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이 시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어머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
―「룻기」 3장 5절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장례식은, 적어도 우리 시대에는, 더는 없을 거야”라고 했다. 그는 이 시대의 마지막 영웅이었고, 죽음으로 사회적 통합을 가져올 마지막 사람이라는 얘기다. 이제는 그 누구도 시민사회 전체의 애도의 대상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불과 3개월여 만에 우리는 또 한 번의 대대적인 사회적 애도의 의례를 치루게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고가 전해지기 직전까지도 그의 존재는 한국 민주주의의 좌절과 수치스러움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 즈음 내가 요청받은 원고의 주제는 ‘한국사회와 돈’이었다.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하여 참여정부 핵심층의 부패에 관한 검찰의 브리핑을 염두에 둔 기획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지난 주 토요일 아침, 마침 내가 몸담고 있는 연구소가 이사하게 되던 날,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뉴스를 들으면서 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전임 대통령의 자살. 어느 일간지는 이것을 ‘시스템 살인’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자신 이외에 누구도 그의 목숨을 강제로 회수한 이는 없지만, ‘정치적 타살’이라고 할 만큼 마지막 숨구멍까지 압박하며 죄어오는 권력의 조임을 당해야 했다. 또한 일사불란한 명령 계통이 있었던 것이 아님에도 기득권 집단이 제각기 권력을 십분 활용하여 한 치의 가릴 것도 없이 발가벗겨 짓밟아 버렸던 것이다.
한데 삶에서 죽음으로의 극적인 경계 이동만큼이나 수치스러움에서 자랑스러움으로의 생각의 이동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그의 죽음은 모든 것은 반전시켰고,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대적인 국민장이 거행되었다. 공중파 방송 3사가 장례식과 노제를 생중계하고,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특집 다큐를 제작 방영했으며, 화장장에서 49제 때까지 유골을 안장하기로 한 사찰 장면까지 생중계되었다.
티비의 오락프로는 애도기간 동안 방영이 중지되었고,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초기 화면에 흑백 톤의 애도 디자인을 넣었다. 전국 수백 곳에 시민들에 의해 분향소가 가설되었으며, 무려 오백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참배를 했다. 대학교 강의실마다 선생들은 견해를 묻는 질문에 답을 해야 했고, 전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타살의 책임을 물어 현 대통령의 탄핵 서명이 인터넷 공간에서 전개되어 백만 명 이상이 참여했다. 하여 어떤 이는 한국에도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생기게 되었다고 말한다.
국민의 다수가 그의 서거에 애통함을 표했고, 나 역시, 비록 몇 가지 주요 사안에 있어서 결코 동의할 수 없어 정치적으로 그의 반대자에 가까웠음에도, 애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가장 깊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권양숙 님1)일 것이다. 시신을 확인하면서 실신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장례식 때에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나타났다. 필경 그녀가 겪고 있는 자기 존재 파괴의 상태는 비교불가의 절대고통 바로 그것이었겠다.
정치적 타살을 체험한 다른 사례들에 관한 자료를 참조하면, 배우자를 잃은 아내들은 종종 상황에 부적절한 말을 내뱉는 언어 붕괴 현상을 겪게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주던 기억의 교란을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동시에 정치적 타살자의 아내들은 그러한 자기 파괴적 비탄 상황에 지속적으로 놓일 수만은 없다. 그녀는 죽은/임당한 남편의 입이 되고 목소리가 되고 몸이 되어야 한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무너져버린 ‘사적인 아내’가 아닌, 그 불의한 죽음을 당한 남편을 대신해서 증언하는 ‘공적인 아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을 그렇게 해석하며, 그렇게 하도록 요구한다.
죽은 자, 아니 죽임당한 자는 말하지 못한다. 그 시신의 고요함은 자기 증언의 부재를 의미한다. 바로 이 증언 부재의 침묵에 소리를 부여해주는 이가 바로 배우자 여성인 것이다. 그녀의 눈물, 그녀의 신음, 그녀의 비틀거림이 바로 그러한 증언의 형식이다. 하여 이러한 배우자 여성이 몸으로 하는 증언 행위, 그것은 죽임당한 자의 의례에서 핵심을 이룬다.2)
이렇게 배우자 여성은 비탄 상황에 스스로를 내던지는 것에서 증언자가 되어 죽은/임당한 남편의 소리를 대언하는 자로 역할 전이를 일으키게 된다. 아니 그렇게 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문화적 요청에 직면하게 된다. 곧 정치적 타살자의 아내들은 ‘과부’에서 ‘정치적 과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처음에 권양숙 님은 남편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한다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살해자와 장례를 공유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이 컸던 탓이겠다. 그러나 곧 그녀는 받아들인다. 그것은 그녀의 ‘정치적 과부되기’가 국민장의 의전 형식에 의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의전 형식의 핵심은 ‘영부인되기’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서거한 이가 대통령임이 그녀를 통해 만천하에 대언되는 것이다.
