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정지석 목사는 2011년 9월 철원으로 들어가 남북 평화통일 일꾼을 훈련하는 국경선평화학교 운동을 시작했다. 그 자신 학생으로 공부하면서 <남북한 평화학>, <평화학 입문>등을 강의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학위원,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 및 생명평화센터 소장, 심도학사 이사, 영문 신학저널 Madang 편집위원, 함석헌 기념사업회원으로도 활동한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있은 지 두 주일을 보내는 한반도의 남북 내국경(內國境)[나는 한반도의 남과 북을 갈라놓은 경계를 내국경으로 표현한다. 이는 남과 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되 다른 국가들과는 다른 의미의 국경, 즉 한 나라 공동체 안의 두 국가라는 특수한 관계임을 공동인식하자는 표현으로서, 이런 상호 존중의 바탕에서 우리는 평화 과정을 거쳐 통일로 갈 수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마을 철원은 한가롭다. 농부들의 모내기 트랙터들이 분주하게 다니고, 군인 트럭들도 눈에 많이 띈다. 분단 70여년 만에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는데, 일반 시민들의 일상생활은 변함없다. 남북한 최전방 마을의 분위기도 평온하다. 겉으로 보이는 마을은 예전과 별 다름없는 일상이다. 판문점 남북정상 회담에서 보여진 파격적인 모습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크게 출렁거렸을 것이지만, 실제로 직접 체감되는 변화는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한반도 땅 위에 전에 경험치 못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군사적 움직임의 감소
내가 살고 있는 철원은 최북단 마을이다. 지척에 북녘의 산과 들이 보인다. 남녘땅에서는 북쪽으로 맨 끝 마을이다. 봄이 오면 새싹은 나무의 맨 끝에서부터 터져 나온다. 변화는 끝에서부터 체감된다. 나는 남녘 끝 마을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일으킨 변화의 물결의 실체를 조금씩 체감하고 있다.
제일 먼저 느껴지는 변화는 군인 훈련 모습이 많이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매년 3월, 봄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면 철원 마을은 군인 훈련하는 소리로 분주하게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여 5월까지 간다. 탱크 행렬이 마을길을 요란하게 질주하고, 병사들을 실은 군용트럭들이 줄지어 지나가곤 했다. 병사들 행군 대열 또한 길게 지나가고, 아침저녁 가리지 않고 대포와 사격 훈련 소리가 마을을 뒤흔들었다. 이 때면 농번기도 시작하여 농민들 트랙터와 군용 트럭들이 나란히 도로를 달리는 모습이 이곳 국경 마을의 풍경이었다. 5월 이맘때까지는 그런 풍경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금년 봄에는 한층 줄어들었다. 탱크행렬이 보이지 않고 대포와 사격 훈련소리가 사라졌다. 군인들이 행군하고 길가 참호 속에 들어가 보초를 서는 훈련 모습은 보이지만 예년에 비하면 조용하고 평화롭다. 완전히 바뀐 것은 대북, 대남 선전방송 소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낮에도 들리지만, 사방이 조용해진 밤이면 들려오곤 했던 북측 대남 방송소리가 뚝 끊어졌다. 남측 대북 방송소리도 조용해졌다. 군사적 움직임의 감소, 이것이 남북정상회담 후 제일 먼저 체감되는 변화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
남북정상회담 이후 이곳 끝 마을에서 또 하나 실감하는 변화는 부동산 가격이다. 지금 철원 마을 부동산에 매물로 나왔던 땅은 다 들어갔다. 땅값이 더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이웃집 할머니도 부동산에 내놨던 땅을 거둬들였다고 한다. 땅을 보러 오는 타지 사람들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내게도 그 동안 철원 살면서 땅 사 놓은 거 없느냐는 친구들의 뜬금없는 전화가 걸려오곤 한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땅값은 계속 오를 것이다. 지난 2000년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이 있은 후 철원 땅 값은 열 배 뛰어 올랐다 한다. 경제적 상승 기대, 이것이 지금 이곳 국경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다. 남측 북측 모두 이번 평화회담을 통해 경제의 공동번영을 추구한다. 남북평화는 경제번영이고, 경제번영이 남북 평화란 공식이 형성되고 있다. 그런데 이곳 국경마을에서 땅값이 뛰는 것을 보면서 평화=경제번영의 공식이 마냥 환영할만한 일인가, 다시 생각해 볼 점은 없는지, 무언가 더 필요한 아쉬움을 느낀다. 그 무언가를 담당할 곳은 교회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예수의 체험적 진리를 따르는 교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농민들의 환호
