여자에게 천부적으로 심겨진 사랑의 본연적 질서이다.
동성애자들의 사랑 개념은 부부 사이에 이루어지는 진정한 에로스적 사랑이라기보다는 성적 탐닉(耽溺)으로 기울어진다. 그러므로 '동성애자의 사랑을 인정해야 한다'는 진보신학자들의 주장은 바르다고 볼 수 없다. 전문가들의 보고에 의하면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사랑은 수백 명의 성관계 파트너와 함께하는 문란한 성적 행동에 불과하며," "극단적 성욕을 추구하다보니 정신적·육체적 질병을 앓고 평균수명이 일반인보다 20년가량 짧고 자살률도 높다." 2017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쿠비가 피력한 것처럼 "동성애자들이 말하는 '사랑'은 신실함, 헌신, 생명이라는 가정과 사랑의 숭고한 가치를 절대 충족시키지 못 한다." 동성애자들은 "성욕 해소에 집착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내가 성을 결정한다'며 자신이 창조주 역할까지 하려고 한다." 하나님을 떠나 욕망의 노예로 살려고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인간성을 무너뜨리는 행위일 뿐"이다.
결혼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정해주신 것으로 신성한 것이다. 건강한 가정은 자녀가 한 남성, 한 여성으로 성장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서 자녀들을 건강하게 돌보는 데 있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자녀는 결혼 후 손주라는 생명을 부모님께 보여드림으로써 행복감을 느낀다. 쿠비가 피력하는 바같이 "가족이란 마음 속 갈급함을 채워주는 공간"이며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신실한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생명을 가져온다. 이 같은 사랑은 절대 흔들릴 수 없는 가치"다. 전통적 가정과 결혼을 지키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노력이 필요하다.
3. 관용 개념의 사유화: 관용이란 선과 악의 구분을 폐지. 모든 것을 선으로 선언
관용이란 어떤 사실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지만 상대방의 다른 견해와 태도에 대하여 참고 감수하는 것을 말한다. 관용이란 모든 것을 선이라 부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또한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볼테르 등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이 용어를 사용했을 때는 주로 절대 군주 통치자들에 대하여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변호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이 관용을 종교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폐지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이들에게 진리가 존재한다는 순수한 선언 자체는 불관용(intolerance)으로 간주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관용의 진리를 가르쳤으나 비진리를 인정하지 않았다. 예수는 십자가 사랑으로 모범을 보여주었고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이 주장하는 관용이란 이러한 자기를 희생하는 그리스도의 관용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관용이란 비진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관용이란 자기와 다른 생각과 신앙에 대하여 이를 정죄하지 않고 다름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과 비진리를 용인하는 것이 아니며, 관용이라 하여 죄된 행위(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말, 폭력, 마약 등 )를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양심이 강요되지 않으며 거짓이 묵인되지 않아야 한다. 예수는 선과 악을 구분하고 거짓을 미워하고 진리에 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a-32). 그런데 이들은 진리를 박멸하고자 한다.
4. 정의 개념의 왜곡: 정의란 소수자 요구 관철하는 것
정의란 권리와 의무의 정당한 주고받음을 통해서 개인이나 기관의 사회적 기본구조에 대한 관심의 균형을 말한다. 정의란 공평한 일은 공평한 것으로, 불공평한 일은 불공평한 것으로 다루어, 모든 일을 공평하게 다루는 것이다. 불공평한 일이 공평한 것으로 취급된다면 그 결과는 불의(injustice)다. 정의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모든 것을 각기에 따라서 대하라,' '각자에게 해당의 몫을 주라'(suum cuique)는 보편적인 법적 원칙을 말한다. 이러한 원칙이 정상인들(대다수인 이성애자들)을 자신의 변덕에 종속시키려는 비정상인들(성소수자인 동성애자들)에 의하여 위협받고 있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LGBT) 행동가들에게 정의란 각 사람이 그의 젠더, 성적 정체성을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이들에게 정의란 동성애자들인 게이(남성 동성애자),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이 결혼하고 생명기술(biotechnology)을 사용하여 그들의 자녀들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이러한 정의는 올바른 정의가 아니라 성정치의 정의다. 이러한 성정치는 국가 권력이 성소수자의 요구를 강요하여 일반 성다수자들의 희생을 초래하는 것이다.
