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문재인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 목사는 회견 뒤 청와대로 이동해 단식에 들어갔다.
전 목사는 기자회견에서 특유의 독설을 쏟아냈다. 그의 발언을 일일이 지면에 옮길 이유는 없다. 다만 5일 시국성명에 이어 11일 기자회견까지 전 목사가 보인 일련의 행동 이면을 살펴 볼 필요는 있다.
전 목사의 행보는 고도로 정치적이다. 전 목사는 한기총 대표회장 당선 전부터 정치 행보를 보였다. 지난 해 11월 문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고 나섰고, 그때 정치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전 목사는 "목회를 하다보면 언제든 비판을 받기 마련"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전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되고 나선 "원래 교회는 정치하는 집단"이라는 소감을 남겼다. 돌이켜보면 이 발언은 그가 광폭행보를 보일 것이란 예고이기도 했다.
전 목사의 정치활동은 언론을 통해 드러났다.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5월 20일 '목사님은 유세 중'이란 제하의 리포트에서 전 목사의 정치활동 정황을 고발했다.
<스트레이트> 보도의 반향은 컸다. 한기총은 사회주의 언론 운운하며 MBC를 비난했다. 그럼에도 비난 여론은 좀처럼 잦아지지 않았다. 전 목사로선 국면전환이 필요했다. 전 목사가 시국성명에 이은 단식 기도회까지 폭주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국면전환을 위한 제스처인 셈이다.
그러나 전 목사의 정치행보가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개신교계도 한기총의 행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0일 "모든 언론이 더 이상 전광훈 목사의 비상식적 발언에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시해 주길 기대한다"는 입장까지 냈다. 순복음 계열이자 한기총에서 가장 큰 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는 11일 회원교단으로서의 모든 사항에 대해 행정보류하기로 결정했다.
‘묵묵부답' 한국당, 전 목사 ‘섭섭'
전 목사가 기댈 곳은 자유한국당인데, 한국당은 드러내놓고 지지할 처지가 되지 못한다. 국회 등원을 거부 중인 한국당이 전 목사와 한기총을 끌어안을 경우 도매금으로 비난 받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국당은 아무런 입장표명도 없는 상태다. 이를 의식한 듯, 전 목사도 기자회견에 앞서 있었던 연석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나를 보고 내란 선동이라고 하는데, 자유한국당은 가만히 있다. 정당으로서 대항해 줘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에 대해 섭섭하다"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무엇보다 전 목사는 너무 일찍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총선까지 약 10개월 가량 남았다. 한국 정치는 역동적이다. 10개월의 시간 동안 정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불허다. 특히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상정된 선거법 개정안이 제대로 법제화될지, 이에 따라 정당간 어떤 이합집산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이 와중에 전 목사는 문 대통령 하야 운운하며 강수를 뒀다. 전 목사의 초강수가 패착이라는 지적이 나올만한 지점이다.
전 목사는 기자회견에서 "연말까지 반드시 문재인 대통령은 하야하십시오. 이것은 사람의 명령임과 동시에 주님의 명령"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문 대통령 하야가 사람의 명령인지는 따져 보아야 할 문제다. 그러나 주님의 명령은 아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아우르는 그리스도교의 주님이신 예수께선 교회를 정치에 이용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12일을 기준으로 하면, 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는 2022년 5월 9일까지 1062일 남았다. 전 목사는 그때까지 단식을 중단하지 않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