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기고] 명성교회와 악의 기원

프랑스 에꼴 프라틱 데 오뜨 에튀드 박사과정 최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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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사진제공= 교회개혁예장목회자연대)
▲ 세습 논란의 중심에 선 명성교회 김삼환 원로목사(사진 좌)와 새노래명성교회 김하나 목사(사진 우).

명성교회 세습 논란으로 기독교계 안팎이 들썩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명성교회 세습반대를 위한 신학생연대'(신학생연대)는 세습의 신앙적, 신학적 의미를 돌아보고 세습반대 운동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모색해보고자 청년신학생들의 생각을 담아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신학생연대는 두 번째 작업으로 프랑스에서 중세연구 박사과정에 있는 최건우씨의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최씨는 프랑스 파리의 에꼴 프라틱 데 오뜨 에튀드(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 고등연구원으로 중세연구 박사과정을 이수 중이다. 그는 중학교 때 명성교회에 등록해 10여 년간 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이어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편집자주]

명성교회와 악의 기원

현재 진행 중인 명성교회사태를 멀리서 전해들으며, 10여년 전에 떠나온 뒤 거의 발걸음을 향해 본 적이 없는 그곳, 그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적어도 한때 나에게, 그리고 ‘명성교회교인'이라 말하길 즐겨하던 많은 이들에게, 아름답고 감사하게 여겨졌을 뿐 아니라 자랑스럽기까지 했던 그곳이 이제는 부끄러움과 수치, 그리고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일은 세습이라는 사건이 가져온 일순간의 우발적인 결과일까? 아니면 이미 명성교회라는 하나의 사회가 지녀왔던, 혹은 그 곳의 종으로 자처했던 왕과 같은 담임목사의 사고와 행동 속에 잠재해왔던, 어떤 치명적 요인의 참담한 결과일까?

그분의 말씀을 들었던 순간을 돌이켜 볼 때, 소위 ‘은혜'를 받았던 적이 많았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분은 참으로 아버지와 같이 넉넉함과 풍성함을 지닌 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그분 말씀의 주된 주제는,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아버지처럼 우리가 비록 잘못을 했을지라도 용납해주시고 넉넉하게 받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였고, 현재는 비록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참고 ‘예수를 잘 믿으면', 여느 동화의 결말과 같이 ‘행복하게 잘 살았더라'로 마무리 되는 복된 삶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런 위로의 메시지는 젊은시절 어려웠던 그분 자신의 삶에 대한 간증, 그리고 그 특유의 유머스러운 기교와 어우러져 내적 혹은 외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이들을 감화시켰다.

그런데, 그런데 가끔 이상한듯 보일 때도 있었다. 왜냐하면 종종 그분의 용납이 이해를 초월해 있는 듯 보일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모든 이가 지탄해 마지 않았던, 그리고 그것이 지당하게 보였던 어떤 사회의 사건에 대해 그분은 줄곧 정의가 아닌 용납을 말씀하셨다. 기억나는 일례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사건이 미국과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을 때, 그분은 수차례 반복적으로 클린턴처럼 훌륭한 대통령이 없었다며 추켜세우기를 조금도 꺼려하지 않았다. 이런 묵과적인 용납 때문이었는지, 당시 어떤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님의 스케일은 범인인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크다며 선전하고 다녔다.

한편, 이런 무조건적인 용납에로의 경향성은 정의, 혹은 정의의 심판을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정의를 향한 행동들에 대한 거리낌과 연결돼 있는 듯 보였다. 내 기억에 그분은 설교 중에 이유가 어찌됐든 데모와 파업과 시위를 늘 굉장히 나쁜 것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누가, 심지어 목사라 할지라도 선지자들처럼 정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비웃는 듯 보였다 (한때 교계에 대해 날선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어떤 목사님을 향해 그분이 그러했듯). 그분에게 정의를 추구하는 것, 불의에 대항해 일어나는 것은 젊을 때 잠깐 하는 것이지, 인간이 계속적이며 궁극적으로 추구할 만한 가치가 아닌 듯했다. 그분에게 있어 인간은 무엇보다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말씀을 오래동안 듣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일까 ? 나는 한때 명성교회에 대해 걱정어린 말을 전해주던 한 명성교인으로부터 이번 세습사태 이후 한 놀라운 말을 듣게 되었다. 나는 물었다. 교회 상황이 좀 그럴텐데, 교회생활하기 어렵지 않으시냐고. 그분은 말하길, 자신을 비롯해 현재 남아있는 많은 교인들은 이 세습문제를 생각지 않으며 개의치 않는단다. 자신들에게 중요한 것은 명일동의 아파트 값이 떨어지지 않는 것 뿐이란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나에게 충고하듯 말을 덧붙였다 :

