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1월 1일 방송에서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문재인 정부를 향해 올해 최저임금을 동결하면 지지율이 오를 것이라고 충고했다. 나는 궁금해졌다. 과연 하태경 의원 말대로 최저임금이 동결되면 문재인 정부의 지지율은 올라갈 것인가? (리얼미터에 따르면 2019년 1월 4일 현재,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정수행평가는 긍정평가가 47.9%로서 부정평가 46.8%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정말 나쁜 질문 중 하나다. 우리 서민들에게 진짜 문제는 우리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지 대통령의 국정수행평가 결과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경제 정책을 우리 서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방향으로 향하게 해야 한다. 문제인 정부는 조작되고 선동되고 왜곡되기도 한는 국정수행평가 여론조사에 목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서민들에게 실질적 이익을 제공하는 경제 지표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하태경 의원의 최저임금에 관한 충고는 정치적인 프레임을 염려할지언정, 전혀 서민들의 삶을 생각하는 마음은 없는 듯하다. 왜 그런지 한 번 따져보자.
다음의 도표는 지난 10년간과 2019년 한해의 최저임금과 인상률, 인상금액을 보여준다.
먼저 2019년 최저임금 8,350을 8시간 기준의 일당으로 환산하면 66,800원이고 월급은 한 달 209시간을 기준으로 1,745,150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마지막 최저임금이 결정되어 시행된 2017년을 살펴보면 치저임금 6,470원, 일당 51,760원, 월급 1,352,230원이다. 문재인 정부 3년 차를 맞아 그렇게도 안 오르던 서민들의 최저임금은 월 392,920원이 올랐다. 문재인 정부가 2년 만에 우리 시민들의 최저월급을 40만원 가까이 올렸는데, 이와 비슷한 395,010원을 올리는데 과거 정부에서는 2012년 95,7220원에서 2017년 1,352,230원까지 5년이 걸렸다. 만일 보수정권이 주장하는 대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재임시절인 2009년부터 2017년까지 9년간 평균 최저임금 평균 상승률인 6.2%로 올해 최저임금을 계산해보면 시간당 7,300원이고 월급은 1,525,700원이다. 현재 금액보다 시간당 1,050원이 적고 월당 219,450원 더 적다.
이런 지표가 우리 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도통 알 수 없는 온갖 복잡한 거시/미시 경제지표를 들이대며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나라 경제가 무너진다고 협박들 해대는데, 그러한 정치적 선동을 전제하여 하태경 의원은 문재인 정부에게 내년 최저임금을 무조건 동결하라고 충고한다.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여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동결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진 결과이기는 할지언정 진정 우리 시민들의 삶을 위한 결과인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정치란 단순하지 않기에, 복잡한 관계 내에서 때로는 타협해야만 결과적으로 더 큰 이익을 시민들에게 제공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금인상만큼 확실하고 분명한 시민을 위한 정책이 어디에 있는가? 사실 우리들이 보기에는 최저임금 인상을 원인으로 해서 확실하게 변하게 될 것은 2019년의 복잡한 경제지표들이 아니다. 가장 확실하게 변화하게 될 것은 2019년 우리들의 월급이 2년 만에 최하 40만원 오르게 된다는 것뿐이다. 그렇게 꾸준히 우리들의 임금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 바로 그것이 우리 서민들이 듣고 싶었던 소식이 아니었던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이 노동자라면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것 자체가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만일 여러분들이 자영업자라면 여러분들이 속해 있는 가족 구성원 중에 임금 노동자는 전혀 없는가? 자영업자 여러분들은 보수 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때보다 21만원을 209시간 노동의 댓가로 더 지불해야 하는데, 또 만큼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그 똑같은 금액을 더 받게 된다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았는가?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다 자영업자라고 해보자. 이러한 경우는 상식적으로 전 가족 구성원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또는 매우 부유하거나, 또는 재벌이거나, 또는 우리 국민의 매우 소수만을 구성하는 집단일 것이라 추측되는데 이러한 집단들이 최저임금을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자신들은 노동의 임금을 받는 입장이 아닐테니까.
그런데 우리들이 기독교인들이라면 최저임금에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만 하는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마태복음 20장에서 예수는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품삯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았다. 하루에 한 데나리온이었다. 이른 아침에 왔든, 일거리를 못 찾아서 헤메다가 더 늦게 왔든, 모두 다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임금으로 받았다. 노동의 시간이 다르다며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포도원 주인은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며 그 항의를 묵살한다.
아직도 기독교의 가치가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라면 예수의 이 비유를 최저임금 문제와도 관련하여 곱씹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가 보장하고자 원했던 모두가 가져야만 하는 평균 일당 한 데나리온, 그리고 우리의 최저임금. 집이 없어 매달 월세를 내는데 그 비용이 너무도 비싸다. 매일 출퇴근하는데 차비도 만만치 않고, 식비도 비싸다. 핸드폰, 도시가스, 전기 사용료는 알게 모르게 매달 인출된다. 겨울에 옷 한 벌 사는 것도 만만치 않고, 친한 후배 따듯한 밥 한 그릇 사먹이는 것도 지갑을 꼭 확인해봐야만 한다. 한 달에 170만원을 벌어서 혼자 살아가기도 빠듯한데 부양할 가족이라도 있으면 말 그대로 지옥이다. 2019년 대한민국에서 1,745,150원이 그렇게도 부당한 최저월급인가? 그렇게도 나라 경제를 흔드는 월급인가? 그래서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해야만 대통령 지지도가 올라가게 되는 것인가?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와 같은 마음을 품고서 최저임금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가? 그 마음을 품고서 약한 이웃들 편에 함께 서고 있는가? 그들과 연대해주고 있는가? 내가 임금을 받는 입장이든 주는 입장이든 간에, 우리가 진정성 있는 기독교인이라면,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처지를 확인해보고, 지금의 최저임금이 충분한 금액인지 따져봐야만 한다. 예수가 이웃들에게 보장해주려 했던 그 한 데나리온. 여전히 우리의 최저임금은 예수의 한 데나리온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음을, 우리 이웃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턱없이 부족할 수도 있음을, 우리 기독교들이 그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주장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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