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사흘 앞둔 지난 달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강남향린교회엔 용역이 들이닥쳤다. 관할인 서울동부지법이 교회 건물에 대해 강제 명도를 집행한 것이다. 통상 강제집행 전 법원이 계고장 등을 발부한다는 점에서 동부지법의 명도집행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강남향린교회는 재개발 조합이 "강남향린교회 성도들이 저항하기로 매우 유명한 사람들이므로 예고 없는 집행을 해달라"고 법원에 탄원한 사실을 확인했다. 강남향린교회는 이번 일의 배후로 롯데건설을 의심하고 있다. 강남향린교회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수년 전 롯데건설이 진행하던 재개발사업지에서 눈물로 호소하던 철거대상 이웃을 향린공동체가 도운 일에 대한 보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상황"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강남향린교회, 들꽃향린교회, 섬돌향린교회, 향린교회 등 향린공동체는 부활절인 1일 오후 동부지법 앞에서 "서울동부지법과 송파경찰서를 규탄하는 부활절연합 기도회와 행진"을 진행했다.
연합기도회 참가자들은 공동명의의 성명을 내고 "하느님 나라 건설 운동에 나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인 거룩한 금요일, 저희에게도 못이 박혔다"고 개탄했다. 이어 "지금 당장부터, 서민들을 내쫓고 자기들의 부를 쌓으려는 재개발조합을 앞세운 건설자본, 서울시의 강력한 행정협조를 무시하는 법원, 항상 쑥덕거리며 일을 꾸미는 경찰, 이들의 합작인 법과 제도, 관행을 깨는 데에 나서겠다"고 다짐했다. 말미엔 관할인 동부지법과 송파경찰서, 시공사인 롯데건설 등을 강하게 규탄했다.
아래는 연합기도회 참가자들이 낸 성명 전문이다.
회개합니다, 다시 십자가를 지고 나섭니다!
하느님 나라 건설 운동에 나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인 거룩한 금요일, 저희에게도 못이 박혔습니다.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재개발조합에서 동원한 용역들이 교회를 둘러싸고, 법원의 집행관들이 지휘하는 가운데, 교회의 성물들과 물품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차에 옮겨 떠나는 장면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억울하며 비통한 일이었습니다.
용산참사의 그 뜨거운 불길에 스러지는 이들을, 세월호가 차갑게 가라앉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보며 마음 졸이던 때에 차마 비할 바는 아니었습니다. 세월호에서 어린 학생들이 구조를 바라며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 영상을 접했을 때의 먹먹함과는 생각으로라도 비할 수는 아니었습니다. 땅과 집을 빼앗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웃들의 고통에는 말조차 꺼낼 바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졸이고, 먹먹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조합장과 조합원들이라고 동원된 사람들, 용역들의 불량한 눈짓과 태도, 험한 고성과 몸싸움을 일으키려는 행동들, 모르는 체 법을 외치는 집행관들, 행정관리들 앞에서, 자잘한 추억들이 사진처럼 지나갑니다. 새벽잠을 깨우며 일터로 나가 밤늦게까지 땀을 흘려, 모두가 작고 작은 마음을 모아 정성을 다해 마련한 터전이었습니다. 삐걱거리는 예배실의 장의자, 새로 마련한 성경책들, 오래된 복사기를 새로 교체하여 주보의 활자가 깨끗해져 보기 좋다는 교우들의 웃는 얼굴, 그런데 아무 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하고, 단지 십자가만 들고 나올 때 눈물이 나서 걸음을 걷기 어려웠다는 장로님의 말씀에 필름이 정지되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저들은 왜 그럴까? 도대체 우리에게 왜? 왜?
그동안 우리는 많은 사회악을 고발하며 정의를 세우기 위해 몸으로 싸워왔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돈, 돈, 돈만 따지는 악귀 같은 탐욕 자본들, 이들과 결탁하여 호의호식 제 배만 불리는 전현직 관리들, 자본과 관리와 함께 이익을 나누는 정치인들, 그들 공동의 이익만을 위해 떠들어 대는 앵무새 언론들, 그들에게 합법성이라는 미명을 제공하는 법조인들, 그들의 입맛에 맞게 머리를 굴리며 말을 뱉어내는 먹물들, 그들에게 축복을 비는 사이비 종교인들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전방위적으로 싸워 왔습니다.
