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리(Zubiri) - 팜플로나(Pamplona): 5시간 30분 (21Km)
여행은 만남이다. 여행이든 순례든 일상을 벗어나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가끔은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도 하는데, 모든 존재가 특별하겠지만 정말 특별한 한 사람을 이곳 팜플로나에서 만나게 된다.
수비리부터 동행하게 된 친구들과 알베르게에 짐을 풀고 끼니 해결을 위해 마을 번화가를 어슬렁거린다. 몇 분 후 현정이가 낯선 한 남자와 접선을 한다. 누구지? 우리는 어리둥절한 채 그 접선에 동참한다. 아무리 봐도 한국인 체형은 아니다. 콧날은 날카롭고 다리는 매우 길었다.
그는 5월 산티아고 출발자 단톡방에 있던 오승기라는 청년이다. 단톡방에 있던 사람 중 대부분이 그가 외국사람인지 몰랐던 건 한국말을 무척 잘했기 때문이다. 단톡방에서 사용한 자신의 아이디마저 흔한 한국인 이름이었으니 대화를 대충 보고 넘긴 사람은 그에게서 풍기는 이국적 냄새를 맡을 수 없었을 거다. 그는 한국을 사랑하여 유튜브(youtube)로 우리나라 말을 꾸준히 익혀온, 그러나 한국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팜플로나에 사는 바스크인이었다. 특별한 만남은 까미노의 아주 이른 시기에 왔다.
'만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글귀가 있다. 몇 해 전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결국 만남 때문이라고 하셨다. 만남이라. 만남에는 뭐 특별한 게 있는 걸까? 그는 말한다. "떠남과 만남과 돌아옴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만남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자기와의 만남입니다. 떠나는 것도 그것을 위한 것입니다." (신영복, 『담론』, 돌베게, 2015, p.423)
아무래도 떠나는 사람과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사람을 압축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은 공항이나 기차역, 버스 터미널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곳엔 다양한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사정이 숨어 있다. 그들은 일 때문이든, 사랑 때문이든 아니면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 때문이든 떠나게 되는데, 일단 떠나게 되면 무조건 만남은 성사된다.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가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만남이 꼭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든 떠나게 되면 어떤 상황이나 묵혀둔 생각, 낯선 감정 등을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만남의 주체는 결국 '나' 자신이기에 내가 움직인다면 어떤 만남이든 피할 수 없게 된다. 다만, 그것을 인식하고 인식하지 못하고는 '집중'에 달려 있다.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곧 만남인 것이다. 그래서 만약 만남에 최종 목적지가 있다면 어느 곳을 경유하든 '나'라는 존재가 최종 입국장이 된다.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신 '자기와의 만남'에 이런 의미가 숨겨진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너무 진지해졌다. 여행에 무거운 짐을 지우진 말자. 일단 떠나자. 비장할수록 오히려 존재는 가벼워져야 한다는 고미숙 작가의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다시 처음으로. 한국을 사랑한 스페인 청년이 살고 있는 이 팜플로나는 꽤 큰 마을이다. 소도시라고 해야 하나? 물론 앞으로 거쳐 갈 대도시 부르고스, 레온 등이 떡하니 기다리고 있지만 생장을 떠난 이후 만난 가장 큰 마을이 바로 이 팜플로나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곳은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가 오래 머물며 글을 쓰기도 했고, 미국 소설가 시드니 셀던(Sidney Sheldon)의 장편소설 <시간의 모래밭(The Sands of Time)>의 무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특히 매년 7월 초에는 소몰이행사(El encierro)로 유명한 '산 페르민 축제(Fiesta de San Fermín)'가 열려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기도 한다고.
사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오늘 좀 탈이 났다. 수비리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데 컨디션이 영 좋지 않더라.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탈이라니. 육체의 피로는 어찌된 게 꼭 하루를 건너오더라. 반가운 스페인 친구와 일행을 뒤로하고 일찍 숙소로 돌아간다. 순례 초반부터 이렇게 빌빌대다니 앞으로 갈 길이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