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교회

[설교] 기적을 낳는 감사

장윤재 목사 (이화대학교회)

- 하박국 3:17-18, 빌립보서 4:4-7, 누가복음 9:16-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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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 ⓒ베리타스 DB)
▲장윤재 이화여대 교수 (이화대학교회 담임)

오늘은 음악예배로 이화 유스콰이어의 찬양 사이사이에 짧은 세 토막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말씀 1: 빈손

우리 아이들이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라는 찬양을 들려주었습니다.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주의 손 날 위해 찢기셨고..."

여러분의 손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여러분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주님의 손을 한번 올려다보십시오. 주님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정호승 시인의 <빈손은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중에서 읽어봅니다.

"사람은 태어나서 엄마의 손부터 먼저 잡는다. 아기는 엄마가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단 한시도 살아갈 수가 없다. 토닥토닥 토닥여주는 엄마의 손을 통해 아기는 크나큰 사랑과 평온을 얻는다. 엄마의 손은 바로 생명의 손이며, 신의 손을 대신해 준다.

내게도 나를 길러준 어머니의 손이 있다. 내가 눈물을 흘릴 때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내가 상처받고 고통스러워 할 때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내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마 이러한 어머니의 손이 없었다면 오늘 한 인간으로서 나는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손은 참으로 부지런한 손이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하는 손이다. 여든이 된 내 어머니의 손은 지금도 바느질을 하고 재봉틀을 돌리고 걸레를 빨고 밥을 짓는다.

손은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할 때 아름답다. 놀고 있는 게으른 손은 추악하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도 않는 손을 정성껏 가꾼다. 그런 손은 겉으로는 아름다운 것 같으나 실은 아름다움을 상실한 가공의 손이다. 못 자국이 난 예수의 손에도 십자가에 매달려 못 박히기 전에는 목수로 일하면서 생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어릴 때 나는 교회에 나가시는 어머니를 자주 따라가 본 적이 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새벽기도를 나가셨다. 교회의 차디찬 마룻바닥에 꿇어앉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기도하던 어머니의 그 겸손한 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우리 집 안방에 걸려 있던 예수의 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골고다 언덕에서 가시관을 쓴 머리에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하늘을 우러러 간절히 기도하는 예수의 손이야말로 우리 인간의 눈물과 상처를 닦아주고 어루만져 주기 위한 사랑의 손이다.

사람은 빈손으로 태어나서 빈손으로 간다. 우리는 이 말을 늘 잊고 산다. 그러나 아무리 잊고 살아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을 다 놓고 가야 한다. 손에 아무리 많은 것을 지녔다 하더라도 검불 하나라도 지니고 가지 못한다. 내가 어머니한테서 태어나 최초로 어머니의 손을 잡을 때에도 빈손이었지 않았는가.

내가 누군가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너무 많은 것을 움켜쥐지 말아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동안 내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내가 처음 아버지가 되어 아기의 손을 잡았을 때 아기는 내 손가락 한 끝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나도 그러한 아기의 손을 지니고 싶다."

여러분의 손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여러분의 손은 어떤 손입니까? 손은 "우리 마음의 거울이자 삶의 거울"입니다. 여러분의 손은 지금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어머니의 손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그 손은 어떤 손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손을 떠올려보십시오. 그 손은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날 위해 찢기신" 그 손에 나는 어떤 손을 포개고 있습니까?

이 감사와 은총의 계절에, 저는 여러분이 정말 아름다운 손을 가진 분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손, 부지런한 손, 새벽에 일어나 공손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손을 많이 잡아줄 수 있는 손. 그런 빈 손, 감사의 손, 따뜻한 나눔의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합니다.

말씀 2: 기적을 낳는 감사

예수님은 어떤 감사를 드리셨을까요? 복음서에는 모두 네 번 예수님이 감사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실 때의 기도입니다.

