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6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해서 한중통역공부를 하고 있는 중국인 유학생입니다. 남들 보기에는 평범한 중국인 유학생이지만 저는 남다른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저는 중국 연변에서 태어나고 자라났습니다. 자칫하면 연변이 작고 보잘것없는 시골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텐데, 사실 연변은 아주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3국(중국, 북한, 러시아) 접경지대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북한과 러시아와의 경제 무역과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곳이 바로 연변입니다. 덕분에 저는 조금 더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저는 한족이신 아버지와 조선족이신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몸속에 두 개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전혀 다른 문화 속을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고 그들의 생각에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더 많이 고려해줄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중국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조선족, 한민족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때 한국어 전공을 선택한 것도, 한국에 유학을 오게 된 것도 모두 다 마음속의 그 애착과 어렸을 때의 평화를 위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2018년은 2년 넘게 한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해온 저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한 해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치러진 두 가지 큰 국제적 행사인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정상회담에 모두 다 참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때는 중국기업 '알리바바'의 통역사로, 2018 남북정상회담 때는 CCTV(China Central Television)의 통역사로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저에게 남긴 가장 깊은 인상은 바로 '평화'였습니다. 평화를 상징하는 평창동계올림픽이 있었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일 아침에 저는 먼저 CCTV 기자와 함께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 가서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남과 북을 육로로 이어주는 관문인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는 판문점과 5킬로미터 남짓 떨어져 있습니다.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직접 북한으로 건너갈 수 없는 것이 아쉽고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머릿속에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그림을 그려보고 심지어 어느 날 남북한이 통일을 실현해서 이곳이 박물관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니 아쉬운 감정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에서의 취재를 마치고 오후에는 킨텍스 메인 프레스센터로 향했습니다. 판문점에서 진행되는 정상회담 현장 장면이 생중계되고 모든 관련 브리핑이 진행되는 곳이 바로 프레스센터입니다. 41개국 460개 언론사에서 온 3천 명이 넘는 언론인들이 모인 프레스센터 현장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긴장하고 함께 박수를 치고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곳은 아마 이곳밖에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저도 같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통역을 하는 와중에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자기 나라 이슈가 아닌데도 사람들이 함께 감동하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건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평화를 그리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적도 친구가 될 수 있고 미움도 사랑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통역사의 신분으로 이처럼 의미가 있는 행사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한편 저는 한국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가슴 아픈 사실들을 발견했습니다. 중국인과 중국 조선족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정말 의외로 많았습니다. 중국인이라고 했을 때 눈이 휘둥그레지는 한국인, 어머니가 조선족이라고 했을 때 이맛살을 찌푸리는 한국인 ... 그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고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중국인, 특히 중국 조선족을 비하하는 한국영화나 드라마를 보았을 때도 서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남북통일을 원한다고 하지만 북한인을 대놓고 비웃는 한국인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까운 이웃인 중국인을 왜 사랑할 수 없는 걸까요? 같은 민족인 중국 조선족과 북한인을 왜 존중해 줄 수 없는 걸까요? 문화가 달라서? 국적이 다르다고? 가난해서? 무식해 보여서?
DMZ가 분단의 상징이라고 다들 그럽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분단이 마음의 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군사적인 적대행위보다 마음속으로 서로 미워하고 무시하고 비웃는 게 진정한 분단을 이어가는 행위가 아닌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그 누구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단점이 있다고 해서 꼭 미움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워하는 마음, 무시하는 마음, 다르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이제부터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한다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이 새롭게 펼쳐질 것이라 저는 굳게 믿습니다.
한중관계와 북중관계, 더 나아가서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 있어서 여태껏 다른 사람의 말과 의사를 전달하는 통역사의 역할에 충실해 왔다면 이제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 평화의 씨앗을 심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는 8월에 곧 졸업을 맞이하게 된 저는 고향 연변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중국이 한반도 평화, 아시아의 평화,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있어서 분명히 긍정적인 역할을 하리라 믿고 연변이 이런 평화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평화, 새로운 시작"은 이미 2018년 4월 27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저의 평화 이야기도 꿈의 날개를 달고 곧 새롭게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