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이슈 되짚어보기]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마라"

비상한 관심 모았던 예장통합 총회재판국에서 벌어진 일

지난 16일 오후 예장통합 총회(총회장 최기학)가 있는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는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해 중요한 심리가 열렸다. 총회재판국(국장 이만규 목사)이 이날 ‘서울동남노회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동남노회 비대위)가 제기한 선거무효 소송을 심리한 것이다.

재판국 판단에 따라 명성교회 세습 논란의 국면이 달라질 수 있어 이날 심리결과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엔 없었다. 이런 상징성으로 인해 백주년기념관 안팎에서는 활동가들과 장신대 신학생들이 오전 일찍부터 시위를 벌였다. 이날 아주 흥미로운 두 장면이 펼쳐졌다.

#장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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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동남노회 남아무개 재판국장은 16일 열였던 총회재판국 심리에 나타나 활동가들을 자극하는가 하면 심리를 엿듣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취했다.

총회재판국의 심리 시작 전, 50대로 보이는 이들 10여 명이 심리가 열리는 총회재판국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명성교회에서 왔냐고 묻자 아니라고 답했다. 그런데 동남노회 재판국장을 맡고 있는 남아무개 목사가 이들과 섞여 보조를 맞췄다.

그의 행동은 예정했던 심리가 다가오자 더욱 이상해졌다. 남 목사는 회의실 주변을 기웃거리면서 세습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활동가들을 비꼬는 듯한 말을 계속 내뱉는가 하면, 회의실 주변을 서성이면서 심리 내용을 엿듣기도 했다. 이때 남 목사는 노골적으로 문을 열고 엿듣는 행동까지 취했다. 이후에도 남 목사는 활동가들을 계속 자극했다.

#장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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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16일 총회재판국 심리가 열렸던 한국기독교백주년기념관에서 신학생연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다. 이때 50대로 보이는 남성이 시위를 방해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시위를 이어나갔다.

한국교회백주년 기념관 앞에선 '명성교회 세습반대를 위한 신학생연대'(아래 신학생연대)에서 온 신학생들이 총회재판국의 공의로운 재판을 촉구하는 침묵 시위를 이어나갔다. 이때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신학생들을 향해 고성을 질렀다. 신학생들의 시위가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 남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관할 경찰서에 신고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경찰관 3명이 현장으로 달려왔다.

마침 현장엔 혜화경찰서 소속 정보관이 나와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정보관은 학생들의 시위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취지의 말로 이 남성을 진정시키려 했다. 이러자 이 남성은 경찰이 공정하지 않다며 목소리를 높이면서 신학생들의 시위를 방해했다. 심지어 현장을 취재하던 CBS 카메라 기자의 취재를 방해하다 항의를 받기도 했다.

명성교회 세습을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그런데 한꺼풀 벗겨보면 세습 논란은 세대간 갈등양상을 띠고 흘러가는 모양새다. 젊은 신학생들은 세습에 분명하게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습 반대 목소리가 신학생들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말이다. 선배 목회자들이 세습에 반대하는 이유는 각기 다르다. 그러나 현장에서 접촉해 보면 '이런 일(세습 - 기자 주)을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없다'는데에 입장이 모아진다.

반면 은퇴목회자들은 교단지인 <한국기독공보> 광고에서 각각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을 향해 "비판도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교훈이 되고 유익을 끼치는 방향에서 해야한다", "입장표명을 지나쳐 집단화하여 교회에 혼란을 주는 것은 안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장신대생은 "은퇴목회자들의 말을 들으면서 흡사 세월호 참사 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듣는 듯 했다"는 심경을 밝혔다.

아마 회의장 분위기를 어지럽힌 남 목사와 신원미상의 50대 남성은 어느 쪽일까? 정확한 속내는 본인들만 알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보인 행동으로 판단하건데, 세습에 어느 정도 찬성하는 입장일 것이라고 추론할 수는 있겠다. 이들의 시선에서는 세습 반대 시위는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을 터이고,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막아야 할 일임이 분명했다.

이런 부류들에게 세습이 왜 해서는 안되는가 하는 식의 논의는 무의미하다. 실제 남 목사는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직전, 현장에 와 있던 방인성 목사와 언쟁을 벌였다. 방 목사는 이전부터 세습 등 한국교회의 '적폐'에 맞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방 목사는 세습의 부당성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남 목사는 막무가내였다. 신학생들의 시위를 방해했던 이 남성 역시 막무가내이긴 매 한가지였다.

백보양보해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하자. 그러나 앞선 세대로서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생각이 옳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고 판단한다면 상식에 입각해 상대방을 설득시키면 될 일이다.

남 목사는 동남노회 재판국장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런 위치의 사람이 총회재판국 심리가 열리는 회의실을 기웃거리며 심리내용을 엿 들은 건 여러모로 부적절했다. 신학생들의 시위를 방해했던 50대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현장에 나와 있던 경찰관이 적법하다고 판단했음에도 오히려 젊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경찰을 향해 거칠게 반응하는 모습은 어른이라 하기에 부끄럽기 그지없는 행태다.

이 두 장면을 적으면서 신약성서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이 떠올랐다. 세습에 반대하고 나선 모든 이들, 특히 젊은 신학생들이 이 말씀을 붙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덧붙이는 글]

명성교회 관련 심리가 지연될 기미를 보이자 신학생연대는 성명을 내고 총회재판국을 압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만규 재판국장은 1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안에 따라 지연될 수 있다. 재판 진행은 주심재판관 3명이 맡았는데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명성교회 정상화 모임'의 관계자 A씨는 재판국에서 원하는 판결을 내리지 않을 경우 사회법 절차를 밟을 것임을 시사했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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