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현장] 깊어가는 조계종 내홍, 해법은 없는가?

설조 스님 단식 장기화....'종단 내부문제' 입장 굽히지 않는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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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조계사 옆 우정공원 옆에 마련된 설조 스님 단식 농성장. 농성장 주변엔 조계종 개혁을 촉구하는 구호가 적힌 팻말이 놓여 있다.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PD수첩'이 조계종 설정 총무원장 등 종단 유력 스님들의 비리를 고발하면서 불거진 조계종단의 내홍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PD수첩'은 각각 지난 5월 1일과 29일 '큰 스님께 묻습니다' 2부작을 통해 설정 총무원장의 은처자 및 교육원장 현응 스님 성폭력 의혹, 그리고 경주 불국사에서 벌어진 도박 의혹 등을 집중 보도한 바 있었다.

조계종은 발빠르게 움직이는 듯 했다. 첫 번째 보도 직후인 5월 8일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범종단 차원에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한 점 의혹 없이 소상히 소명하시기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조계종 종단 감찰기구인 호법부 역시 9일 담화문을 내고 "제기된 의혹 문제의 신속한 규명과 더불어 그 결과에 대해서는‘교권자주수호위원회'를 통해 최대한 신속하고 투명하게 의혹을 규명해 나갈 것"이란 입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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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조계종 측은 MBC PD수첩 보도에 거칠게 반응하고 있다. 이에 조계사 일주문에 '불교파괴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거는 한편, 전국 사찰에 현수막을 배포하고 있다.

그러나 조계종 지도부는 PD수첩 보도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설정 스님은 'PD수첩' 보도를 '법난'으로 규정했다. 설정 스님의 말은 이랬다.

"MBC의 반성과 사과가 없다면 우리는 이러한 그들의 행위를 불교를 파괴시키려는 법난으로 규정하고 전 불교도의 결집된 교권수호의 힘을 모아 강력하게 대응할 것을 천명합니다."

이뿐만 아니다. 종단은 조계사 일주문에 "공영방송 망각 MBC는 불교파괴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러자 일선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자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해인사 출신 현산 스님과 허정 스님, 그리고 도정 스님이 5월 28일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종단의 참회를 촉구하는 참회정진에 나섰다. 이 소식을 접한 설조 스님은 지난 6월 20일 조계사 바로 옆 우정공원에서 단식에 들어갔다.

설조 스님의 단식은 18일로 29일째를 맞았다. 설조 스님이 고령(88세)인데다 올 여름 유난히 무더운 날씨로 인해 단식 장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자는 17일 오전 이곳을 찾았는데, 오전임에도 날씨는 무더웠다. 설조 스님은 오전 한 때 피로를 호소하며 몸져 눕기도 했다. 설조 스님 단식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A씨는 "젊은이들이 단식을 푸시라고 권해도 스님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 적어도 내가 볼 땐 죽음까지 각오하신 것 같다"고 했다.

조계종, 벼랑 끝 싸움 벌이나?

그럼에도 조계종 지도부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종단 신문을 내세워 설조 스님의 단식을 폄하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조계종 종단 신문인 <불교신문>은 단식 중인 설조 스님이 대중목욕탕에 간 일을 문제 삼았다. 참고로 <불교신문> 발행인은 설정 총무원장이다. <불교신문>은 7월 14일자 보도에서 이렇게 적었다.

"현재 서울 종로구 우정공원에서 종단개혁 등을 주장하며 24일간 단식을 하고 있는 전 불국사 주지 설조 스님이 대중목욕탕에서 반신욕 등 목욕한 것을 본지가 목격했다. ‘88세' 고령의 나이에 단식 상태에서 한 반신욕 등 목욕이 건강에 무리가 없는지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불교신문>은 16일자 사설을 통해 설조 스님의 단식 중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주문했다. 아래는 <불교신문> 사설 중 일부다.

"조계사 앞 우정국로 주변이 소란스럽다. 몇몇 스님과 신도들이 종단과 스님들을 향해 비난을 가하고 심지어 총무원장 스님 사퇴 까지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종단의 원로인 설조 스님이 단식에 들어가고 이 사실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면서 종단을 걱정하는 신도들이 많다. 설조스님은 하루 바삐 단식을 풀 것을 요청한다. (중략)

MBC PD 수첩이 방영한 내용은 아직은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보도에 나온 당사자들은 사실을 부정한다. 진위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종단에서도 위원회를 꾸려 활동 중이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과거처럼 진상규명도 하지 않고 무작정 버티는 것이 아니라 종단의 여러 기관이 나서 조사를 시작했으니 믿고 기다리는 것이 옳다."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공동대변인인 도정 스님은 "<불교신문>은 신문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설조 스님을 흠집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게 도정 스님의 주장이다.