마을 농민들이 느끼는 변화는 매우 큰 기대로 표현되고 있다. 마을 곳곳에는 철원농민회가 붙여 놓은 '남북정상회담 성공 축하,' '우리는 하나다' 등의 현수막들이 있다. 흔히들 농민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특히 북과 내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전방 마을 농민들은 이념적으로 보수적이고 북측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여기 철원 마을 농민들은 그렇지 않다. 농민들은 남과 북이 하루속히 서로 자유로이 교류하고 오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농심(農心)이 평화(平和)이다. 매년 가을 추수기가 오면 마을에는 농민회 이름으로 '북녘 동포들에게 쌀을 보내고 싶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린다. 남녘에는 쌀이 남아돌아 쌓아 놓을 곳이 없는데 바로 건너 마을 지척에 사는 북녘 동포들은 배고픔으로 고생한다고 하니 추수한 쌀을 보내주고 싶은 것이다. 인도주의적 동포애가 마음 깊이 작동하는 것이지만, 농민들은 북녘에서 흘러내려 온 물로 농사를 지었으니 물값을 돌려줘야 마땅하다는 주장을 한다. 철원 농협은 쌀농사가 풍년일수록 한숨이 깊어진다. 마을 농민들의 쌀을 좋은 가격에 수매해 줘야 하는데 재고 쌀이 창고마다 가득 쌓여 있어 더 이상 쌓아놓을 창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형편이니 쌀 수매가도 좋을 수가 없고 농민들은 풍년이 들어도 기쁘지 않다. 북녘은 쌀이 없어 수많은 사람들이 배고픔으로 고통 받고 남녘은 쌀이 창고에 넘쳐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이니,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하루빨리 해결하는 길은 남북 평화관계 회복뿐이란 것을 철원농민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철원 농민들이 이번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잘되는 것을 보고 열렬히 환영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접경지역에서 평화지역으로
또 한 곳,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곳은 강원도 지방정부이다. 강원도청은 이번 판문점 남북정상 회담이 성사된 시발점이 평창동계올림픽이란 점에 큰 자부심을 갖고, 남북정상 판문점 선언의 정신에 발맞추어 철원에서 화천, 양구, 인제, 고성의 비무장지대(DMZ) 민통선 지역 마을을 기존에 불리던 '접경지역' 대신 '평화지역'으로 선포했다. 남북한 군사적 대치 지역을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일어나는 평화지역으로 변화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특히 강원도청은 남북 철도 동해선 연결 작업, 금강산과 설악산을 잇는 남북 관광단지사업, 남북경제협력 사업으로 철원평화산업단지 조성 같은 남북평화협력 정책을 세우고, 이를 추진할 부서로서 평화지역국을 신설하고 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속초~원산을 잇는 크루즈 뱃길과 양양~삼지연을 잇는 하늘 길을 곧 열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동안 남북분단으로 강원도가 남북 강원도로 분단된 채 남녘 북녘 땅에서 가장 가난하고 낙후된 강원도로 살았는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으로 강원도가 관광지로서, 북방 신경제를 잇는 연결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번영하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선거에도 변화의 바람은 느껴진다. 남북접경지역 마을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적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현재 철원 군수도 자유한국당 소속인데, 이번 선거에서는 민주당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분위기이다. 철원이 잘 살려면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야 하는데, 현재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여론이 작용하는 까닭이다. 그리고 마을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도 남북이 평화관계를 회복해야 철원 마을이 잘 살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하다. 이번 군수 선거에서는 이전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을 한다. 마을 주민들이 군수 후보자들을 불러 공개 정책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와 같은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 태도는 남북정상회담이 가져 온 변화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평화대학 설립 운동
남북이 평화와 화해 분위기로 잘 가면 잘 살게 되리라는 기대감은 대다수 마을 주민들이 갖고 있다. 지난 분단 70여년 동안 강원도 내국경 마을은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사회, 문화, 교육면에서도 소외된 지역이었다. 철원은 90% 이상이 전시 작전 지역에 들어가 있어서 발전이 제한되었다. 예컨대 일정 높이의 건물건축과 개발의 인허가권은 관할 지역 사단장에게 있다. 군사적 불안 상존지역이니 기업인이 투자하지 않고 회사나 일터가 없으니 인구는 감소되어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모두 도시로 떠난다. 젊은 사람은 대부분 군인들이다.
