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의 '괴물' 시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로 검찰 조직을 비롯한 공직사회의 여성 폭력 민낯이 드러난 가운데 문단에서 활동하는 최영미 시인의 '괴물' 시에서 문학적으로 폭로된 '미투'(Me too)가 새삼 재조명되고 있는 것. '#미투'(#MeToo)는 '나도 성추행 피해자'라는 뜻으로 전 세계적으로 성추행 사건에 대해 고백하는 운동이다. 아래는 SNS 등 온라인 상에서 회자되고 있는 최영미 시인의 '괴물' 시 전문. 최영미 시인의 '괴물' 시는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게재된 바 있다.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벨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