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낮에 속한 사람

2018년 3월 4일 청파감리교회 주일예배 설교자 김기석 목사

성경본문

살전5:1-11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 날이 여러분에게 도둑과 같이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 잠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자들도 밤에 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은,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고 있든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이,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십시오.]

* 종교와 폭력이 결합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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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

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리는 오늘,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사순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3.1절 99주년에 우리는 두 가지 대조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거행된 3.1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은 "3.1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과 평화에 기반한 번영의 새로운 출발선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가 처한 오늘의 상황이 위태롭기에 더욱 비장하게 들렸지만 감동적이었습니다. 같은 날 광화문 광장에서는 '3.1절 구국기도회 및 범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 말이 기도회이지 그것은 정치 집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태극기와 성조기, 심지어는 이스라엘 국기와 일장기까지 등장했습니다. 특정 세력을 향한 증오의 언어가 여과되지 않은 채 터져 나왔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짓 뉴스를 사실인양 전파하는 이들이 많았고, 심지어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이 땅에서 이렇게 오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너무 슬픕니다.

미국에서 열린 통일교회의 합동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저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AR-15 소총을 메고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머리에 총알 모양으로 만든 왕관을 쓰기도 했습니다. 해마다 총기 사고로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치는 나라에서 그들은 대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들은 무기가 진리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 낯선 광경은 그들의 주인이 바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들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폭력과 손쉽게 결탁하는 종교는 참일 수 없습니다. 그 사진을 보면서 여러 해 전 터키의 이스탄불에 갔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토카피 궁전 옆에는 '이레네(Irene) 성당'이 있습니다. 애초에 평화의 왕이신 주님께 봉헌된 예배당이지만 지금은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제가 그곳을 찾은 까닭은 그곳이 바로 주후 381년 세계 최초의 기독교 공의회가 열린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 공의회에서 결정된 것이 기독교 신앙의 요체를 정리한 니케아 신조입니다. 그런데 쇠락할 대로 쇠락한 바실리카 양식의 옛 예배당에서 본 그림 하나가 제 마음에 가장 큰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천장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반구형 돔에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곧 만유의 주님을 모셨습니다. 돔이 우주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프레스코화로 혹은 모자이크로 형상화된 판토크라토르는 주님이 곧 우주를 다스린다는 일종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판토크라토르를 뜯어내고 그 자리에 미사일을 비롯한 각종 현대식 무기를 그려놓았던 것입니다. 오래 전부터 이슬람 정복자들은 그 예배당을 무기고로 썼고 나중에는 군사박물관으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평화의 왕이신 주님을 모신 예배당의 가장 높은 자리에 무기를 그려놓은 것은 오직 무력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뜻을 나타낸 것 같아 섬뜩했습니다. 종교가 폭력에 다가서고, 슬그머니 그 손을 잡을 때 종교의 쇠락이 시작됩니다. 지금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때입니다.

* 그 날과 시기

오늘 본문에는 초대교회의 상황이 오롯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렸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아서 인자가 자기 왕권을 차지하고 오는 것을 볼 사람들도 있다"(마16:28) 하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신자들은 곤고한 시절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오신다 했던 주님은 오지 않고, 믿음 가운데 살던 이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재림에 대한 기대로 인해 헌신적인 삶을 살던 이들도 지치기 시작했고, 기대는 환멸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 줄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 주님 안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이 영광을 누릴 날이 온다고 그들에게 확언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때가 언제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불확실한 것처럼 견디기 어려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바심치는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 이단 종파들입니다. 그들은 종말이 임박했다고 말하며 사람들에게 헌신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특별한 계시를 받았다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들은 모호하지 않은 단정적인 말로 사람들을 호립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들의 비판적 사고를 포기한 채 그들에게 자기들의 자유를 맡깁니다. 즐겨 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삶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일 뿐입니다. 바울 사도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조해하는 사람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 때와 시기를 두고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겠습니다.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은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1)

바울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주님은 분명히 오신다. 2) 그러나 그 날을 특정(特定)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3) 그 날은 누구도 예상하지 않은 날에 갑자기 도래할 것이다. 사실 재림에 대한 이런 이해는 사도행전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라고 묻자, 부활하신 주님은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행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을 알아내기 위해 헛수고 하지 말고 오직 지금이라는 시간을 충실히 살라는 말씀입니다. 문제는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기에 방심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여러 해 전에 어느 유대인 랍비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공식적인 모임이 끝난 후에 사석에서 농담처럼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직업 가운데 가장 선호되는 직업은 회당 문 앞에서 메시아가 오는지를 살피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죽을 때까지 해고될 염려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말하며 그는 웃었습니다.

