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재조사에 검찰이 나선다고 KBS가 11일 단독 보도한 가운데 최악의 인권참사로 불리는 형제복지원의 과거가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1975년부터 1987년까지 수용자 수백명이 사망하고 폭행, 불법감금, 성폭력 등이 만연했던 형제복지원 시설을 운영한 박모 원장은 징역 2년 6월 형을 받았다. 당초 검찰은 박 원장에 대해 특수감금, 업무상횡령 등의 혐의를 적용했으나 대법원은 업무상 횡령, 외환관리법 위반 등만 유죄로 인정한 바 있다.
형제복지원은 부산 ㅅ교회 장로 출신 원장이 운영하던 시설로 알려져 있다. 삐뚤어진 종교인과 권력과의 잘못된 결탁이 빚어낸 결과물로서 최악의 인권 참사라는 점에서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형제복지원은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훈령 410호가 공포되면서 설립됐고, 이어 전두환 정권이 거리 '정화'를 명분으로 일반인들을 부랑아 취급하며 마구잡이로 수용했다. 형제복지원은 독재 권력의 그늘 아래 종교성을 강하게 띤 주체로부터 누구의 감시와 통제도 받지 않은 채 시설을 폭압적으로 운영했다.
군 하사관 출신이자 개신교회 장로였던 형제복지원 원장은 조직을 군대식으로 편성하고, 폭행, 강간, 강제노역 등 온갖 인권침해 행위를 자행했다. 형제복지원에서 벌어졌던 가혹행위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수준이어서 국내 공중파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자주 다뤄졌고, 얼마 전엔 미AP 통신이 탐사보도로 실태를 전하기도 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되었던 한모 씨는 수용 시설에서 생활할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120명의 소대원들은 새벽 4시에 기상해서 30분 동안 세면한 뒤 5시에 일조 점호를 받아야 했다. 그동안에 복지원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찬송가가 흘러 나왔다. 박인근 원장은 일조 점호 때 성경에 있는 내용을 물어봤는데 원장은 원생이 제대로 답을 못하면 두들겨 팼다. 소대원들도 단체로 기합을 받았다. 그래서 찬송가와 기도문, 성경 본문을 외워야 했다. 난 성경에 기록된 노아 가족의 족보도 기억한다. 박 원장이 이 내용을 묻기도 해서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하는 종교가 인간의 최소한의 권리, 존엄성을 무시한 채 인권을 탄압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 폭로된 것이다. 이들 시설들이 종교의 민낯을 드러내게 시작한 시발점은 다름아닌 잘못된 '권력'과의 결탁이었다.
한편 형제복지원 재조사는 비상상고 조치에 따라 이뤄지게 될 전망이다. 비상상고란 형사판결이 확정된 이후 그 사건의 심리가 법령에 위반된 것을 발견했을 때 대법원에 '다시 재판해달라'고 신청하는 비상구제 절차다. 이에 따라 형제복지원 재조사를 통해 1989년 형제복지원 원장 박모씨에 내려졌던 대법원의 판결이 뒤집히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