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날 서울광장에선 퀴어문화축제가 예고돼 있었다.
보수 개신교는 축제가 열릴 때면 현장 바로 앞까지 와서 반대집회를 열었다. 올해도 이 같은 일은 똑같이 되풀이됐다.
그런데, 반대집회가 보다 정교해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먼저 서울광장 바로 앞에선 보수 개신교 단체가 북 공연을 하며 반대집회를 했다.
이때 새로운 시설이 하나 눈에 띠었다. 바로 대형 트럭에 서울광장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시설물을 설치하고, 거기서 동성애 반대 구호를 외친 것이다.
시설물엔 군복을 입은 여성들이 올라가 북을 치며 동성애 반대 구호를 외쳤다. 이들에게 다가가 어느 교단에서 왔는지 물었다. 이들은 "연합체에서 왔다"고만 하고 자리를 피했다.
서울광장 바로 맞은 편 서울시의회 앞 도로에선 동성애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 준비위원회(대회장 이주훈 목사)가 주최한 '퀴어축제반대국민대회-러브플러스'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 역시 퀴어축제 반대를 위해 기획된 집회였다.
대회장은 <한겨레>가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지목한 에스더기도운동 이용희 대표였다. 이 대표는 "이번 국민대회는 개신교뿐만 아니라 불교, 가톨릭도 참여하는 범국민대회 성격이었다"라면서 "후손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한 영적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짜뉴스에 대한 해명은 없었다.
이 같은 방해에도 퀴어축제는 성황을 이뤘다. 올해 퀴어축제는 스무 돌을 맞는데,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다. 반대로 보수 개신교 쪽 맞불집회 참여인원은 눈에 띠게 줄어드는 양상이다.
이날 퀴어축제 조직위는 광장 참여인원 8만, 행진 참여인원 7만 등 총 15만 명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에 비해 러브플러스 집회 참여인원은 7천 명(경찰 추산) 선에 그친다. 그마저도 퀴어축제 행진이 시작된 4시 전후로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해 한산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축제장 바로 앞에서 반대집회? 어찌 이럴 수 있나
퀴어축제엔 70여개 시민사회단체·기업 등이 부스를 마련했다. 이 가운데 개신교는 대한성공회와 로뎀나무그늘교회가 참여했다. 대한성공회 사제들은 오전 11시부터 4시까지 성소수자를 위해 축복식을 진행했다. 그러나 축복식은 보수 개신교 단체의 소음에 묻히기 일쑤였다. 축복식을 진행했던 한 사제는 "보수 개신교 쪽이 일부러 시끄러운 음악만 골라 튼다"며 어이없어 했다.
다른 종교는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볼까? 이 물음에 답을 찾고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부스를 찾았다.
부스를 지키던 스님들은 광장 바로 앞에서 보수 개신교계가 반대집회를 하는 데 대해 놀라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A 스님은 "광장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축제) 방해를 하려는 목적인지 미처 몰랐다"면서 "교리를 떠나 성소수자 문제는 인권이란 측면에서 접근해야지 일방적으로 죄악이라고 규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도 같은 심정이었다. '성소수자부모모임'은 축제장을 찾은 성소수자를 안아주는 '프리허그'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 모임의 한 회원은 이렇게 말했다.
"자녀가 성소수자임을 알기 전, 교회 일에 아주 열심히 매달렸다. 그러나 성소수자임을 알고, 교회가 이들을 혐오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때부터 교회를 멀리하게 됐다."
퀴어축제는 올해 스무 돌을 맞았다. 특히 올해 퀴어축제엔 광화문 광장이 처음 행진 코스에 들어왔다.
분위기는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 절정에 달하는 모습이었다.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해가 갈수록 성숙해져 감을 피부로 느낄 수도 있었다.
반면 보수 개신교는 수년 째 '동성애는 죄악'이라는 프레임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보수 개신교의 빈약한 상상력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