오늘날 게이 동성애자들이 걸리는 질병 에이즈(AIDS, 후천성면역결핍 증후군) 감염자의 1년 의료비는 3천만 원이라고 추정하며 이들의 의료비는 3천억이며 이 비용은 전액 국가가 부담한다. 한국에서는 에이즈 감염이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증거로는 전체 감염인 중 남자가 92%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질병 치료비 부담에 있어서 정상인들의 질병 치료비 부담보다는 엄청난 특혜를 누리는 불공평을 야기하고 있다.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불공평, 즉 객관적으로 다른 것(동성애)을 공평한 것(정상적인 것)으로 다루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불공평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의 법체계가 세워진 정의 원칙의 도착(倒錯, reversal)이다.
5. 평등 개념의 왜곡: 상대적 평등 무시 절대적 평등 요구
평등(equality)은 구성원들 가운데 일하는 기회의 균등과 일한 만큼의 동일한 보수를 보장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평등과 불평등을 결정하는 비교의 제3자(tertium comparationis)이다. 비교의 제3자에 의해 두 대상이나 사람이 비교되어서 같은 점과 차이점이 결정된다. 결혼이란 두 파트너 사이의 이성(異性)적 끌림이 있어야 하며, 후손을 생산하여 가족을 만드는 능력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행동가들은 젠더 평등을 요구하고 있다. 성소수자를 나타내는 영문 대문자(LGBT)는 레즈비언(Lesbian)과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LGBTAIQ라는 용어는 본래의 LGBT에서 무성애자(Asexual), 간성(間性)(Intersex), 아직 자신의 성정체성, 성적 지향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Questioner)을 더한 것이다. 인도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히즈라를 H로 표기하여 포함하기도 한다. LGBTAIQOC는 위의 용어에 범성애자(Open-sexual, pansexual)와 이성복장착용자(Crossdresser)를 추가시킨 용어이다. 한국에서도 퀴어축제 등의 영향으로 최근 동성결혼 등 성적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들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실체적 평등"(substantive equality)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적 평등 주장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생물학적으로 정신적으로 존재하는 성별(性別) 차이를 도외시하고 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관계와 동성끼리의 성관계는 구별되어야 한다. 부부관계가 아닌 남성과 여성이 성평등 명목으로 같은 잠자리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남성끼리 그리고 여성끼리 성관계가 성평등이라고 할 수 없다. 동성 간의 성관계가 부부 아닌 이성 간의 성관계처럼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위례별초등학교 영어교사인 최모 교사는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성소수자들의 축제 영상을 보여 주어 사회에 논란을 일으켰다. 최모 교사의 자리 주변 칸막이엔 무지개색 깃발과 포스터 등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남자는 다 짐승? 그렇다면 남성에게 필요한 것은 여성의 몸이 아닌 목줄입니다"는 글귀가 적힌 포스터도 있었다. 최모 교사는 지난 5월부터 학교 내 <페미니즘 북클럽>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교감을 포함해 이 학교 교사 58명 중 21명이 가입했다. 최모 교사와 함께 이 동아리 활동을 한 다른 교사들도 아이들을 상대로 성평등 교육에 나섰다고 알려졌다(최아리, 김은중, "[속 깊은 뉴스] 혁신학교 수업 재량권 줬더니... 편향된 성평등 교육," <조선일보> A10, 2017.8.26.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6/2017082600076.html).
최모 교사는 2017년 7월 17일 6학년 3개 반을 가르치면서 수업 시간 내내 자신이 서울 시청광장에서 열린 퀴어(queer·성소수자) 축제(7월 15일)에 참여해 찍은 영상을 보여주고, 이에 관한 얘기를 했다. 최모 교사의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부모에게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남자끼리 뽀뽀하는 사진을 보여줬다,"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영어 예문을 거의 she(여성 인칭 대명사)로만 들었다," "선생님이 여자아이들만 예뻐하고, 남자아이들을 면박준다"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해졌다. 한 학부모는 "최 교사가 아닌 다른 교사가 수업 시간에 '여자끼리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면서 "아이가 여자 인형끼리 결혼시키는 놀이를 하길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최모 교사가 개인 성향의 페미니즘 운동을 학생을 상대로 전파함으로써, 어린아이들이 너무 일찍 성소수자의 권리 이야기나 한쪽으로 치우친 성평등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상적인 성 교육은 남자와 여자를 인정하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성평등 교육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생물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인정하는 양성평등 교육을 해야 한다.
