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대흐름 역행했던 보수 개신교, 이번에도 퇴행하나?

한기총·한교연, 북한 비핵화 의지 의구심 제기하며 어깃장 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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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청와대)
▲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두 손을 맞잡았다. 이 장면은 남북 화해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게 됐다.

지난 18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뒤이은 25일 미국 뉴욕 방문 등으로 남북-북미 관계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습니다"고 한 19일 5.1 경기장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연설, 그리고 21일 남북 정상이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두 손을 맞잡은 광경은 남북 화해가 불가역적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개신교, 특히 보수 개신교는 회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새다. 대표적인 보수 개신교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엄기호)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이동석)은 9.19평양공동선언에 나란히 논평을 냈다. 한기총과 한교연은 평양공동선언을 한편으로는 환영하면서도, 비핵화에 대해선 여전히 구태를 드러냈다. 이들이 낸 입장을 아래 인용한다.

"이번 선언에서 군사적 합의와 비핵화 부분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여전히 남북은 정전상태이고, 군사적 대치상황인데 국가의 원수로서 국민의 안전과 나라의 안보에 앞서 군사적 무장해제에 합의한 것은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방법이나 방향이 없다는 것도 북한의 의도대로 이번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9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입장문 중에서

"그러나 남북 정상이 이번에도 구체적인 북핵 폐기의 실천을 담보하지 못한 것은 남과 북이 한반도 평화를 위해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전제조건을 달기보다 선행적 조치를 통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 한국교회연합, 남북정상 평양선언에 대한 논평 중에서

9.19평양공동선언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를 전제조건으로 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핵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북미 사이를 오가며 중재자 역할을 맡아온 문 대통령으로서는 핵 폐기 의사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육성으로 확인한 점만으로도 빛나는 성과다. 그런데 북한은 정말 핵 폐기 의사가 있는 것 같다. 북한 방문을 마친 문 대통령은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가진 대국민보고를 통해 이 같은 의지를 분명히 알렸다.

"다만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4개 합의사항이 함께 이행돼야 하므로 미국이 그 정신에 따라 상응 조치를 취한다면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를 포함한 추가적 비핵화 조치를 계속 취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습니다. 그 의지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밝히는 차원에서 우선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 참관하에 영구적으로 폐기할 것을 확약했습니다.

북한이 평양공동선언에서 사용한 '참관'이나 '영구적 폐기'라는 용어는 결국 '검증가능한 불가역적 폐기'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뿐만 아니라 문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가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전세계에 비핵화의 의지 밝히고, 제가 15만명의 평양 시민들 앞에서 비핵화를 확인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비핵화는 북한 내부에서도 돌릴 수 없을 만큼 공식화됐다"고 밝혔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폭스뉴스 인터뷰다.

문 대통령은 미국 방문 일정 중 <미국 폭스뉴스 - 스페셜리포트>에 출연해 진행자인 브렛 베이어와 인터뷰 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에 대해서(북한의 비핵화 불이행 - 글쓴이) 미국과 한국, 양국이 취하는 조치는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습니다. 종전선언,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취소할 수 있습니다. 설령 제재를 완화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이 속일 경우, 약속을 어길 경우, 제재를 다시 강화하면 그만입니다."

북한이 정말 비핵화 약속을 지킬지는 확언할 수 없다. 남북-북미간 불신의 골이 아직은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전과 달리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비핵화 의지를 드러낸 만큼 현 단계에서는 믿고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기총과 한교연의 논평은 분명 남북 화해의 진전과 북한 비핵화 의지를 거스르는 것이다.

보수 개신교, 화해 무드 또 놓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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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지유석 기자 )
▲ 지난 8월 15일 서울 중구 대한문 광장에서 열린 미스바 구국기도성회. 보수 개신교는 새정부 출범 이후 극우 정치세력과 얽히며 반정부 선동에 앞장서왔다.

한국 개신교 교회, 특히 보수 개신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공·보수 정파와 밀접히 엮이며 '흑역사'를 자주 연출해 냈다. 그러나 태도 변화를 요구하는 결정적인 국면이 있었음도 사실이다. 4.19 혁명, 1987년 민주화 이후, 그리고 2016년에서 2017년까지 이어진 촛불 혁명이 특히 그랬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결정적인 국면마다 퇴행을 선택했다.

보수 개신교 교회는 4.19혁명 직후 반민주주의적이고 비기독교적인 이승만 정권에 부역했던 과거에 대해 회개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죄책고백을 거부했고, 5.16 혁명이 일어나자 군사정권이 내건 보수 반공 이념 뒤로 숨어 버렸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보수 개신교 교회는 죄책 고백 보다는 연합체를 꾸려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촛불 혁명 이전 보수 개신교 교회는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했고, 박근혜 탄핵 이후엔 반정부 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보수 개신교 단체가 남북 화해의 거대한 흐름에 어깃장을 놓은 건, 그래서 차라리 자연스러워 보인다.

9.19평양공동선언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서울 방문을 약속했다. 이후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 위원장의 답방 시기가 12월 초가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보수 개신교 교회의 움직임 대로라면, 김 위원장의 방남 날짜가 확정되는 즉시 각 교회마다 김 위원장 방남 반대 '구국'(?) 성회를 독려하고 방남 당일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가능성은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아직 지켜봐야 하겠지만 남북-북미 관계가 급물살을 타는 현 와중에서도 보수 개신교는 어김없이 퇴행을 선택하리라고 본다. 늘 그래왔기 때문이다.

지유석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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