마을 사람들의 소원은 대학교를 갖는 것인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철원은 평화마을 발전 정책의 하나로 UN평화대학 혹은 세계평화대학 설립 운동을 추진했는데 번번이 실패했다 한다. 그런 까닭에 요즘 주민들로부터 국경선평화학교를 제도권 평화대학교로 만들자는 요청을 받곤 한다. 버젓한 대학이 하나 있으면 마을 자녀들도 고향 땅에 남을 수 있고, 또 밖에서 젊은 청년들이 들어와 마을에 활기를 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거의 모두 외지 도시로 떠나니 그런 소망이 간절한 것이다. 평화지역에 평화대학을 모색해 볼만한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21세기형 평화회담의 출현?
남북정상회담은 모든 장면이 파격적이었다. 그 파격성은 정신적 충격을 동반했는데 지난 분단 70여년 동안 고착되었던 북측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지도자에 대한 편견과 불신을 크게 뒤흔들어 놓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방송, 신문 등 모든 언론들이 이 파격적인 평화회담 장면을 대서특필하여 보도했다. 나는 이번 남북정상 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미 중 하나를 전 시민적 평화교육이라 본다. 하루의 짧은 시간에 이보다 더 강렬하고 효과 있게, 집중적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집중하여 전개된 평화교육이 어디 있는가?
두 지도자가 처음 만나자마자 손을 잡고 북으로 남으로 자유로이 넘나드는 모습에서부터, 베일에 가려있던 김정은의 진지하고도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보면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남북녘 시민평화교육은 성공이었다. 지도자들이 평화롭게 어울리면 시민들도 따라 평화롭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평화회담의 새 모델이다. 이제 앞으로 전 세계 지도자들의 평화회담은 판문점 평화회담을 따를 것이다. 대화 테이블에 마주앉아 하는 전형적인 평화회담 형식에다가 많은 새 스타일이 등장했다. 오전 회담하고, 헤어져 휴식하다가 다시 만나 산책하고 평화의 약속 나무를 심고, 다시 앉아 이야기하고, 저녁 만찬을 한다. 산책하다가 단 둘이 벤치에 앉아 두 정상들만의 '도보다리 회담'은 국제 평화회담의 모델로 자리잡을 것 같다.
저녁만찬도 평화회담을 뱃속 깊이 자리잡게 한 것이다. 양 정상의 아내들이 합류하고 함께 어울리는 모습의 저녁 만찬은 마치 신랑신부 양가 결혼식 피로연 잔치자리처럼 깊은 결속을 온 세상에 보여줬다. 평양 요리사들이 직접 평양냉면을 만들어 나오고 서로 돌아가며 술을 권하며 어울렸다. 서로 손을 잡고, 남녘 국방부장관과 북녘 건설부장(장관)은 형님 동생하며 친해졌다. 이제 앞으로 먹거리는 평화회담의 중요한 구성 내용이 될 것이다.
백년 평화 계획
우리도 기쁨 속에 놀랐지만, TV 생중계로 지켜본 전 세계 사람들 역시 깜짝 놀라고 눈이 커졌을 것이다. 남북은 전쟁을 하고 70여년 휴전상태에서 원수처럼 살아온 것으로 알고 있을 터인데, 판문점에서 어울리는 모습이 재회의 잔치자리요 가족들 모임 같으니 어찌 놀라지 않았겠는가? 북아일랜드에서, 미국과 캐나다에서, 일본에서, 캄보디아에서 평화의 친구들이 감격의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다.
소이산을 오른다. 5월 소이산은 푸르고 바람은 쾌청하다.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남북녘 들판과 비무장지대에는 봄의 생기로 가득하다. 산기슭에는 웃통을 벗어젖힌 청년 병사들이 땀을 흘리며 참호를 파고 있다. 아마도 전후 분단 세월 65년을 반복해 온 일일 것이다. 새 시대의 변화는 몰려오는데, 아직 우리 삶의 현장은 옛날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새 시대에 걸맞는 평화운동을 준비해야 한다. 식민지 36년, 분단 70년, 그러니 백년 평화계획을 세우고 갈 결심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