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나 싶었는데 벌써 2월이다. 한동안 매서운 추위가 닥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러나 계절의 변화는 거스를 수 없다. 전에는 오후 6시만 되면 어두컴컴했지만, 지금은 환해졌기 때문이다. 다음 주 추위가 닥친다고 한다. 그럼에도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한 달, 개신교계에서는 이슈가 연달아 불거져 나왔다. 연초 기독교 정신을 건학이념으로 내세운 경북 포항의 한동대가 페미니즘 강연을 이유로 국제법률대학원(HILS) 김대옥 조교수(목사)의 재임용을 거부하고, 강연을 주최한 학내 모임 소속 학생들에 대해 징계 압박을 가했다.
이어 충남 개신교계는 자유한국당 김종필 충남도의원(서산2)이 대표 발의한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을 적극 지원하며, 폐지안 가결을 관철시켰다. 한편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는 JTBC뉴스룸에 출연해 8년전 자신이 당한 성추행 사실을 털어놓았다. 서 검사의 고백은 전방위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 개신교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전 법무부 감찰국장은 지난 해 10월 서울 양재동 온누리교회에서 눈물을 뿌리며 간증을 했는데, 서 검사는 이를 보고 고백을 결심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해야 한다"는 서 검사는 서 검사의 고백은 개신교계에 적잖은 신학적 고민을 안겨줬다.
지난 해 말부터 논란이 불거진 명성교회 세습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총회 재판국은 오는 13일 심리를 예고했는데, 이들이 상식에 부합하는 판단을 내릴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개신교계
이 모든 징후들은 퇴행으로 보이기에 충분하다.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이 특히 그렇다. 충남지역 개신교계는 ‘성적지향'이 명시돼 있는 충남인권선언 제1장 1조 차별금지 원칙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조항과 동성애가 어떤 인과관계를 갖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이들은 맥락과 아무런 상관 없는 성서 구절 몇 개를 ‘갖다 붙이'다시피 하며 집단행동도 불사했다.
이들의 집단행동은 몰상식이란 말로도 부족할 정도로 저급했다. 지난 달 29일 충남도의회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이날 충남도의회 행정자치위원회(행자위)엔 충남인권조례 폐지안 심의가 예정돼 있었다.
행자위 심의가 임박한 시점에 불상사가 벌어졌다. 인권조례 폐지안에 찬성하는 보수 시민단체 회원 50여 명이 사실상 회의장 앞을 점거한 것이다. 이들은 회의가 열리기 훨씬 이전 현장에 나와 진을 치다시피 했는데, 면면을 보니 폐지안 기도회에 참석한 이들이 많이 눈에 띠었다.
이들에 맞서 여섯 명의 진보 성향 시민단체 회원들이 현장에 달려와 폐지안 반대 피켓 시위를 벌이려 했다. 이러자 양측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은 반대편 시위대가 시위를 못 하도록 발을 뻗는가 하면, '우리가 이곳에 먼저 자리를 잡았으니 나가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실랑이는 급기야 팻말 자리싸움으로 번졌다.
경찰까지 출동해 상황을 다잡으려 했지만, 사태는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마침 현장엔 취재진이 속속 도착했다. 취재진이 사진을 찍으려 하자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막말은 이랬다.
"당신 어디 기자야?"
"OOO? 그런 데도 다 있어?"
"완전 삼류네. 듣보잡(잘 알려지지 않은 매체를 일컫는 속어 - 글쓴이)이군!"
실로 어처구니없다. 아무리 집단행동을 일삼는 부류들이라도 언론을 전략적으로 이용할 줄은 안다. 특히 요사이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식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된다. 따라서 혹시나 매체의 지명도와 무관하게 어느 매체에서든 드잡이 상황이 펼쳐지면 이 소식은 삽시간에 퍼진다. 그래서 어느 언론을 막론하고 고도의 전략적 대응은 필요하다. 그러나 '인권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개신교 신도들이 다수 뒤섞인 보수 시민단체는 막무가내다. 이들과 유사한 집단이 지구 상에 또 하나 있다. 바로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다.
그간 성소수자 관련 의제는 주로 보수 성향의 개신교쪽이 주도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충남인권조례 폐지안 가결과정만 보면 적어도 이 의제에 관한 한 개신교계는 대동단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지난 달 28일 충남 천안에서는 폐지안 지지집회 성격의 기도회가 열렸다. 충남기독교총연합회가 이 기도회를 주최했는데, 연합회 대표회장 오종설 목사(홍성제일장로교회)와 상임회장 전종서 목사(대동교회)는 진보성향으로 알려진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총회 소속이다.
이 기도회에서는 ‘인권법이 북핵 보다 더 위험하다', '정권을 친북좌파에게 내줬다', ‘공산주의로 적화시키는 무리들에게 나라가 넘어가고 있다'는 식의, 그야말로 아무말이 난무했다. 말이 기도회지, 태극기만 들지 않았을 뿐 극우 집단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기도회를 충남기독교총연합회가 주최했고, 이 단체의 수뇌부가 진보성향의 기장 교단 소속 목회자라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돌이켜보면 개신교계의 퇴행 징후는 지난 해 부터 도드라졌다. 특히 성소수자 의제에 대해 치열한 신학적 고민을 시도하기 보다 차별과 배제로만 일관했다. 지난 6월 예장합동 교단과 다른 7개 교단이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가 퀴어성서주석 번역에 참여한 점을 문제삼아 이단으로 낙인 찍더니, 9월엔 국내 최대 장로교단인 예장통합과 예장합동 교단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성소수자 혐오와 배제를 법으로 명시한 건 극명한 퇴행 징후였다. 기장 교단이라고 별반 사정이 낫지 않았다. ‘성소수자 교인 목회를 위한 연구위원회 구성과 활동 안건'이 총회에서 기각됐기 때문이다. 이런 기장 교단이다 보니 이 교단 목회자가 수뇌부로 있는 연합회가 정치집회를 방불케 하는 기도회를 주최한 게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더 긴 말 하고 싶지 않다. 이대로 가다간 다 망한다. 완전히 망하고 싶으면 그냥 하던대로 하라.
그러나 정말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를 사랑하고, 우리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한다면 어서 그 발걸음을 돌이키시라. 그게 한국교회가 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