한 어린 아이가 바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축사(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요즘은 보리떡을 건강식으로 먹지만 당시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습니다. 생선 두 마리도 아마 말라비틀어진 작은 물고기였을 것입니다. 그저 어린이 한 명이 하루를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놓고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5천 명을 먹일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떡과 물고기를 앞에 두고 감사한 것이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감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기적을 바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초라한 음식이지만 진심 어린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바로 그 기도가 기적을 낳았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출발은 계산 없는, 진실한 그 감사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현대인의 삶에는 이런 순수한 감사의 기도가 매우 희소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큰 사건, 중요한 일에만 감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절실히 원하는 것들이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졌을 때 흥분해서 감사하곤 합니다. 주로 화폐가치로 연결되는 것들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성서의 감사는 좋은 일이 생겼기 때문에 드리는 감사가 아닙니다. 성서에서의 감사는 생(生)의 가장 기초적인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발견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추수감사절은 1623년 미국 청교도 개척자들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너 새로운 땅에 정착해 첫 농사를 지었지만, 그해 겨울 개척자의 절반이 굶어 죽었습니다. 어렵사리 첫 수확을 거뒀지만 소출은 겨우 하루에 옥수수 다섯 개를 배급받는 정도였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농사의 어려움으로 결국 그 겨울 개척자들 중 절반이 사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극심한 궁핍과 남루함, 막막한 미래 앞에서도 그들은 감사했습니다. 풍성한 열매를 거두어서 감사한 게 아닙니다. 비참한 배고픔과 처절한 가난의 현장 한복판에서도 발견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기원입니다.

이런 감사는 구약성서 하박국 3장에 나오는 감사를 생각나게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3:17-18).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온갖 나무에 열매가 없고, 밭에는 소출이 없고, 게다가 외양간에 가축마저 없다면, 지금 완전히 실패한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인간이 신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열정적인 감사의 기도입니다. 존재의 근원이 하나님께 연결돼 있다면 결코 절망하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의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하루치 '일용(日用)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 가르치신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놓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감사가 기적을 낳았습니다. 내 삶에도 그런 기적을 낳는 감사가 넘칠 수 있을까요? 고통과 슬픔 속에서도 발견하는 은혜에 대한 감사, 거듭되는 좌절 속에서도 내게 주어진 작은 의미들에 대한 감사, 생(生)의 가장 기초적인 것들에 대한 감사, 이런 감사가 있다면 우리 각자의 삶은 결코 실패가 아닐 것입니다.

감사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실 그런 감사 자체가 곧 기적입니다. 이번 추수감사절은 이런 기적이 넘치는 풍성한 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3: 희망을 만드는 사람

유스콰이어 어린이들의 마지막 노래는 정호승 시인의 <희망을 만드는 사람>을 찬양곡으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 누구나 세상이 썩었다고 말합니다. 희망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인은 희망을 찾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시인의 말대로 이 세상은 '절망도 없는 절망의 세상'이고 '슬픔도 없는 슬픔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렇다면 시인은 자신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시인은 낙관적입니다. 희망적입니다. 남을 탓하고 절망하기 전에, 자신을 바로 세우고 희망을 놓치지 않고 꿋꿋이 서 있는 사람, 바로 그런 사람만이 희망일 것인데, 그런 사람이 되면 되지 않냐고 말합니다. 남에게서 희망을 찾고 남에게서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고 권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라 /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 절망도 없는 이 절망의 세상 / 슬픔도 없는 이 슬픔의 세상 /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

이 추운 세상도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눈이 온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힘으로 언 땅을 녹인다는 말일 것입니다. 사랑, 사실 그것은 적극적인 감사입니다. 좋은 일이 생겨서, 누가 내게 무엇을 해주어서 드리는 소극적인 감사가 아니라 범사(凡事)에, 즉 모든 일, 평범한 일에 대한 적극적인 감사가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드린 공동기도문은 A. L. Storm의 <감사 찬송>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는 복음성가인데 그 가사가 바로 이런 적극적인 감사입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 길가의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사랑의 가정 일용할 양식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이렇게 범사(凡事)에 적극적인 감사의 삶을 산다면 언 땅에 봄눈이 올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4-7).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평화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디모데전서 4:4-5). 하나님, 내가 매일 음식을 놓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시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내가 매일의 삶 속에서 받은 모든 것에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것들을 성별하여 거룩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께 감사드릴 때 공허한 말과 형식을 사용하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체하면서 사실은 내가 이룬 성공을 은밀히 자랑하는, 거짓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게 하옵소서. 나는 스스로 존재하지 않으며 주님이 주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내 것이 아닙니다. 나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 밖으로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갑니다. 그러므로 내 손에 너무 많은 것을 올려놓거나 움켜쥐지 않게 하옵소서. 누군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거룩한 빈손이 되게 하옵소서. 부지런한 손,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손, 새벽에 일어나 공손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손, 다른 사람의 손을 많이 잡아줄 수 있는 따뜻한 감사와 나눔의 손을 갖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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