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2019년 대한민국 배회하는 역청산 망령

'좌파독재' 운운하는 황교안 대표, 비틀린 역사 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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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 사진 = 이활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발언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모양새다. 황 대표의 발언은 물론 정치적이지만,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이 정권의 좌파 독재 끝날 때까지 결코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 제가 선봉에 서겠다. 저의 모든 것을 걸고 이 문재인 정권의 좌파 독재를 기필코 막아내겠다."

- 20일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 발언

"지금 이 순간 문재인 정권의 폭정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무너진다."

- 24일 국회 로텐더홀 비상의원 총회 발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말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법무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내던 시절 황 대표는 다소곳한 이미지를 풍겼다. 비록 과잉의전 등 논란도 일으켰지만 말이다.

정치 입문 전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현 정부에 날을 세우긴 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수위는 아니었다. 그런 황 대표의 발언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황 대표는 경북 포항 지진피해 현장, 부산시 청년스타트업 업체, 공주보 등을 찾는 등 '민생대장정'이라 명명한 외부활동에도 열심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나온 발언 역시 '독했다.'

황 대표는 18일 충남 공주보를 찾았다. 이곳은 지난 2월 환경부 산하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가 부분 해체 방안을 낸 4대강 보 중 하나다. 부분 해체 방안이 나오자 일부 주민이 반발하며 논란이 일었고, 급기야 MBC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 공주보 논란을 집중 조명하고 나섰다.

황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데 정부는 당사자인 시민들의 의견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자기들하고 생각이 같은 좌파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말만 듣고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시민들의 공주보 철거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자 'PD수첩'을 동원해 여론까지 조작하고 있다"고도 했다.

민생대장정에서 나온 발언들은 이후 장외집회와 현재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패스트트랙' 공방에서 나올 발언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황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물론 '정치적'이다. 즉, 보수층 지지자를 결집하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말이라는 뜻이다. 황 대표는 4.3보궐선거에서 지지층 결집이 어떤 효과를 불러오는지 현장에서 목격했다. 범여권 단일후보로 나선 여영국 정의당 후보는 자유한국당의 세결집에 막판까지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더구나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일정 수준 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황 대표로서는 발언 수위를 끌어올려 당 기반을 다지는 한편, 총선·대선 가도를 준비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독재 운운하는 공안검사

그러나 이 같은 셈법과 별개로, 황 대표가 과연 '좌파 독재', '폭정' 운운할 자격은 있는지 의문이다. 먼저 '좌파' '독재' 이 두 낱말은 황 대표 발언의 단골 메뉴다. 17일까지 나온 황 대표 발언을 분석했더니 공식회의에서만 좌파 24회, 독재 20회 언급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황 대표가 말하는 좌파란 무엇인가? 또 그가 말하는 독재란 무엇인가? 고전적인 정치이론에 따르면 좌파는 대게 사회변혁을 기치로 내건 급진주의 정파를 의미한다. 그리고 독재는 다수가 아닌, 1인 지배자의 의중이 전체를 지배하는 정치체제다.

이 지점에서 묻는다. 황 대표가 말하는 좌파와 독재는 이 같은 고전적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가?

황 대표는 이제껏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논란, 5‧18 망언 관련자 징계 등 논란이 첨예한 사안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할 때가 많았다. 이런 탓에 '황세모'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또 하나, 황 대표는 공안검사로 이력을 쌓아 박근혜 보수정권에서 법무장관·국무총리를 지낸 사람이다. 특히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에서 정부측 대리인으로 나서 공안 검사 DNA를 유감없이 발휘한 이력도 있다. 요약하면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 체제의 전위대 역할을 한 셈이다.

황 대표가 공안검사로 이력을 쌓던 시절, 수많은 선량한 국민들이 정부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니면 정권의 위기탈출 목적으로 간첩으로 몰려 모진 고초를 당했다. 만약 현 정부가 진짜 독재정부라면 황 대표는 당장 어딘가로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는 역청산의 역사다. 무슨 말이냐면, 해방 이후 마땅히 청산되었어야 할 친일세력이 주류로 득세해 독립운동가를 몰아냈다는 말이다. 친일경찰 노덕술이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을 모욕한 건 아주 상징적인 사건이다. (이일로 김원봉은 원통함을 금치 못했고, 결국 월북을 선택했다)

이런 역청산의 역사는 오늘에 되풀이 되기에 이른다. "해방 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는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은 역청산의 망령을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 발언이다. 황 대표는 이런 역청산의 망령을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황 대표는 협동전도사 이력을 가진 보수 개신교인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보수 개신교는 일찍부터 황 대표를 주시해왔다.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은 황 대표를 외곽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불행하게도 보수 개신교 역시 역청산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에서 가해자로서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러다보니 황 대표의 독한 발언은 당연한 귀결일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시 말하지만 황 대표는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에 기생했던 공안검사다. 그런 황 대표가 심판자를 자처하며 좌파독재 운운하는 모습은 불행했던 역청산 역사의 데자뷰다.

지금 시국을 보면 한숨만 나온다. 대한민국은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활 luke.wycliff@verita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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