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아빠 아버지

장윤재 목사(이화대학교회)

- 로마서 8:1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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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어버이날에 한국인이 부르는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는 박재훈 작곡의 '어머님 노래'일 것입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키우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아." 높을 숭(崇), 높을 고(高), '숭고'한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넓은 게 또 하나 있지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아." 그런데 이 노래가 원래 3절까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3절이 '종교'와 관련이 있다면서 빼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산이라도 바다라도 따를 수 없는 어머님의 큰 사랑 거룩한 사랑 날마다 주님 앞에 감사드리자 사랑의 어머님을 주신 은혜를."

이 노래를 작곡한 박재훈 목사님은 우리가 흥얼거리기만 해도 다 아는 유명한 동요 작곡가입니다.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병아리떼 쫑쫑쫑 놀고 간 뒤에 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산골짝의 다람쥐 아기 다람쥐 도토리 점심가지고 소풍을 간다. 다람쥐야 다람쥐야 재주나 한번 넘으렴...," "송이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하지만 동요만이 아닙니다. 박재훈 목사님은 우리가 아는 주옥같은 찬송가도 많이 지었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 보라"(256장), "어서 돌아오오"(317장), "산마다 불이 탄다"(311장), 그리고 "지금까지 지내온 것"(460장)가 다 그가 지은 찬송가입니다. 바로 이 찬송가의 작곡가가 '어머님 노래'에서 정작 하고자 했던 말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높고 높은 하늘과 같은 어머님의 은혜, 넓고 넓은 바다와 같은 어머님의 은혜, 그런데 바로 그 사랑의 어머니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지은 노래가 바로 박재훈의 '어머님 노래'입니다. 앞으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매년 어버이날이면 이 노래를 꼭 3절까지 다 부르시면 좋겠습니다.

사도신경에 의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배시간에 이 고백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도신경의 이 첫 구절에서 우리가 오늘 주목해야 할 것은 천지를 지으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고백입니다. 보통 모든 종교에서 신은 세상을 창조하고 통치하는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사도들은 하나님이 그런 전능한 통치자이기 이전에 우리의 친근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양육하며 친히 돌보는 부모와 같은 존재입니다. '궁극적인 존재'(ultimate being)이기 이전에 '친밀한 존재'(intimate being)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같이 땅에 떨어지며 간절히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 14:36). 한국어에서 '아버지'는 자신에게 혈통을 직접 이어 준 남자를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빠'는 어린 아이의 말로 아버지를 정답게 이르는 말입니다. 한국어나 예수님의 모국어인 아람어에서 '아빠'가 같은 뜻의 같은 발음이라는 게 참 놀랐습니다. 우리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바로 이렇게 정답고 친밀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아빠 아버지'가 우리의 '아빠 아버지'가 되며 우리는 그의 사랑 받는 자녀가 된다는 것을 강조한 이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롬 8:14-15, 공동번역)

갈라디아에 있는 교회에 보낸 서신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자녀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각 사람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이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갈 4:6-7, 새번역)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세상의 많은 종교 가운데 하늘 높이 계신 위대한 신을 '아빠'라 부르고 우리가 그의 사랑받는 자녀라고 말하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남성' 하나님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약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면 - 그리고 여성이라 할지라도 - 그 분은 신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는 그의 성(性, sex)이 남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시는 일(work)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사랑으로 돌보는 아버지와 '같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리의 권효가(勸孝歌)에 "아버지 나를 나으시고"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과거 가부장 사회에서 자녀를 낳고 기르는 부모의 역할은 '아버지'로 대표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하나님에 대한 직유(直喩, simile)가 아니라 은유(隱喩, metaphor)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종교적 언어를 은유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아버지'를 문자적으로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남성처럼 생각하게 되고 그 결과 성차별적 가부장주의를 교회 안에 용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유명한 여성철학자인 메리 데일리(Mary Daly)는 이렇게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하늘에 있는 신이 [남성] 아버지라면, 땅에 있는 [남성] 아버지가 신이 된다 [신처럼 군림한다]."

