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7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하여 발표한 "판문점 선언"을 환영하고 지지하고 뒷받침하는 "판문점선언지지 결의안"을 대한민국 국회가 통과시키는데 "난항"이 예상된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실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국 어제 5월 28일 국회 전반기 마지막 본회의에는 상정도 못되고 좌절됐다는 보도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참담한 심정이다. 아무리 여소야대의 국회라고 하지만, 그리고 아무리 정당마다 이해관계가 있고, 야당들이 여당과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 사사건건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민족의 최대 과제인 분단 극복과 평화 정착 그리고 통일을 향한 남과 북의 정상들이 합의한 "평화 선언"에 대해서 딴지를 부리며 반대하고 나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판문점 선언"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1953년 7월의 휴전협정을 그대로 두고,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라고는 하지만 세계 어디보다 무섭게 무장하여 대결하고 있는 휴전선의 철조망을 더 높이 쌓고 총을 겨누고 있어야겠다는 말인가? 북한 정부가 자기 방위를 위하여 핵무기를 실험하고 탄도미사일을 개발해 온 것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서는 것이 못 마땅한가? 4.27 남북 정상의 공동성명을 반대한다는 것은 바로 북한의 비핵화를 반대한다는 말로 들린다. 이대로 남북이 대결하고 서로 미워해야 하고 아무 때고 한반도가 핵전쟁의 도가니 속에서 완전 파멸되기를 원하는가? 나아가서 북한의 동포들, 피를 나누고 한 가지 말로 통하고,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는 한 민족인 우리의 형제자매들이 춥고 배고프고 가난에 허덕이는 것을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한단 말인가? 나의 혈육이 나 만큼이라도 하루 세끼 밥걱정 안 하고 살게 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서로 원수가 되어 싸우고 헤어지고 철조망과 무기로 담을 쌓고 살아 온 70년의 아프고 고달프고 불안한 세월을 청산하자는데, 왜 선뜻 나서서 환영하며 찬성표를 던지지 못하는가 말이다.
기독교의 성경은 평화를 갈망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경전이다. 성경은 기독교가 믿는 야훼 하나님을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인 동시에 평화의 하나님으로 믿고 인간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구현되기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평화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인간이 참여하고 협조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믿는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평화의 종교이다. 그래서 구약성경의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하나님이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사야 2:4).
선지자 이사야의 비전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려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이사야 11:6-8). 하나님의 평화는 인간과 인간, 전쟁하던 원수들 사이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로 생태 전반적인 평화, 자연과 인간 사이의 화해와 평화를 말하는 것이다.
판문점의 "평화 공영 공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은 남북 분단의 고통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인가? 선지자 이사야의 비전,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일에 왜 반대하는가? 핵무기를 만들고 핵전쟁을 획책하는 일, 최신형 폭격기와 전투기를 생산하는 일 등을 비롯한 모든 군사 행동을 중단하고, 무기생산과 방산산업과 무기 장사를 폐기하며, 생명을 말살하는 과학기술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과학기술로 전환해야 하지 않는가? 아직도 무기로 돈을 벌어야 하고, 그래야 정치를 할 수 있고, 그 돈으로 정치자금을 만들고, 그 정치자금으로 전쟁을 정당화해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묻고 싶다.
보수 진영을 고수한다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판문점 합의"에 찬동하고 지지하는 것을 북한에 대한 "항복"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은 결코 약자가 하는 말이 아니다. 평화를 말하는 것은 항복이 아니라, 승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상대방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평화가 아니듯,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는 것도 평화가 아니다. 제2차 대전에서 일본이 미국에게 항복했지만, 결코 일본에 그리고 아시아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 미국이 일본을 굴복시켰다고 하지만, 미국이 일본과 일본이 식민지로 지배한 동북아시아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남과 북이 평화를 호소하고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고 합의하는 것은 한편이 다른 한편을 지배하기 위해서거나 굴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서로 함께 도우면서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끼리만 평화롭게 잘 살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이 1919년 3월1일 독립 만세 운동을 펴면서 외친 것이 자주 독립과 평화, 동북아시아의 평화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은 3.1 정신을 이어 받은 것이다.
"판문점 선언"을 반대하고 국회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3.1 정신을 위반하고 배반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반민족 행위이며, 반평화 행위이고, 대다수 한민족의 염원과 희망과 신뢰를 배신하는 행위이다.
이번에 지지 결의안에 반대한 국회위원들은 국민들의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결국, 다음 총선에 출마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멀지 않은 미래에 남과 북의 국회가 함께 모여서 분단을 극복하고 상호 적대행위를 중지하고 평화협정을 남북 의회가 합동하여 인준하게 되고, 통일 한국을 선포하는 날, 오늘 "판문점 선언" 지지를 반대한 국회의원들과 그들의 자손들은 "민족 반역자"로, "매국노"로, "전쟁광"으로 역사에 기록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내일이라도 다시 국회 본회의를 긴급 개회하고, 만장일치로 열렬한 박수로 "판문점 선언"을 지지하고 국민의 뜻을 받들어 찬동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를 간곡히 촉구한다.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을 눈물로 낭독하고 총회 대표들이 기립 박수로 만장일치 통과시킨 역사를 기억한다. 이 선언의 골자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남과 북의 그리스도교회가 찬동했고, 남과 북의 정치지도자들, 특히 김일성 주석이 방북한 문익환 목사에게 "88선언"에 대한 적극적인 찬동의 뜻을 표명했다는 역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