사회악의 당사자들의 곳간은 넘쳐나고 있지만, 경제활동인구의 삼분의 이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해고를 당하고 죽음에 내몰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고단한 알바 노동, 불안에 떨고 있는 실직자와 퇴직자들의 삶, 자영업자들의 집단 파산, 중산층의 몰락과 가정 해체, 생태와 식량자주권을 도외시한 정책으로 인한 농촌의 해체와 농업의 몰락, 송파 세모녀 사건에서 보듯 하루하루를 고통스럽게 연명해가는 빈민층.
우리사회는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자살률 1위라는 절망적인 사회입니다.
인간의 삶을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주택, 교육, 의료, 교통, 통신 분야를, 자본의 이익을 위해 민영화라는 미명하에 공공성을 무너뜨리며 사유화의 길로 왔습니다.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권력과 돈만 아는 자들이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그들은 또한 우리사회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고, 인권을 유린했으며, 정의를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이런 불의한 시대에 맞서, 부정한 정권에 맞서 투쟁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를 쫓아내고 이명박을 감옥에 보냈습니다. 할 만큼 했다 아니 잘했다고 우쭐거렸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이없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바꾸고 정의를 세우는 것에 손톱만큼 일하고는 포도주에 취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지난 거룩한 금요일에 저희에게 못을 박으신 분은 하느님입니다. 십자가에 저희를 매단 분이 하느님입니다. 예수께서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그를 조롱하며 돌을 던지고 야유를 퍼붓고 창으로 찌르고 십자가에 못을 박던 이들을 대신하여, 저희에게 조합과 용역, 관리들을 보내어 예수의 마음을 만분의 일만큼이라도 느끼라고 강제하셨습니다.
아! 하느님 나라 건설 운동은 참으로 어렵고 지난한 일입니다. 저희는 저희의 십자가를 벗어 던져 놓았던 것입니다. 주님, 회개합니다. 진실로 회개합니다.
주권이 사람에게 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함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깨어서 기도하고 행동하라는 말씀을 지키지 않은 저희를 긍휼히 여기소서. 용서하시옵소서.
토지강제수용 피해자들의 고통스런 외침을, 피흘리며 스러져 가는 그들을 기억하겠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아니 저희가 곧 그들입니다. 우리입니다.
주님, 지금 당장부터, 서민들을 내쫓고 자기들의 부를 쌓으려는 재개발조합을 앞세운 건설자본, 서울시의 강력한 행정협조를 무시하는 법원, 항상 쑥덕거리며 일을 꾸미는 경찰, 이들의 합작인 법과 제도, 관행을 깨는 데에 나서겠습니다. 불의에 대한 저항은 우리 믿음의 핵심이요, 정의를 바로 세움은 우리의 소명임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나서겠습니다.
주님, 저희들이 다시 메는 십자가의 못을 더욱 단단히 박아주십시오. 나서겠습니다. 나아가겠습니다. 예수와 함께 죽임을 당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죽임 이후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저희와 함께 계신 것처럼, 저희도 예수의 삶을 살아 미래세대와 함께 영원히 살겠습니다.
우리의 외치는 기도
1. 서울동부지법은 강남향린교회에 대한 예고 없는 강제집행에 대해 공식 사과하라!
서울동부지법원장은 집행관실의 재개발조합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 즉각 감사에 착수하라!
1. 송파경찰서는 강남향린교회에 대한 예고 없는 강제집행의 원인제공에 대해 공식 사과하라!
송파경찰서장은 정보과와 재개발조합과의 유착 의혹에 대해 즉각 감사에 착수하라!
1. 재개발조합 뒤에 숨어 있는 악덕 건설자본 롯데건설은 즉각 문제를 해결하라!
1. 위 문제가 즉각 해결이 안 될 시, 우리는 더욱 강력한 투쟁을 할 것임을 선언한다!
2018년 4월 1일 부활절 연합기도회 참석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