「룻기」 3장 5절에서, 시어미인 나오미가 기획한 몰락한 가문의 회복을 위한 프로젝트에 며느리 룻은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듯이, 죽은 남편의 침묵을 대언하는 씨족의 관습에 의거한 과부의 행동, 그것은 단적으로 정치적 과부되기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주체와 욕망을 지배적인 문화적 코드에 맞추고 그러한 의미망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정치화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일러주신 대로 다 하겠습니다”라는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처럼 권양숙 님 역시 국민장을 수용함과 동시에 국민장의 의전 양식에 맞춘 영부인되기를, 일러준 대로 다 수행한 셈이 되는 것이다.
한편 시민 대다수도 이러한 의전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국가의례로 진행된 장례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처럼 대대적인 시민의 참여를 동반한 것은 유례가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국민장이 된 것이다.
하여 시민도 국민장의 의전 양식에 걸맞는 ‘정치적 시민되기’에 참여하였다. 노제가 거행되던 시청 광장과 그 주변지역에 즐비하게 붙어 있는 현 정권에 대한 극단의 증오감을 담은 벽보들에도 불구하고, 결코 국가의례의 일부로 환치될 수 없는 담론의 주역들, 국민장의 시민되기에 동참한 이들 가운데 적지 않은 일부인 그들은, 그날 밤 국민장의 시민되기에 동의한 이들답게 ‘얌전한 항의자’였다.
나는 여기서 혼란을 느낀다. 모 신문이 시스템 살해라고 규정했고, 많은 이들이 정부에 의한 타살로 해석하고 있음에도, 왜 그 많은 이들 가운데 다수는 국민장이라는 것에 대해 순순히 동의하고 있는 것일까, 왜 스스로 국민장에 걸맞는 정치적 시민되기를 순순히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전임 대통령의 서거이니 만큼 결과적으로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에 저항하는 격렬한 비판과 논쟁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왜 그토록 ‘조용한 합의’에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죽은 이의 침묵을 대언하는 일이 단순한 합의인가 하는 문제의식이 들었던 것이다.
또 하나, 그의 죽음에 대한 애도에 있어 나를 당혹하게 했던 것은, 한 후배의 고백에서 비롯된다. 그는 얼마 전까지 한・미 FTA를 추진하던 참여정부를 격렬히 비판하던 지식인이었다. 근데 며칠 전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반대를 후회하면서 ‘대통령님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고 울먹였다. 나는 적지 않은 이들이 그의 죽음을 이런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는다. 위에서 말한 그 ‘조용한 합의’는,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 하나의 징후다. 국민장을 받아들여서는 안 될 법한 주장을 펴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는 듯이 국민장을 받아들이는 이율배반과 상응한다는 얘기다.
그에게 묻지는 않았지만, 필경 그는 한・미 FTA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참여정부의 한・미 FTA는 잘못 추진된 발전기획임이 여전히 타당하다. 하지만 그는 전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자기 신념을 철회하고 있다. 그 이유는 ‘대통령님을 지키기 위해서’다.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를 지키기 위해서 자기 생각을 철회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가 우리 정치사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실행력을 지니면서 통용되고 있다. 그것은 ‘가신’이라는 용어다. 하여 국민장에 즈음한 그의 ‘정치적 시민되기’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가신적 정체성’으로 스스로를 재규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는 얼마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본래의 생각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렇다. 그럼에도 그가 일시적으로나마 가신적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 때문일 것이다. 압도적인 슬픔이 그로 하여금 이러한 모순을 감내하게 했을 것이다. 그 순간의 비통함 탓에 생각의 균형이 무너지고, 세상을 ‘노무현 대 반(反) 노무현’이라는 단순 이분도식으로 생각한 결과일 것이라는 얘기다.
한데 과연 그럴까? 다시 원상복귀되는 것일까? 그가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으로 다시 돌아서게 된다는 것이 원상복귀일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필경 이후에도 여전히 자기가 모순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별로 심각하게 느끼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의 정치적 죽음으로 인한 애도의 정치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 때, 애도의 행렬은 세상에 그 죽임당한 이의 목소리를 다시금 울려 퍼지게 한다. 애도하는 이는 그러한 소리의 중개자가 됨으로써 정치적 시민이 된다. 한데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애도의 정치는 종종 정치적 시민되기를 퇴행적으로 만들곤 한다는 것이다. 시도때도 없이 광장에서 통합만을 부르짖는 자기 서사는 이러한 퇴행성의 단적인 사례다. 해서 진보적인 한 일간지 사설은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참여정부의 한계가 아니라 ‘국가의 한계’였다'고 말한다.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방식이 그를 무조건 지지하는 ‘가신되기’이며, 가신적 정체성으로 통합되지 않는 모든 비판적 논의를, ‘국가의 한계’와 정부의 한계를 혼돈한 비현실적 몽상가의 의견으로 폄하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애도의 방식에 좀처럼 공감할 수 없었고, 헌화하는 것을 주저해야 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시청 광장을 돌아다니면서 그 한 구석에 설치된 작은 분향소를 보았다. 거기에는 근래에 죽임당한 정치적 피살자들의 명단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었구나 하는 새삼스런 각성에 도달했다. 한 사람의 죽음에서 죽임당한 많은 이들을 기억해내는 것, 내가 생각하기에 이번에 광장에서 목격한 가장 빛나는 애도를 나는 여기서 봤다.
(제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 김진호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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