성서 안에는 하나님을 여성적인 은유로 묘사하는 부분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구약성서 이사야서 42장은 '주의 종의 노래'로 알려진 유명한 장입니다. "나의 종을 보아라... 그는 내가 마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이다... 그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며,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는 유명한 말로 시작하는 장입니다. 바로 이 이사야 42장에서 하나님은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구원의 약속을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히 침묵을 지키며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숨이 차서 헐떡이는, 해산하는 여인과 같이 부르짖겠다... 눈 먼 나의 백성을 내가 인도할 것인데... 내가 그들 앞에 서서, 암흑을 광명으로 바꾸고, 거친 곳을 평탄하게 만들겠다"(사 42:14, 16). 하나님은 여기서 자신을 '숨이 차서 헐떡이며 해산하는 여인'으로 비유하고 계십니다.

같은 이사야서 49장에 가면 하나님은 자신을 젖먹이는 어머니로 비유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시고 잊으신 것이 아니냐고 한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사 49:15). 여기서 하나님은 '자기 태에서 나온 젖먹이 자식을 긍휼히 여기는 어머니'로 자신을 비유하고 계십니다.

신약성서에 가면 예수님은 자신을 '병아리를 품는 암탉'에 비유하시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23장과 누가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로마의 침공으로 멸망할 예루살렘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이렇게 비통한 심정으로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네게 보낸 예언자들을 죽이고,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에 품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아 품으려 하였더냐!"(마 23:37, 눅 13:34) 이렇듯 성서 안에서 하나님은 여성과 어머니의 이미지로 자신의 사랑과 긍휼과 구원의 약속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한 아파트에 불이 났습니다. 어머니와 아들 둘이 집 안에 있었는데 계단으로 대피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화염과 연기에 쫓겨 세 모자는 화분 받침대까지 밀려 아슬아슬하게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옛날에 지은 아파트였기 때문에 화분 받침대는 너무 좁고 위태했습니다. 그 위에 아들 둘을 세우고 어머니는 그 아래 매달렸습니다. 소방대가 출동하고 아파트 옥상 위에서 구조용 줄이 내려 왔습니다. 큰 아들이 줄을 잡고 작은 아들도 줄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줄을 잡고 올라갔습니다. 곧 모두가 무사히 구조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아차 하는 순간 어머니가 땅으로 추락하는 것이었습니다. 줄을 끌던 소방대원이 위에서 보니 어머니는 일부러 줄을 놓아버린 것이 분명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맨 뒤에 달려 올라가던 어머니는 한 명의 소방수 얼굴만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뒤에 건장한 소방수 여러 명이 함께 줄을 끌어올리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이 부친 소방수가 줄을 놓으며 모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두 아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줄을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5층 높이에서 땅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어머니가 화단의 나무에 튕기더니 약간의 찰과상 외에는 어디 하나 다친 곳 없이 멀쩡한 것이었습니다.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놓아 버린 생명줄, 거기에 그만 하늘도 당황하고 감동하여 그 어머니를 살리고 말았다"고 당시 사회면 기사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그 숭고한 희생정신과 사랑 앞에 사람들을 모두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경애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이 어머니의 사랑과 같다고 믿습니다. 모든 생명을 아파하며 사랑했기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스스로 생명줄을 놓아버린 그 어머니의 사랑과 같지 않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호세아서에는 이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남에게 내어주겠느냐.... 네가 너무 불쌍해서 간장이 녹는구나"(호 11:8).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평생 가난과 설움 속에서도 저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제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은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 생명줄을 놓아버린 그 어머니의 마음과도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깨달았습니다.

이제 상담극 "내가 니편이 되줄게"를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시며, 언제나 우리를 존재 자체로 믿어주시고, 항상 우리 편이 되어주시는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조건적인 사랑과 위로의 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018.5.13.)

이인기 ihnklee@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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