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구속됐다. 바로 전날인 23일엔 안태근 전 법무부감찰국장이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됐다. 사법부의 전직 수장과 준사법기관인 검찰의 거물급 인사가 구속됐다는 점에서 사법부로서는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양 전 대법원장과 안 전 감찰국장의 구속은 개신교에도 적잖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양 전 대법원장은 분당에 있는 대형교회인 할렐루야 교회에 출석했다. 일각에서는 장로라고 했지만, 할렐루야 교회에 직접 문의한 결과 장로는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은 안 전 검사장은 온누리교회 강단에 서서 눈물까지 뿌리며 간증을 했다.
교회는 어느 누구에게도 열려 있는 공간이다. 세상에서 죄를 지은 이들이라고 배척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누가복음 5:32)고 하지 않았던가.
문재는 바로 '회개'다. 다시 말하지만 교회는 어느 누구라도 올 수 있다. 또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사람' 보다 그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더 중요시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교회에서 더 대접 받는다. 그가 그 위치에 오르는 과정에서 혹시라도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는지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모든 교회가 다 그렇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대개의 경향이 그렇다는 말이다.
성공한 인물의 과거는 묻지 마세요?
양승태가 어떤 인물인가?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조직의 이익, 즉 상고법원 설치를 관철시키기 위해 박근혜 전 정권과 사법거래를 한 장본인 아니던가? 그에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과거 공안사건 판사로서,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이들에게 실형을 내렸다.
법정에 나온 간첩조작 피해자들은 고문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을 했다. 이에 이들은 법정에서는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양승태 판사는 이들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했다. 그 대가로 양승태는 승승장구했고, 마침내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대법원장 자리를 꿰찼다.
그가 출석한 교회가 이 같은 전력을 따지고, 회개를 권고했는지 모르겠다. 교회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고 물을 수 있다. 답은 '그렇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한편, 교회를 찾은 죄인들에게 자신이 저지른 죄과를 뉘우치도록 인도하는 게 교회의 존재 이유이니 말이다.
양승태가 판사로 이름을 올린 사건 중 하나인 제주간첩 조작 사건은 32년 만에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양승태가 조작으로 판명 난 간첩조작 피해자들에게 사과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또 KTX 여승무원이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등 박근혜 전 정권과 재판거래로 인해 삶이 무너진 이들에게 고개 숙였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이쯤되면 그가 다니던 교회가 어떤 복음을 설파했는지, 그가 무슨 생각으로 교회를 나가고 무슨 기도를 했는지 궁금해진다.
서지현 검사가 어려움이 뻔히 눈에 보임에도 자신의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기로 한 계기는 바로 안태근 전 감찰국장의 간증이었다. 만약 온누리교회가 안 전 검사장의 회개를 적절히 유도했다면 어땠을까? 온누리교회는 안 전 감찰국장이 출석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 진리는 진리와 정의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안태근 전 감찰국장의 사례는 과연 지금 개신교가 어떤 복음을 설파하고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이제 세상은 달라졌다. 과거엔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고 외치면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그리고 목사가 먼저 예수 믿으라고 일축한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안태근 전 감찰국장의 구속을 환영한다. 이 지점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를 아우르는 그리스도교에게 당부한다.
이번 일을 통해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는 아모스 예언자의 간절한 외침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뭉개진' 않았는지, 오로지 성공만이 축복이라는 복음을 설파하면서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검증'은 도외시한 채 자랑 삼아 내세우지는 않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반성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