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옹색한 마음을 열라

2018년 2월 18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막 9:38-41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 예수의 혁명

kimkisuk
(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모순과 슬픔을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신 주님의 마음과 깊은 일치를 경험하는 기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공포와 절망에 짓눌린 사람들에게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꿈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봄이 도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였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불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 이후에 주어질 천국을 말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될 리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세상의 모순과 불의에 눈 감고 피안에서의 복락만 강조하는 종교처럼 지배자들에게 편리한 게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이 땅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와 만난 사람들은 모두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일그러진 생명이 회복되었고, 이런저런 일들로 산산 조각났던 마음이 온전히 통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자각했고, 자기들을 비인간적으로 대하는 권세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혁명가였습니다. 폭력으로 세상을 뒤집어엎었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에게 품부된 생명을 한껏 누리도록 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영어로 혁명을 뜻하는 revolution의 어원인 라틴어 revolutio는 '궤도의 운행', '공전주기에 따른 순환'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혁명이라는 말에는 "어떤 확립된 지점으로 복귀한다는 의미가 포함"(김선욱, 한나 아렌트의 생각, 한길사, 2017년 12월 14일, 140쪽)된다고 합니다. 예수는 사람들이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일깨운 분이라는 의미에서 혁명가였습니다.

예수 운동은 그런 의미에서 생명 회복 운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소수에 불과한 제자들과 더불어 그런 생명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로마의 군사력 앞에서 사람들이 숨조차 편히 쉴 수 없었던 시대에 말입니다. 지속적으로 수탈과 압제에 시달리면 사람들은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몸과 마음에 새겨진 공포의 기억이 사람들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될 때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살필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합니다. 예수 운동은 온통 자기에게 집중된 사람들의 마음을 이웃과 하나님께로 돌리도록 만들었습니다. 머리에 이고 있는 쇠 항아리를 하늘로 알고 살던 사람들이 비로소 푸른 하늘을 보게 된 셈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기적에 적잖이 고무되었습니다.

* 차이를 넘어

예수님 일행이 예루살렘을 향해 가던 어느 날 요한이 주님께 와서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막9:38) 요한은 '잘했다'는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일까요? 요한은 '예수의 이름'을 일종의 지적 재산권으로 간주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다른 제자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이 발언에는 자기들 이외에는 누구도 그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특권 의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막9:39-40) 이 말이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초대교회의 교훈이 이 속에 담겨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에게 욕을 먹거나 칭찬을 받는 일은 예수님의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좋은 평판을 얻으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이 말씀 속에 담긴 중요한 두 가지 메시지에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 제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소속의 문제입니다. 그가 우리의 내(內)집단에 속한 사람인지 아닌지가 모든 판단의 기준입니다. 하지만 주님에게 중요한 것은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쳤다면 그건 좋은 일입니다. 생명이 회복되고 온전해진다면 그게 누구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아주 배타적이고 편협한 이들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에 나갔을 때 대표 기도를 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상투어구에 저항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우리를 저 죄악 세상에서 건지시어 구원의 방주에 태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는 교회에 다니고 예수를 믿으니 구원받은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다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주님도 같은 생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7:21)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속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사건이 곧 우리가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빌립보서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등장합니다. 빌립보 교회에도 바울을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집단은 경쟁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은 바울의 마음이 편했을 리 없습니다. 바울은 경쟁심으로 곧 불순한 동기에서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자신의 감옥생황에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는 생각을 품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태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바라봅니다.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빌1:18) 씁쓸함조차 없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더 본질적인 세계를 바라보며 기뻐합니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것이지, 자신이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 소속이 다르다고 하여 동지가 될 수 있는 사람조차 적으로 돌려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 운동을 위해 연대할 수 있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어둔 세상을 밝히는 작은 불빛들입니다. 어둠이 지극한 시대에는 희미해 보이는 빛조차 소중합니다.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낭비입니다. 하나님 나라 운동에는 정말 많은 이들이 필요합니다. 작은 차이들 때문에 갈라서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차이는 남겨두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함께 하려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식이 다르다고 하여, 신앙적 강조점이 다르다고 하여 다른 이들을 몹쓸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편협한 마음이야말로 신앙의 적이고, 하나님 나라의 걸림돌입니다. 옹색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물이 작은 시냇물들을 모두 품고 흐르듯이 지향과 목표가 다르지 않다면 우리는 사소한 차이를 넘어 연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의 현실이지, 누가 그 일을 하느냐가 아닙니다.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기 테러로 많은 사상자가 났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윗을 통해 사상자 가족들에게 위로와 기도를 보낸다고 썼습니다. 그러자 친구들을 잃어버린 한 학생이 '우리는 그 빌어먹을 위로와 기도를 원치 않는다'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총기 규제이지 기도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질적으로 해야 할 일을 외면하며 드리는 기도는 거짓입니다. 주님은 생명을 풍부하게 하고, 불화의 땅에 평화의 씨를 심는 일에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사순절 순례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그런 부름에 응답하는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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