삶은 어쩌면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견디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확실함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이 취하는 삶의 방식은 제각기 다릅니다. 어떤 이들은 언젠가는 주님이 오시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며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마틴 하이데거는 모든 사람에게 죽음은 미지의 세계라고 말합니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보기는 하지만 자기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안일에 빠지는 겁니다. 바울은 그런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멸망이라며 이렇게 경고합니다. "사람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 때에, 아기를 밴 여인에게 해산의 진통이 오는 것과 같이,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3).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깨어 각성하지 않고 안일한 평안에 만족하는 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다"(마24:38). 먹고 마시는 일, 시집 장가가는 일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온통 거기에 쏟으며 살다보면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새겨야 할 것입니다.

* 낮의 자녀로 산다는 것

성도는 비록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세상에 산다고는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 하나님이 내게 기대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늘 여쭈어보며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빛 가운데서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우리 속에는 빛이 없습니다. 너무 비관적 생각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자신을 정직하게 성찰하는 이들은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사람은 은총의 빛 없이는 맑게 살 수 없습니다. 욕망이라는 중력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세상의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인력이 참으로 강력합니다. 새 봄이 되어 수 만 톤의 힘으로 대지를 밀어 올리는 새싹을 보면 생명의 장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여린 새싹이 흙을 밀어 올릴 수 있는 것은 따뜻한 햇볕과 밝은 햇빛 덕분입니다. 이처럼 위로부터 오는 힘을 덧입지 않고는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아주 단언을 하듯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5)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이미 그런 사람이라는 선언입니다. 조금 부담스럽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은총을 사모하고, 주님의 부력을 신뢰하는 이들은 이미 낮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미 그렇게 인쳐 주셨으니 부끄러움의 행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욕망에 이끌리는 삶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며, 정신을 차립시다."(6) 세 가지 연속되는 표현은 사실 한 가지 내용의 변주입니다. 어떤 것이 깨어 있는 것일까요? 옛날 공부할 때 잠들지 않으려고 먹었던 '타임'이라는 알약을 삼켜야 할까요? 그게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주님께서 피로써 값 주고 사신 존재이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초대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됩니다. 자연인으로서의 우리는 유약하지만, 하나님의 숨을 받은 우리는 무력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세상을 정화하고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꿈이 우리들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소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깨어 있는 존재라 말할 수 있습니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은 "잠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술에 취하는 자들도 밤에 취"한다고 말합니다(7). 종교는 사람들을 마취시키거나 취하게 만들면 안 됩니다. 자꾸 깨어나게 해야 합니다. 몽롱한 영혼의 잠에 빠진 이들을 깨워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거짓 종교는 사람들을 깨우지 않습니다. 영혼에 두려움을 자꾸 주입하여 옴짝달싹 못하도록 만들고, 하나님이 아닌 종교 권위자의 말에 복종하도록 만듭니다. 오늘의 한국 주류 개신교가 이런 것이 아닌가 심히 염려스럽습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교인들을 동원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차에 태워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자기들의 아바타 역할을 하게 합니다. 자기 영혼이 죽어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기가 잘 믿고 있는 줄로 압니다. 딱한 노릇입니다. 바울은 정신을 차리자며 이렇게 권고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슴막이 갑옷으로 입고, 구원의 소망을 투구로 씁시다."(8)

바울은 믿는 이들을 '전사'의 이미지로 그리고 있습니다. 글래디에이터들의 격투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던 시기였기 때문일 겁니다. 낮에 속한 사람들은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이라는 소망의 투구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 구원받은 자로 산다는 것

교회에 출입하면서도 믿음의 자리에 서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사랑의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땅의 현실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 하늘을 끌어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불화의 땅에 평화의 씨를 심고, 반생명의 문화가 번져가는 세상에 생명의 불꽃을 일으켜야 합니다. 가끔은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 내 한 몸 간수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세상을 책임지란 말입니까? 그런 절망감이 밀려올 때마다 이 말씀을 떠올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하심에 이르도록 정하여 놓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여 놓으셨습니다."(9)

잊지 마십시요.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몇 날 몇 시에 구원 받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래서 그 시간을 특정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마치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 취급받을 때도 있지만 우리는 분명히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주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구원받은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서로 격려하고, 서로 덕을 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이들을 존중하고 아끼면서, 함께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를 인격이 아니라 부품으로 취급하는 세상에 저항하고, 약한 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세상 풍조에 맞서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낮에 속한 삶입니다.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내일 모레면 경칩입니다. 봄빛을 받아 동면하던 것들이 깨어나는 이 때, 근심과 걱정 속에 갇혀 살던 우리 영혼도 깨어나 생명의 노래 멋지게 부를 수 있기를 빕니다. 아멘.

온라인이슈팀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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