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영 KBS 사장이 결국 해임됐다. KBS 이사회는 22일 임시이사회를 열고 고대영 사장 해임 제청안을 찬성 6, 기권 1로 최종 가결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23일 전날 이사회가 가결한 고 사장 해임안을 재가했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전국언론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고대영의 해임을 적극 환영한다, 일터로 돌아갈 KBS본부의 조합원들이 먼저 출발한 MBC 동지들의 뒤를 따라 KBS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다시 만들기 위한 과제를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투쟁을 지지하고 응원해준 모든 시민과 제 단체에도 부탁한다"며 "당장 새로운 공영방송을 이끌 수장을 선출하는 것부터 이전과 같은 뜨거운 관심과 끊임없는 비판과 의견을 보내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냈다.
이사회에 앞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언론위, 이동춘 위원장)는 "망가지고 피폐해진 KBS가 공영방송으로 거듭나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KBS이사회가 언론자유와 방송 독립을 고사시켜온 고대영 사장 해임 제청안을 지체 없이 의결하여 5개월간의 총파업을 종식시키고 KBS정상화를 앞당길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사회를 압박한 바 있었다.
그러나 KBS 정상화는 이제 시작이다. 성재호 KBS 새노조 위원장은 지난 해 12월19일 방송된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 PD수첩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KBS는 그 태생부터 지금까지 사실 권력에 매우 취약한 그런 어떤 전통, DNA 같은 게 있어요. 여전히 그 DNA는 바뀌지 않았다고 봐요. KBS의 DNA를 바꾸는 그 시작, 그 싸움의 시작은 지금이라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정말 우리는 DNA를 바꾸는 싸움을 하는 거예요."
KBS는 원래부터 정권홍보 스피커
이 말을 이해하기 위해선 KBS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KBS에 몸담았던 최경영 <뉴스타파> 기자는 자신의 책 <뉴스는 어떻게 조작되는가?>에서 KBS의 역사를 이렇게 적는다.
"KBS는 원래 정부의 한 부처였다. 문화공보부의 일개 국이었다. 나이든 어르신들이 아직도 방송사를 방송사라 하지 않고, 방송국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역사 때문이다. KBS는 문화공보부의 중앙방송국이었다.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스피커였다. 그곳에서 기자, PD, 아나운서를 했던 사람들도 공무원이었다. 공무원이 정부를 견제하거나 감시할 리는 없다."
결국 KBS는 태생부터 정권의 '애완견' 노릇을 할 수 밖엔 없었던 셈이다. KBS가 '공영방송'이었던 시절은 기껏해야 김대중·노무현 정부였던 10년 남짓이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방송을 장악하려 시도하자 KBS는 무기력하게 정권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 바로 고대영 사장이었다. 고 사장은 정치부 50여 명과 함께 모임을 갖고 정연주 전 사장을 몰아내려 했었다. '수요회의'라고 이름을 붙인 모임에 참석했던 함철 KBS 기자는 < PD수첩> 취재진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정연주 사장이 신문(기자) 출신인데 KBS에 대해 너무 모른다. 그러다 보니까 인사를 잘 못한다, 경영을 잘 못한다. 정연주 사장을 빨리 몰아내야 되고, 이제 KBS 출신, 공채 출신 사장이 와야 하는 거 아니냐?"
이제껏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은 이명박 대선캠프에서 언론 특보를 맡았던 김인규를 KBS 사장으로 내정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은 KBS를 정부 입맛에 맞게 바꾸려 했을 것이다. 문제는 KBS 내부 구성원들이 정부에 신호를 보냈다는 점이다. 이 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 바로 고대영 사장이었다.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고 사장은 꽃길을 걸었다. 김 사장 재임 시절 보도본부장을 맡았고, 박근혜 정권에 오면서는 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불행하게도 고 사장이 승승장구하는 사이 시청자들에게 KBS의 신뢰는 급하락 했다. 2009년 '용산 참사' 당시엔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고, 국가정보원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망신주기 공작에도 KBS는 전파를 아끼지 않았다.
고 사장은 퇴진압박을 받자 방송법이 바뀌면 퇴진하겠다며 버티다 해임의 운명을 맞게 됐다. 고 사장 해임안이 가결되면서 이인호 KBS이사장도 "공영방송 KBS 이사장으로 더 이상 남아 있는 것은 무의미하다"며 사퇴했다.
앞서 적었듯 공영방송 KBS가 ‘공영적'이었던 시절은 아주 짧았다. 공영방송 안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태생적 한계를 청산하지 못하면 언제고 또 다시 고대영 같은 인물이 공영방송을 정권에 ‘바치는'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하지만 공영방송 정상화는 이제 시작이다. 우선 공영방송을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시킨 공범자들을 척결하고, 필요하다면 사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다시는 정권이 공영방송 장악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을 거치는 동안 언론, 특히 공영방송이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가 망할 수 있음을 피부로 느꼈다. 이런 이유로 많은 국민들이 KBS노조의 고대영 사장 퇴진 운동에 격려를 보냈고, 이제 체질을 바꾸는 일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KBS의 구성원들이 국민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적극 응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