6. 차별 개념의 왜곡: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구별을 차별로 변질시킴
차별(discrimination) 개념은 가치 체계를 변화시키는 싸움을 합법화하는 열쇠 개념이다. 문명사회는 인종, 문화, 사회계급 등에서 발생해온 사회적, 문화적 차별과 투쟁하여 오늘날 문명사회를 이룩하여 왔다. 예컨대, 지난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을 남성에게만 허용하고 여성에게는 허용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남녀 차별로서 오늘날 철폐되었고, 대학교육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직장의 경우에는 여성이 출산해야 하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어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직장 선택에 있어서 여성에게 차별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직도 우리 문화에는 남성 중심의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서 화장실 시설의 경우 여성이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지하철 손잡이 등도 남성의 평균 키만을 고려해서 지하철 손잡이를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에는 개선되었다고 한다. 공중 휴게소의 화장실도 남성 위주로 만들어서 여성들에게 사용이 불편하다. 각종 광고에 있어서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 등이 규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 차별이란 정당한 용어로서 사회적으로 잘못된 인식과 행동을 지적하는 용어이다.
그런데 젠더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인종에 기초한 역사적 차별로부터 집합적인 죄과를 가져와서 차별 개념을 동성애의 정당화를 관철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대상(이성애와 동성애) 사이를 차별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이성애자들과 동성애자들을 구별하지만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에 대한 그 어떤 불공평한 대우는 차별로 분류한다. 그리하여 성적 행위가 개인과 사회의 공동선의 성공적인 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다 할지라도 차별 개념은 성적 행위에 대한 어떤 가치 평가를 할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의 권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구별을 차별로 간주하여 구별조차 못하도록 만든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성적 지향과는 관계없이 품위에 있어서 평등하다. 그러나 동성애 행위는 성희롱이나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이성애자들에게 혐오스러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명예훼손(libel), 희롱(harassment), 추방(exclusion)에 대한 법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는 것은 그의 품위에 대한 침해가 아니라 도덕적 원칙에 따른 정상적 공동생활에 참여하는 것이다. "discrimen"이란 구별(distinction) 내지 차이(difference)를 뜻하는 라틴어다.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옳음과 그름, 선과 악 사이를 구별해야만 한다. 선과 악 사이의 구별이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우주의 질서이다. 그래서 인류는 옛날이나 오늘이나 선과 악에 대한 구별의식을 가져왔고, 양심은 이를 알고 있는 것이다.
맺음말
젠더이론은 가족파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는 자유, 사랑, 정의, 관용, 차별, 평등 개념으로 포장된 잘못된 젠더이데올로기를 구별해낼 줄 알아야 한다. 오늘날 젠더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사용하는 정상적인 가치 언어(자유 사랑 관용 정의 평등 차별 등)를 왜곡시키고 이러한 언어가 본래 지니는 용법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로 변모시키고 있다. 오늘날 이러한 젠더 이데올로기가 획책하는 세계적 동성애 전체주의 운동에 대하여 성경적 전통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신자들은 이들의 왜곡된 사상에 감염되지 않고 바른 종교개혁적 정통사상에 입각한 신앙을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인권이란 동성애를 인정하고 이들을 위한 결혼 제도, 입양제도, 치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동성애를 비정상(죄)으로 지적하고 동성애를 치료하고 그 세계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 동성애자를 위한 인권이다. 젠더이론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종교 언론의 자유를 뺏고 있다. 젠더이론은 인간에 대한 거짓말로 시작된 이론으로서 책임감도 없는 자유, 정의, 관용, 차별, 평등 등을 앞세우고 있다. 동성애자들이 심볼로 내걸고 있는 '무지개'는 우리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부정하고 기독교 신앙을 모독하는 데 쓰이고 있다. 이 전쟁이 이기고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 자체가 주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젠더 이데올로기에 맞서 각 국별로 저항하고 국제적인 연대를 통해 동성결혼을 반대하고 생명과 진리, 양심, 바른 성, 가정, 효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