"<불교신문>은 조계종 기관지나 마찬가지다. 이 신문 기자가 대중목욕탕까지 따라와 기사를 쓴 건 다른 의도가 있다고 밖엔 볼 수 없다. 마침 현장엔 조계종 호법부 직원도 있었다. 물론 기자는 보도할 권리가, 신도들은 알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의도를 갖고 취재하는 건 안될 말이다. 신도들이 시주한 돈으로 운영하는 신문이 이래선 안 된다."

도정 스님은 이어 조계종 지도부의 도덕적 해이와 원로들의 안이함에 대해서도 강하게 질타했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당사자들은 의혹제기 만으로도 사과하고, 시정에 나선다. 그러나 (조계종 지도부는) 사실을 왜곡하고, PD수첩 보도를 폄하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종단을 개혁할 수 있을까? 현재 종정 스님은 아무런 힘이 없는 상태다. 이 와중에 설정 총무원장은 버티기로 일관 중이다. 지금 입법부의 구실을 하는 중앙종회가 총무원장 견제 기능을 사실상 상실했다고 본다. 그러면 원로들이 나서서 중앙종회에 책임을 물어 종회를 해산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한다. 그리고 비대위에서 관련 규정을 개정해 신도들이 원하는 총무원장을 선출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게 수순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원로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러다 천 칠백년 역사를 지닌 불교가 국민들에게 버림 받는건 아닐까 염려한다."

원로 스님의 외침, "속히 내려오라"

이 같은 목소리에도 조계종 종단은 '내부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다. 조계종은 17일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 중 일부를 아래 인용한다.

"불교공동체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정한 규율에 따라 해결해야 함이 원칙입니다. 종단 운영의 기본 토대가 되는 우리 종단 고유의 질서인 종헌종법의 권위를 존중하고, 이를 근간으로 하는 불교적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단 혼란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종단 내부의 문제에 대하여 불교적 방식에 의한 문제해결은 외면한 채 정부권력을 개입시켜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위까지도 자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종단은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1027법난으로 인하여 종단의 명예와 스님들의 인권이 짓밟힌 가슴 아픈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종헌종법의 권위를 존중하고, 이를 근간으로 하는 불교적 방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한 지점에 주목해 보자. 풀이하면 '불교의 원칙대로 풀어가자'는 뜻이다. 그러나 조계종이 취한 조치들은 다소 괴리감이 느껴진다. 조계종은 지난 6월 MBC PD수첩 제작진을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또 '불교 파괴를 즉각 중단하라'는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전국사찰에 배포하기도 했다. 이런 조치들은 조계종 종단이 스스로 신뢰에 흠집이 가는 행동을 취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 같은 조계종의 대응에 대해 도정 스님은 "종단 내 기득권들이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하다보니 도덕 불감증에 빠진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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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설조 스님이 단식에 나서자 시민들 역시 나서서 조계종 종단 개혁을 촉구하는 양상이다.

농성장에서 만난 시민들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시민 B씨는 "아마 조계종 지도부가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설조 스님 단식 농성장에서 동조 농성 중인 국립공원지키는시민의모임 김병관 대장은 조계종이 자승 총무원장 이후 타락했다고 꼬집었다. 김 대장의 말이다.

"지금 불교계 원로라고 해봐야 설조 스님 말고는 눈에 띠지 않는다. 원로들이 나서서 개혁에 힘을 실어줘야 함에도 말이다. 양심 있는 스님들이 나서야 하는데 침묵하는 것 같아 아쉽다. 불교가 타락해서라고 진단한다. 물론 이전에도 불교가 기복신앙의 성격이 강하기는 했다. 그런데 유독 자승 총무원장 이후 조계종이 타락일로를 걸은 것 같다. 그래서 설정 총무원장이 물러난다고 해도 '그 나물에 그 밥'이 될까 우려스럽다. 그래서 작은 실천이라도 하고자 이곳에 있다."

* 김병관 대장은 지난 2011년 국립공원 케이블카에 반대해 500일 동안 산상시위를 벌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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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조계종 개혁을 촉구하며 단식에 나선 설조 스님. 설조 스님의 단식은 18일로 29일째를 맞는다.

설조 스님은 28일에 걸친 단식에도 총기를 잃지 않은 모습이다. 건강상 이유로 설조 스님과의 인터뷰는 간략히 마칠 수 밖엔 없었다. 설조 스님은 단호한 어조로 침묵하는 대중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내가 단식에 나선 건 불교 파괴를 일삼고 있는 종단 고위 책임자들의 변화를 기대해서가 아니다. 그보다 많은 대중들이 침묵하고 있는데, 이 침묵하는 대중들의 각성을 위한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설정 스님이 있을 자리가 아니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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