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청와대 앞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했다. 거의 모든 언론이 생중계할 정도로 황 대표의 삭발은 관심을 모았다.
황 대표는 삭발을 마친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더 이상 국민의 뜻을 거스르지 말라. 그리고 조국에게 마지막 통첩을 보낸다. 스스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외쳤다.
실로 곤혹스럽다. 우리 정치사에서 삭발 혹은 단식은 자주 있어왔다. 그러나 삭발은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내는 마지막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사학법 개정을 추진하자 이에 맞서 개신교 목회자 30여 명이 삭발투쟁으로 맞선 적이 있었으니까.
황 대표의 삭발은 당시 개신교 목회자의 삭발과 묘하게 겹친다. 사학법 개정은 사학 최대 소유주인 개신교계의 기득권을 축소시킬 것은 분명했고, 이에 목회자들은 삭발로 맞대응했다.
성결교단 전 총회장 이용규 목사와 예장합동 전 총회장 김동권 목사, 한국기독공보 김종채 사장, 한국장로회출판사 박노원 사장 등 삭발에 나선 목회자의 면면은 저들의 삭발이 노리는 바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냈다.
황 대표의 삭발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삭발은 이른바 '조국 정국'에서 주도권을 선점하는 한편, 국회의석이 없는 황 대표에게 장외투쟁의 명분을 제공하는 효과가 있었다. 말하자면 정치적 이득을 위한 정치적 선택이라는 말이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전 정권 시절 법무부장관, 국무총리를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가 났지만 박근혜 전 정권은 참사를 외면했다. 이에 참사 유족들은 삭발로 자신들의 울분을 전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전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황 대표는 그런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냈다.
황 대표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 하나 있다. 8월 24일의 일이다. 이날 오후 한국당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문재인 정부 규탄 '살리자 대한민국 !' 집회를 열었다.
단상에 오른 한국당 황 대표는 문 정부를 향해 날선 발언을 쏟아냈다. 그 순간, 돌발상황이 벌어졌다. 한 남성이 단상에 올라 황 대표에게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현장에 있던 경찰과 한국당 당직자들이 이 남성을 제지해 불상사는 없었다. 황 대표는 자신의 등 뒤에서 벌어진 일에 아랑곳 없이 자신의 발언을 이어나갔다.
단상에 오른 이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였다. 이 활동가는 8월 7일 황 대표의 장애인 비하발언에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이 같은 일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대표는 최고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해선 국무회의 생중계를 하면서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는 벙어리가 됐다"고 말해, 장애인 비하발언 논란에 휘말렸다. 장애인 단체는 사과를 촉구했으나 황 대표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그래서 다시 한 번 장애인 단체의 원성을 샀다.
그럼에도 황 대표는 장애인활동가의 사과 요구에 눈길 조차 주지 않았다. 최근엔 성서에 장애인 비하 표현이 많아 이를 순화하자는 지적이 나오는 시절이다. 황 대표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알려져 있고 전도사 경력으로 개신교계의 신임도 두텁다.
그런 황 대표가 정작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을 폄하하는가 하면 삭발이란 약자의 수단마저 정치적으로 이용하니, 도무지 이 광경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일개 부처 장관 파면을 요구하며 야당대표가 삭발한 건 우리 정치사에서 기괴한 장면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기괴한 장면의 주인공이 개신교 전도사라는 점은 개신교에게 또 하나의 성찰거리를 던진다.
2006년 사학법 개정에 맞서 삭발한 개신교 목회자가 황 대표의 삭발을 어떻게 봤는지, 문득 궁금증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