« 전도사님이 아직 젊어서 모르시는 것 같은데, 목회는 서비스업이고 교회는 고급문화공간이에요 »

이러한 이해에 따르면, 교회는 교인들이 서로 경조사를 챙겨주며 고급하게(?) 교류하고, 교역자는 교인들이 사회에서 ‘잘 되도록', 말씀으로 토대를 닦아주고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원해주는 곳이다. 이렇게 보면, 명성교회 세습에 대해, 교인들이 좋다는데, 왜 다른교회가, 그리고 세상이 난리냐며 되레 힐난하는 현재의 명성교회교인들의 속내를 알만하다. 그들에게 교회는 자신들의 행복을 제공해주며 정당화해주는 터전이면 되는 것이다.

누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비난하겠는가 ? 행복은 인간에게 있어 보편적으로 추구되고 보장되어야 할 정당한 욕구이자 권리가 아닌가? 그런데 적어도 기독교사상사의 한 시점에 행복의 추구는 악의 기원과 연관되어 이해되었다.

악에 대한 현대의 담론으로, 근래에 박근혜정부 덕에 더 잘 알려진,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담론이 있는 반면, 기독교사상사에서 악, 특히 악의 기원은 전통적으로 ‘천사의 타락', 소위 ‘루시퍼' 담론으로부터 이해되었다. 이 ‘천사의 타락' 담론은 악과 관련된 신구약의 여러 구절들을 기초로 한 교부들의 성서해석으로부터 기초지어졌다. 기독교사상사에서 독보적인 준거가 되는 어거스틴(354-430)의 해석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그는 처음부터 살인한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요한복음8 :44) 라고 말씀하실 때, 여기서 ‘처음'은 그가 창조되었을 ‘처음'이 아니라, 그의 죄의 ‘처음'(ab initio peccati)으로 이해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누구라도 본성자체가 죄라면, 죄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마귀는 창조시에는 천사였지만, 그의 죄로 인해 타락하게 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달리 말해, 죄가 마귀로의 타락을 야기한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이러한 해석은 이사야 14 :12 (타락한 천사의 이름이 ‘Lucifer' 로 불려지는 근거가 되는 구절) , 에스겔 28 :15 등의 구절을 통해 뒷받침된다. 그리고 그 천사가 지은 죄가 무엇이냐하는 이해에 있어, 어거스틴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려 했던' 루시퍼의 예가 알려주듯, 교만을 들었다. 교만은 질투보다 근본적인 악인데, 그 이유는 ‘질투는 다른이가 잘 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지만, 교만은 자기 자신의 탁월함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에 중세의 신학자 안셀름(1033~1109)은 어떻게 천사가 교만에 이르고 결국 타락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일종의 가설을 세운다 . 이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지을 때 우선적으로 먼저 ‘행복에로의 의지(beatitudinis voluntas)'만을 주셨다. 이 경우에 천사는 행복 이외의 다른 것을 원하지 않으며, 스스로 이 행복에로의 욕구를 뿌리칠 수 없다. 그리고 더 큰 행복이 있다면, 그는 이를 더욱 갖기를 원할 것이며, 이 행복이 얼마나 더 높은지를 깨닫는 만큼 더욱 그는 행복해지기를 원할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하와가 뱀에게 유혹당했듯,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원하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행복에로의 의지에서 비롯된 하나님과 같아지기 원하는 욕구는, 한편, 그것이 피조물인 그에게 합당하지 않은 것이기에, 의롭지 않은 것이지만, 다른 한편, 그것이 그에게 주어졌던 행복에로의 의지라는 어떤 필연적 원리에 의해 이뤄졌기에 불의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정의로운 의지(justa voluntas)' 없이 ‘행복에로의 의지'만을 가진 천사는 이익(commodum)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면서 하나님과 동등되려 하기에 이르렀고 그 결과 그는 타락하였다. 그렇기에 안셀름은 ‘(천사는) 정의로운 의지가 없다면, 행복해지면 안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다시, 어느 순간 행복 공동체가 되어버린 명성교회, 그리고 김씨 부자 목사를 생각한다. 그들은 불의를 추구하지도, 악을 도모하지도 않는 것 같다. 다만 신앙의 이름 아래서 행복을 추구할 뿐이다. 이들은 행복의 극단에 이르른 것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는 비단 총회의 법을 어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 양심에 있는 정의의 요구를 행복의 추구 가운데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들 양심에 정의의 음성이 없었더라면, 세습에 대한 말을 여러번 번복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정의로운 의지'로부터 떨어져나가 ‘행복에로의 의지'의 길의 극단에 서있다면, 또 하나의 악의 출현을 보게 될 것인데....

이것은 정말 애석하고 슬픈 일일 것이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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