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현장의소리] 자운영(紫雲英)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자운영(紫雲英)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도시교회의 어머니인 농촌교회가 힘겨워하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 남도에는 청보리와 마늘이 자란 만큼 봄기운이 완연했다.

‘강진군 신천면 송천리’라고 검색하니 친절한 내비게이션은 389km라고 안내를 한다. 서울에서 쉬지 않고 내달려도 5시간 남짓의 거리를 한걸음에 내달려 아침 햇살의 기운이 사라지기 전에 그곳에 섰다.


교회 앞마당에는 모래가 쌓여 있고, 십자가 탑에 그려진 기장마크와 ‘송천교회’라는 글자가 오랜 세월을 견뎌왔음을 말해주듯 색바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곳을 처음 방문하면 나는 마을 길을 따라 동네를 천천히 돌아본다. 김미숙 전도사에게 30분 뒤에 교회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전화를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드문드문 떨어진 집까지 대략 70여 호, 아이들이 학교 갈 시간일 터인데 버스정류장을 보니 학생들이고 아이들이고 보이질 않는다. 순간, 이곳이 농촌지역이라는 것, 농촌지역 중에서도 서러움 많은 강진의 끝 자락, 그래서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과 차라리 더 가까운 곳임을 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교회 길 너머의 논에는 자운영(紫雲英)이 한가득 피어 있었다.

자운영은 무리지어 피어 있는 모습이 연분홍색 구름 혹은 연분홍색 옷감을 펼쳐 놓은 듯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자운영을 보는 순간, 공선옥 작가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산문집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온 들에 흐드러진 자운영처럼, 우리집에도 뭔가가 흐드러졌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꿈을 꾸었습니다.’


농촌교회를 떠나야만 했던, 혹은 끝까지 남아 농촌교회를 섬기는 교역자와 교인들을 공선옥 작가의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라는 글에 ‘엄마’ 혹은 ‘나’라는 단어에 적절하게 삽입을 시키면 읽는 이들의 가슴을 후벼 파는 산문 한 편이 완성될 것만 같았다. 사람이 없다는 것, 세대가 단절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현실이 척박하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공선옥 작가의 문장을 나는 이렇게 바꿔보았다.


‘온 들에 흐드러진 자운영처럼, 농어촌교회에도 뭔가 흐드러졌으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꿈을 꾸었습니다.’


자운영의 꽃말은 ‘나의 행복’, ‘감화’ 혹은 ‘그대의 관대한 사랑’이며 뿌리부분에 유기물과 질소가 많아 사료작물 혹은 녹비작물로 재배된다. 연분홍빛 자운영 꽃밭은 이제 곧 갈아엎혀 초록빛 논밭이 될 것이다. 자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진 내력은 그들의 삶과 농어촌교회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꽃말까지 그렇게 닮았는지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농어촌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에게 “너희는 나의 행복이다!” 하시는 것 같고, “나도 너희로 말미암아 감동 먹었어!”하시는 듯도 하고, 농어촌교회의 헌신이 있기에 지금의 한국교회가 있으니 ‘그대(농어촌교회)의 관대한 사랑’으로 한국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약속시간이 되자 김미숙 전도사가 마중을 나왔다.

재건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교회 뒷길로 들어서니 허름한 사택이 있다. 허브차의 향기가 사택 안에 가득하다.


 

 

 

김 전도사는 한 달 전 송천교회로 부임했다.

85년 졸업한 이후 군산성광교회, 목포남부교회, 목포중앙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다 처음으로 담임 교역자가 되어 송천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 이전보다 마음이 더 무겁고, 여러 면에서 어려운데 신앙마저도 뒤처지면 더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생활을 향상시켜줄 수는 없겠지만, 신앙은 향상시켜주고 싶어요. 가뜩이나 어려운데 신앙이 흔들려버리면 너무 힘들잖아요. 도시교회에서 신앙 생활하시는 분들과 다르지 않은 영성을 갖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갈 생각입니다.”


 

 

 

송천교회는 주일 평균 22명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으며, 교인의 평균연령은 75세, 가장 젊은 분이 50대, 그나마 1명이라고 한다. 당연히 몸이 아프신 어르신들이 많고 주수입원이 농업이기에 재정적으로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송천교회는 역사적으로 신월교회(현 북일중앙교회)까지 거슬러 올라가 100년 전에 지역사회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했다. 1964년도에 강연순 권사를 중심으로 교회가 세워졌으며, 1983년도의 현 위치에 교인들이 직접 바다에서 모래를 퍼다 벽돌을 찍어 현 위치에 교회를 지었다. 바닷모래로 지어진 건축물이라 보통 건축물보다 빨리 낡았다. 그리하여 7-8년전부터 리모델링 계획을 세우고 지난해부터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현재는 교회지붕과 천정을 마무리한 상태다.


“더 어려운 교회가 많은데 우리 교회가 소개되는 것이 죄송스럽네요. 하나님께서 시작하게 하셨으니 마무리도 할 수 있게 도와주시겠죠. 기도하면서 리모델링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건축관련된 일이란 것은 처음 시작할 때의 예산보다 대체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대략 6천만 원 정도로 생각했던 리모델링비는 7천여만 원 정도로 늘어났다. 그러나 문제는 주일 평균출석 22명에, 평균연령 75세 이상의 교인들에게는 천문학적인 돈이다. 어떻게 하든 교인들과 힘을 합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기도하고 노력하고 있다고 했지만, 필자는 그들에게만 이런 책임을 지우는 일은 죄를 짓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한 지체인 교회가 이렇게 발버둥치고 있는데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아픔은 또 있었다.

농어촌교회 교역자들의 이동이 너무 잦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역자의 사명감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크게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까지도 포괄하는 것으로서 사회의 전반적인 정책이 농어촌을 죽이는 정책일변도로 가는 한 어쩌면 이 문제는 해결하기 요원한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지만 교회와 교역자와 노회, 총회가 지혜를 모아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교회공동체를 모색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우리 스스로 자각하고 그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서로 서로에게 기쁨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기장공동체를 꿈꿔야 하지 않겠는가!


“이 교회를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때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25세 때 죽을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지요. 저 같이 부족한 사람이 장로회 회장까지 지낸 것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앞으로 될 일들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겠지요.”


사택에서 정성껏 준비한 허브차를 마시고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인 교회를 둘러본다. 밖으로 나와 사택을 보니 사택도 리모델링을 해야 할 상황이다. 마침 집사님 몇 분이 나와서 공사를 하고 있고, 장로님과 전도사님과 집사님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공사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교인의 마늘밭을 방문했다.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이다.

둑길에는 토종민들레, 냉이, 꽃다지, 봄맞이꽃, 꽃마리, 독새기풀 등 어릴 적 보았던 들풀꽃들이 한창이다. 누가 돌봐주지 않아도 여전히 피어나는 작은 들꽃들, 그들의 삶처럼 도시교회의 모태가 된 농어촌교회도 끈질기게 저 들꽃들처럼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비단 송천교회뿐 아니라 농어촌지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고난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다.

 

 

 

 


 

도시교회의 어머니는 작은 시골의 농어촌교회다.

도시교회 구성원들의 고향을 보면 왜 농어촌교회가 도시교회의 어머니인지 자명해 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도시교회의 어머니라 할 수 있는 농어촌교회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들 혼자 외롭게 싸우게 하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라고 고백하는 것을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참고알림

‘송천교회 재건축 후원’을 원하시는 분들은 총회에 목적헌금(송천교회)명목으로 후원하시면 전액을 송천교회에 전해 드립니다.

 

 

 


 


(자료제공: 기장회보 제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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