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는 진실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수단이다. '변증법'을 뜻하는 영어단어 'Dialectic'는 '대화'(Dialogue)에서 파생됐다. <국가론>을 비롯한 플라톤의 저작 모두 대화록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제자들과 대화하면서 복음을 설파했다.
언론 인터뷰 역시 논란이 첨예한 사회적 의제의 어느 한 쪽 당사자, 혹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물을 만나 대화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언론 행위다. 그런데 이 같은 취지를 무색하게 한 일이 벌어졌다. 주인공은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다.
오 목사는 이달들어 두 차례 언론에 모습을 내비쳤다. 한 번은 9일 교계 언론인 'C채널'에 출연했다. 이어 유력 일간지인 <동아일보>가 오 목사 인터뷰를 부활절을 이틀 앞둔 19일자 지면에 실었다.
오 목사는 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 냈다. C채널과의 인터뷰에선 "개신교가 그 어떤 종교보다 강력한 말씀자본이 있고, 한국교회의경우 어떤 나라보다 헌신 자본이 강력하다"며 "인터넷 시대에 무차별 공격당한 한국교회가 4차 산업, 유투브 등을 잘 활용해 사회적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와는 "우리는 현재 갈등해소 비용이 너무 많다"라면서 " 물론 갈등은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교회가 지금 폭발하는 사회적 갈등 해결의 선두에 서야 하는 이유는 ‘통일 시대'를 앞뒀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 시대, 사랑의교회가 지닌 비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자 " 통일 시대를 여는 저와 사랑의교회의 꿈은 평양과 신의주, 개성에서 모두가 민족을 위한 푸른 꿈을 안고 세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아무말에 가까운 답이 없지 않았다. 오 목사는 C채널 인터뷰에서 미세먼지가 시급 현안이라며 "한국교회가 영적 청정대사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본래 먼지였으나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 쓰임 받은 것 아닌가"라고 했다. 그러나 오 목사의 이 같은 입장은 큰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 오히려 많은 독자들은 '영적 청정대사'라는 대목에 비아냥 섞인 반응을 보였다.
언론과 홍보, 그 경계선은?
근본적인 문제는 두 차례 인터뷰 어디에서도 '진실'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금 오 목사는 두 개의 대법원 판단, 즉 자신이 속한 예장합동 교단 목사자격과 도로점용 허가 처분 무효 확인소송을 기다리는 처지다.
여기에 병적 기록과 숭실대학교 학적을 둘러싼 의혹이 최근 새롭게 제기됐다. 이와 관련, 오 목사의 병적기록과 오 목사가 졸업한 숭실대 영문 성적표가 CBS를 통해 공개됐다. 오 목사는 두 번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오 목사 인터뷰는 언론에게도 심각한 문제를 던진다. C 채널과 <동아일보> 인터뷰 진행자들은 오 목사가 불편해할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앞서 적었듯 오 목사에겐 여러가지 논란이 따라다닌다. 상식선에서 볼 때, 이쯤되면 오 목사는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언론 앞에서 한 마디 해명 정도는 해야 한다. 만약 해명을 꺼린다면 해명을 유도해 내야 한다. 이게 언론이 할 일이다. 그러나 C채널과 동아일보 인터뷰 진행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뜬구름 잡는 식의 질문만 던졌고, 오 목사는 공허한 말잔치만 벌였다.
이 같은 장면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을 앞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언론인인 정규재 <한국경제> 주필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인터뷰를 가진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진행자인 정 주필은 논란이 일고 있는 민감한 쟁점은 피해갔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이 편하게 자신의 입장을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질문만 골라 던졌다. 새해 첫 날 전두환 씨를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해 공분을 샀던 이순자 씨 인터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오 목사는 논란의 중심에선 당사자다. 그런 사람을 불러다 놓고 그저 공허한 질문을 던진 진행자의 태도는 언론인으로서 직무유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요약하면 오 목사는 오 목사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본분을 저버렸다는 말이다.
언론과 홍보 사이의 구분선은 아주 모호하다. 그러나 그 차이를 구분하는 건 의외로 쉽다. 알리고 싶어하는 것만 알리면 홍보인 셈이다. 언론이 언론일 수 있는 건 '진실'에 다가서는 노력을 기울였을 때다.
이런 맥락에서 오 목사의 두 번에 걸친 인터뷰는 홍보 수준에 그친다. 언론의 존재 이유를 물을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