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왜, 우리 세습이야. 뭐 어쩌라고"라면서 명성교회 세습을 두둔한 고세진 목사(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총장)의 설교는 큰 파장을 몰고 왔다. 고 목사는 특히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까지 들먹이며 세습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의 설교에 대해 명성교회와 같은 교단인 예장통합 은퇴목사인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중대한 신앙과 신학의 문제임을 지적했다. 이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의 관계를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학의 테두리를 넘어서 인간의 육체적 부자 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해석학적 아전인수적 왜곡이며 오류"라고 일갈했다.
서 명예교수의 기고 전문을 아래 싣는다. 편집자주]
최근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측) 총회가 명성교회 담임목사 "세습"에 대한 판결에 교회 안팍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판결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혼란과 법적 윤리적 대결과 논쟁 등,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 보수 신학대학의 총장직을 역임했다는 고세진 목사가 문제의 명성교회에서 한 설교가 화제가 되고 있다.(<베리타스> 7월 31일 보도).
고 목사는 설교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도 독생자 예수에게 세습했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의 교회에서 목사 세습이 무엇이 문제인가"하는 요지로 총회 법을 유린한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부자 세습을 옹호했다는 것이다.
신약 성서를 통해서 고 목사의 논지가 성경적인가? 고 목사는 성경을 제대로 읽고 있는가? 정말 그의 말대로 신약 성서에서 하나님은 자기 사역을 예수에게 "세습"한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성육신 하신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 가족"의 부자 세습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리고 이 문제는 확실하게 하고 세습을 반대하든 옹호하든 집고 넘어 가야 할 중대한 신앙과 신학의 문제이다.
선교의 부자 세습이나, 인간 예수의 육체의 부모 형제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면, 육체적 가족 관계에 대해서 그렇게 집착하지 않았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2:46~50), 마가복음 (3:31~35), 그리고 누가복음 (8: 19~21), 등 공관복음에 기록된 것을 보면, 예수를 찾아 온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마태 12:48~50) 예수의 가족관은 육체적 혈통적 가족관이 아니었다.
예수, 육체적 가족 관계 집착하지 않았다
예수의 참된 가족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명성교회의 부자(父子) 목사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하늘 아버지 하나님의 부자이며 믿음의 가족인가 질문하게 된다.
예수의 하나님의 선교활동의 최후의 날, 아들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며 아버지 하나님과 대결한다. 십자가의 고난의 잔, 아버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야 하는 쓰리고 아픈 고난의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는 독생자 아들 예수의 간구와 간청에 대답이 없었다. (마태 26:39, 마가 4: 32~42, 누가 22:39~46)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는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 예수를 버렸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며 절규한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마태 27:46, 마가 15: 34). 육신의 아버지의 뜻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확실히 달랐다. 목회에 성공한 육신의 목사 아버지의 뜻과 독생자 아들 예수를 로마의 십자가 처형에 버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확실히 다르다. 육신의 아버지의 뜻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고난의 십자가를, 사랑하는 아들에게 지게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하겠는가?
문제의 명성교회에서 목사 세습을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의 관계로 옹호한 것은 성경적이었나, 하고 심각하게 질문해야 할 신앙과 신학의 문제임이 틀림없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의 관계를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학의 테두리를 넘어서 인간의 육체적 부자 관계로 해석하는 것은 해석학적 아전인수적 왜곡이며 오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