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회찬 의원, 당신은 다윗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고 노회찬 원내대표에게 바치는 추도사 - 부산 좁은길교회 박철 목사

justice
(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정의당 충남도당은 26일 오후 9시까지 천안시 두정동 정의당사에 고 노회찬 원내대표 분향소를 운영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에서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추모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고 노 원내대표의 고향인 부산에서도 추모객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26일 오후엔 부산시민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이 추모제에서 좁은길교회 박철 목사(부산예수살기 대표)가 추도사를 낭독했다. 박 목사는 추도사를 통해 "노동운동과 현실정치라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뜨겁게 사랑하다가 스스로의 원칙을 침해한 사건을 용서치 못해 그토록 사랑하던 세상과 결별했다"며 고인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아래는 박 목사 추도사 전문이다. 편집자 주]

[추도사] 고 노회찬 의원, 영전 앞에 이 글을 바칩니다.

이 무더운 삼복염천에 노회찬 의원, 당신을 추모하는 이 자리에서 추도사를 하게 될 줄 미처 몰랐습니다. 참으로 분하고 절통합니다. 나는 그대와 사적인 인연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0년 전 고 김동완 목사(KNCC 전 총무) 장례식장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서로 마주 않아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후 나는 인간 노회찬에 대해서, 그리고 정치인 노회찬에 대해서 주목해 보았습니다.

모름지기 정치란 사람을 바르게 하고 편하게 하고 잘살게 하는 것인데 우리가 경험한 정치는 그와는 정반대였습니다.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온갖 감언이설로 사람을 홀리고, 어제의 동지가 적이 되고,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를 반복하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보다 절망을 주고, 정치와 정치인이라면 손사래를 칠 정도로 국민들에게 정치혐오라는 부담스러운 정서를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치판에 유독 노회찬 그대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서러운 사람, 아픈 사람,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을 어루만져 주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대는 한마디로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마음이 하늘같이 맑은 사람이었습니다.

내면으로부터 용기가 솟구쳐 나오고, 기쁨과 지혜가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불의에 대해선 단호한 사람이었습니다. 행동하는 지식인이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줄 알면서도 숱하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대의 말 한마디가 촌철살인이 되어 사람들 가슴에 꽂혔고, 해학과 풍자로 수많은 어록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대는 말과 행동이 같았고 시종여일했습니다. 그대는 이 시대, 진정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정치인 노회찬은 삼성 X파일 의혹을 국민들에게 밝힌 첫 번째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삼성 이학수 부회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 간에 대화가 과거 국정원 미림팀에 의해 감청됐습니다. 감청된 내용은 노회찬 의원에게 입수됐는데 가히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은 이건희 회장이 검사들에게 떡값을 돌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떡값은 고위검사 뿐 아니라 평검사에게까지 모두 뿌려졌습니다.

이 감청 내용이 정가를 돌았지만, 어떤 의원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때 유일하게 나선 국회의원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노회찬은 국정감사장에서 두 사람이 다룬 대화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이 일로 자신의 의원직을 상실하기까지 했지만, 국민들은 노회찬 의원의 폭로를 통해 검찰과 재벌의 유착에 대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직을 걸고 공익을 위해 문건을 공개한 의원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노회찬을 골리앗에 도전한 다윗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대는 노동운동과 현실정치라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뜨겁게 사랑하다가 스스로의 원칙을 침해한 사건을 용서치 못해 그토록 사랑하던 세상과 결별했습니다. 순리를 따르는 죽음을 남들보다 의연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우리는 너무 어렵고 힘들어 애달파하고 있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나의 스승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과연 무엇을 말한 것인지 그 뜻이 벼락처럼 내려치기도 합니다. 들보와 티가 그 자체로 들보며 티는 아닐 것입니다. 들보와 티는 저마다의 마음속에, 그 살아온 내력에, 그 진심과 내력으로 해 내고 싶었던 ‘더 나은 삶은 가능하다'는 믿음의 순도에 달린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미세한 티라도 자기의 생을 걸 정도로 들보가 될 것이고, 그러나 다른 많은 이들에겐 누구에게나 보이는 들보라도 하찮은 티밖에 안될 것입니다. 들보가 티인 이들, 그러나 티가 들보인 이들. 그리고 억울해서, 원통해서 자기 생을 걸고 그 신원을 위해 필사적으로 도저히 죽을 수 없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많은 이들에게 하찮아 보이는 자책감으로 자기 영육을 가차 없이 내던지는 이도 있습니다. 인간 노회찬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 가련한 영혼의 자책 앞에 남은 이들이 먼저 보내야 할 것은 애도 이전에 자책이며, 다짐이기도합니다.

노회찬 의원, 그대는 이 세상에 ‘진보'라는 소중한 씨알 하나 남기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그대가 남긴 진보라는 가치가 그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라고 유서 마지막에 남기셨습니다.

노회찬 의원, 당신이 죽음으로 외치고자 했던 뜻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대를 추모하는 우리의 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봅니다. 전국각처에서 분향소마다 당신을 추모하는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습니다.

당신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특권도 특혜도 없이 누구나 줄을 서서 조문을 합니다. 그대가 죽음으로 남기고자 했던 뜻을 당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이어받고 따르려는 조용한 혁명의 물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노회찬 의원, 당신이 보여주신 대로 구차하고 비굴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너절너절하게 살지 않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우러러 부끄럽지 않게 살겠습니다. 진보의 가치가 만개하는 그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 노동자가 주인 노릇하는 세상을 위해 마음을 더욱 다잡겠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그대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사랑했습니다. 먼 길 부디 잘 가이소."
"주님, 노회찬 의원의 영혼을 받아주시고, 그의 유족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소서."

2018년 7월 26일
박철 목사 올립니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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