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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진의 횡설수설] 인문학의 부재와 신학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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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pixabay)
▲교회 전경. 위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인문학의 가치는 무엇일까? 인문학은 건물을 세우고 다리를 만들고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핸드폰을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어 경제적 가치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인문학은 돈 계산에도 약해서 어떠한 선택이 최고의 효용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사회 내에서 인문학은 크게 쓸모가 없다. 인문학은 그저 계속 묻고 따지기만 할 뿐이다. 인문학은 스스로 무엇인가를 생산한다기보다는 생산의 과정들의 의미를 문제 삼기에 바쁘다.

하나의 도시를 세운다고 하자. 먼저 도시의 건물들을 지을 설계 도면을 그릴 건축가가 필요하고, 도면에 따라 건물을 지을 인부들이 필요하다. 그에 더해 건물들의 안전성을 검사할 인력들이 필요하고, 경제적으로 최고의 효용성을 확보할 경제학자들도 있어야만 한다. 도시의 환경조성을 위해 환경 디자이너도 필요하고 모든 법에 맞게 도시를 세우기 위해 법 전문가들도 필요하다. 물론 더욱 세부적으로 수많은 인력들과 학문들이 하나의 도시를 세우는데 필요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인력들과 학문들이 하는 일들을 종합해보면 대부분 도시를 세우는 기술력 그 자체에 관련된다.

만일 인문학이 도시의 생산과정에 투입된다면 인문학은 이러한 일들을 할 것이다. 이 도시를 왜 세워야만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경제적 효용성이 최고의 가치인가? 다른 가치가 더 중요한 것은 아닌가? 이 도시가 세워지는 이 장소는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미 조성된 환경과 가장 어울리는 색감은 무엇이며 건축양식은 무엇인가? 도시 전체가 지향해야만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도시 내에서 인권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의 생존권은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인문학은 물론 이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세부적인 질문들을 도시 생산 과정에서 쏟아낼 것이다. 그럼에도 인문학이 하는 일을 종합해보자면, 인문학은 도시를 세우는 기술력 자체에 관련된다기보다는 도시 생산의 의미와 가치 그 자체에 관련된다.

대한민국의 교육제도는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묻고 따지는 과정을 생략한다. 시간을 두고 오랫동안 고민해보는 과정을 생략한다.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생략한다.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진짜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절대적인 답이 없는 상황 속에서 그 어떠한 질문에도 단순한 지식들뿐만이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학자들에 대한 메타적 비판도 함께 해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학교를 짓기 시작했을 때 그런 전문가들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우리의 교육은 가장 쉬운 방식을 택했다. 교과서를 만들고 교과서 내에서 문제를 내고 문제의 정해진 답을 맞추면 그 학생을 1등으로 만들었다. 이런 교육방식으로 기술자들은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문학자들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남부럽지 않게 건물을 짓고, 다리를 만들고, 핸드폰을 만들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들어 온 도시가 그리 멋스럽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가 만든 사회가 그리 공평하고 정의로운 것 같지도 않다. 그리고 우리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떠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에는 인문학이 부재한다.

인문학적인 고민 없이 수많은 신도시들을 계발하면서 모든 도시들이 똑같은 모습들로 세워지는 것을 우리는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똑같은 모습의 아파트, 길, 학교, 유흥업소, 형식적인 공원들. 그런 따로 노는 구성인자로 꽉 찬 도시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얼마나 삭막한지, 얼마나 단순한지 우리는 늘 경험하고 있다. 반면에 그 수가 많지는 않지만 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해 만들어낸 길거리가 얼마나 멋스러운지도 우리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거리를 보기위해 몰리는 것을 보면 우리들 스스로가 미적인 가치에, 또 다른 수많은 인문학적 가치들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지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조금씩 우리 사회 내 인문학의 부재와 인문학적 가치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우리 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교회 내 인문학은 신학이다. 신학은 인문학의 철학, 미학, 윤리학, 사회학 등 거의 모든 학문을 자체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만큼 그 내용이 방대하고 깊다. 또한 그러한 만큼 가치 있고 소중하다. 그러나 우리의 교회들은 그런 신학적 가치들을 추구하고 있는가?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신학적 가치의 소중함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이제 우리는 도시가 아닌 하나의 교회를 지어보자. 역시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기술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교회야말로 단순한 건물이 아니지 않는가? 교회의 건물은 이미 담아야 할 수 천년의 역사가 있다. 기독교 역사학자들, 미학자들이 필요하다. 수 천년동안 연구되어 온 교회의 의미가 있다. 조직신학자들, 종교철학자들, 성서신학자들도 필요하다. 교회 건물을 통해 전파되어야 할 복음이 있다. 선교학자들도 필요하다. 그런데 모든 교회들이 건축을 하면서 계산기만 두드리고 있다. 부지 주변에 아파트 수가 얼마나 있는지만 확인한다. 그 어떠한 교회가 신학자들을 초빙해서 교회건축을 함께 하고 있는가? 어떤 교회가 교회를 건축하면서 교회의 역사와 의미, 복음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겠는가?

우리의 교회 생활 자체를 생각해보면 더욱 더 신학의 역할은 중요해질 것이다. 우리는 1시간 예배드리고 밥 먹고 집에 가기 바쁘다. 혹은 그것도 싫어서 집에서 방송으로 예배를 대체하곤 한다. 하지만 교회에 깊은 신학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자고로 추한 것들 앞에서 우리는 허겁지겁 도망치게 되어 있다. 반면 아름다운 것 앞에서는 발걸음조차 뗄 수 없이 사로잡히는 법이다. 교회의 신학은 우리를 정의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는 교회의 의미와 본질들로 안내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수많은 기독교의 이야기들에 흠뻑 매료될지도 모른다. 교회의 예술품들을 보며, 유서 깊은 음악을 들으며,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고뇌들을 읽고 들으며, 우리는 점점 더 교회의 가치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교회 내 신학이 있다면 우리는 단순히 목사의 말에 순종할 필요가 없다. 단순한 목사의 설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신학은 우리의 교회생활을, 아니 우리의 삶 전체를 신앙생활을 통해 그토록 깊고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신앙인의 삶이 세속인들의 삶과 아주 분명하게 구분되도록 핵심적 인자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목사들은 교회 내에 신학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을 한다. 그것은 신학교 때에만 필요한 것이라고들 말한다. 심지어는 신학교 내에서도 신학이 필요 없다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우리의 교회들이 마치 집단적으로 무엇에 홀린 것 마냥 사람과 돈이 모여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침 흘리며 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한국 교회 내 신학의 부재에 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교회의 정체성을 지켜줄, 그래서 교회의 자리를 지켜줄, 바로 그 신학을 천대하기에 벌어진 일은 아닌 것일까? 우리 사회 내 인문학의 멋을 일깨워주는 예술가들의 거리들처럼 교회 내 신학의 가치를 일깨워줄 그런 멋스러운 교회들이 여기저기 일어나길 바래본다.

※ 외부 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장효진 객원 newspaper@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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